몽실언니 다이어리/임신

임신 중 빈혈 극복을 위한 고육지책, 과일쥬스와 함께 시작하는 나의 하루

옥포동 몽실언니 2017. 11. 21. 00:19

영국에서는 임신을 한 기간 동안 의사는 딱 네 번 보게 된다.  임신을 확인했을 때 병원을 가서 한번 보게 되고, 25주에 한번, 31주에 한번, 38주에 한번.  첫 진료는 임신 사실을 알리는 것이 전부라서 심지어 소변 검사 조차 없이 내가 테스터기로 두번 확인해본 결과 임신이더라, 라고 알리면 산모수첩을 주고, 조산사 (midwife) 연락처를 알려주며 임신 10주가 될 때 조산사에게 연락하여 만나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나서 3번 (25주, 31주, 38주)의 정기 진료가 전부.

정기진료때도 특별히 하는 것이 없다.  소변검사, 혈압체크, 줄자로 배크기 측정.  그게 전부.  그리고 이 모든 정기진료는 일반 가정의와 하는 것이라서 산부인과 전문의는 아예 만날 기회조차 없다.  물론 쌍둥이 임신이거나 유산 경험이 있거나 고위험 산모의 경우에는 다르다. 

나는 오늘로서 임신 37주가 끝나고, 내일이면 38주.  예정일을 2주 앞두게 된다.  임신 10주 첫 조산사와의 만남에서는 혈액검사가 이루어지는데, 이 때는 임신 후 첫 혈액검사인 만큼 에이즈, HIV 등의 여부까지 조사하는 전반적인 혈액검사이다.  모든 게 정상인데 이때 이미 나는 빈혈로 나타났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되자 병원에서 철분제를 처방해줬다.  이런 경우 처방해준 철분제를 모두 섭취한 뒤 4주 뒤 다시 혈액검사를 해서 철분제를 계속 처방해야 할지 말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나는 철분제를 꾸준히 섭취했고, 예정대로 4주 후 혈액검사를 했더니 처음보다는 조금 올라가서 정상 수치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철분제를 병원에서 처방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아니.. 철분제를 이렇게 열심히 먹었는데, 왜 이렇게밖에 오르지 않느냐고 물으니 조산사가 하는 말 

오렌지쥬스와 먹고 있지? 하고 묻는다.   

으응??? 오렌지쥬스?  나 원래 쥬스 잘 안 마시는데?  그냥 물이랑 먹지.. 라고 대답하니

철분제는 비타민C와 함께 섭취할 때 가장 흡수가 잘 되니, 꼭 오렌지쥬스랑 같이 먹도록 해~ 라고 조산사가 당부한다. 

으..으..응.. 그럴게.. 노력할게.. 

임신 26주, 또 한번의 정기 혈액검사가 있었는데, 여전히 철분수치가 큰 변동이 없다.  좋은 철분제로 1일 권장복용량의 3배씩이나 되는 용량을 아침 저녁으로 열심히 먹고 있는데도!  ㅠㅠ 

혈액 속 철 수치가 낮으면 출산 시 출혈도 많고 지혈도 잘 안 되고 회복도 더디다는 주변의 이야기에 따라 어떻게든 열심히 먹고 있는데도.. 이렇게 큰 변화가 없다니.. 

속상했던 나는 이제 정말로 병원에서 시키는대로 해보기로 했다. 오렌지쥬스든 뭐든 비타민C가 많은 쥬스와 함께, 반드시 식전에 철분제를 복용하도록 노력하는 것!  

(사진 Feat. H가 결혼선물로 준 앙증맞은 컵, S가 결혼선물로 사준 파란식판 ^^)

그 전에는 철분제 세알, 종합비타민 한알, 칼슘 한알을 식후에 함께 먹었는데, 칼슘과 철분제는 함께 먹으면 둘 다 흡수가 잘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철분제는 식전에 비타민C와 함께 먹는 게 가장 흡수율이 좋다고 하니, 밥을 준비하면서 먼저 철분제를 먹도록 애썼다.  결혼해서 6개월이 넘도록 쥬스류를 구입해본 적 없던 우리 부부는 내 철분제 복용을 위해 장을 볼때마다 쥬스를 한병씩 사게 되었다.  오렌지쥬스도 먹다 보니 지겨워서 이제는 오렌지+당근 쥬스를 먹기도 하고, 사과쥬스로 먹기도 하고.. 그래도 되도록 오렌지는 들어있는 쥬스로 먹으려고 애쓴다.  

그렇게 식전에 과일쥬스와 철분제를 함께 복용하기를 몇주.  가장 최근의 혈액검사에서는 왠열!   철분 수치가 12까지 올라갔다!  한국에서는 보통 12라고 하지만 영국에서는 단위를 다르게 써서 한국에서 이야기하는 빈혈수치 12가 영국에서는 120이다.  어쨌든 12.0을 찍었으니!  왠열!  이건 임신 전에도 혈액검사에서 나는 철분수치가 12까지 가 본 적이 잘 없는.. 늘 아주 약간의 빈혈을 안고 살던 사람이었건만.. 처음으로 이렇게 12를 달성하다니!!  내 혈액검사 결과를 보고 조산사도 아주 기뻐한다.  

조산사 왈:  "임신 말기쯤 되면 빈혈 없던 사람들도 빈혈이 생기는데, 너는 아주 잘 하고 있네!  수치가 지난번보다 더 올라갔어!  아주 좋구나!"

원래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는 빈혈 때문에 고기를 일부러 찾아먹으며 지내왔다.  유학 1년이 지났을 때 내 빈혈 수치가 9까지 내려가서 병원에서 한 때 내 몸 안에 내부출혈을 의심해서 CT까지 찍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기의 철분이 흡수율 자체는 가장 좋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고기를 챙겨먹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빈혈수치가 그리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오렌지쥬스와 다량(?!!!)의 철분제를 식전에 함께 복용하고 빈혈수치가 좋아지니.. 그래도 조금 안심이 된다.  영국 병원에서 아기를 낳았던 한 동생은 빈혈수치가 너무 낮아서 퇴원시켜주지 않고, 또 아기 낳고 이틀만에 또 병원에 와서 철분 주사를 맞으라 하여 좋지도 않은 몸으로 아기도 챙겨야 하는 상태에 병원까지 오가야 해서 너무 힘들고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 큰언니 또한 첫 아이를 낳고 빈혈수치가 너무 낮아서 지혈도 잘 안 되고 너무 힘들었다고.. 회복도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둘째때는 철분제를 듬뿍듬뿍 먹어서 회복도 수월했다며 나에게 다량(!)의 철분제 복용을 권했던 당사자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한 친구는 고기도 잘 먹지 않고 철분제도 일절 챙겨먹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타고난 체질 자체가 철분 흡수율이 좋은지 임신 중 영국에서 혈액검사를 할 때마다 빈혈수치는 아주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다.  난 그런 체질이 아니니.. 열심히 철분제를 먹어야지.. 

그렇게.. 나의 하루는 쥬스 한잔과 철분제로 시작한다.  120을 찍고 나서는 조금 게을러져서 아침에만 꼬박꼬박 먹고 저녁에는 하루 걸러 하루 쯤 철분제를 먹는 거 같다.  어쨌든.. 원래 잘 마시지도 않던 과일쥬스를 열심히 먹고 있으니.. 우리 아기.. 건강하게 낳고, 아기도 건강하게 태어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