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스윈던 가는 길에 생긴 일

옥포동 몽실언니 2017. 2. 16. 23:08

어제는 친한 동생 S를 만나러 스윈던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이 친구는 남편 직장이 스윈던이라 몇 해전 이곳으로 이사를 왔지요.

스윈던은 옥스포드에서 사쪽방향으로 기차로 약 30분, 차로는 약 한시간 떨어진 인구 약 20만의 꽤 큰 도시입니다.   단 기차로 갈 경우 디드콧 ( Didcot Parkway) 에서 기차를 환승해야 해서 운이 좋으면 36분에 갈 여행이 때로는 환승대기 시간에 따라 한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하는데 오늘 제 여행 예상 소요 시간은 52분.  아주 운 좋은 경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나쁘지도 않습니다.  아래는 오늘의 여정.  National Rail Enquiries 라는 앱을 설치하면, 실시간 열차 현황도 알 수 있고 내 여정도 검색할 수 있습니다.  아주 유용한 앱이지요!  영국 여행하며 기차 이용하시는 분들에게는 필수앱!


어제는 유독 이 짧은 기차 여정 중에 일이 많이 일어난 특이한 날입니다.  오전 11시 7분 기차를 타기 위해 여유롭게 기차역에 왔습니다.  커피를 한잔 사서 기차를 타려고 조금 일찍 와서 자동판매기계에서 스윈던으로 가는 표를 주문했습니다.

밤에 잠이 부족했던 탓에 비몽사몽간에 옥스포드-스윈던 구간으로 adult, off-peak day return 으로 표를 선택.  피크 타임이 아닌 시간의 기차를 이용해서 당일 왕복하면 되는 기차표지요.  그러다가, 내가 학생 할인 티켓이 있었다면 표 가격이 얼마였을까 긍금해서 학생 할인 요금을 눌러서 확인해봤습니다.  30여 파운드 정도의 돈을 내면 매번 기차를 탈 때마다 약 30%를 할인받을 수 있는 학생용 레일카드 (rail card)를 살 수 있는데, 그 레일카드가 있을 경우 일반 성인요금 £11.20가 7파운드 남짓으로 할인되네요.  그렇구나, 하고는 다시 일반 성인 요금으로 선택, 모든 선택 완료, 결제 단계, 카드를 넣고 비밀번호를 누르고, 결제 성공, 카드 제거.  모든 단계가 끝.  기계가 표를 출력하는데 아니 이럴 수가, 표가 주렁 주렁 끝없이 나와서 기계에 나온 표를 모두 회수하니 7-8장의 표가 나오질 않겠어요!

그 중 한 장은 영수증이었는데 제가 Bath 를 가는데다가 표는 2인용에 요금은 £38이나 결제되어 육칠만원의 돈에 대한 영수증이었습니다!  이럴수가!  비몽사몽간에 표를 사며 내가 뭔가 실수를 했나, 이게 뭔가, 기차는 11시 7분 출발인데 시간을 보니 11시 1분!  한두푼이 아쉬운 상황에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고, 직원에게 물어보자니 줄을 서서 기다리면 기차를 놓칠까 걱정이 되고.. 결국 오늘는 커피 한잔은 물건너 갔구나, 그래도 표 확인은 하고 남어가자 하여 인내심을 갖고 줄을 서서 기다리다 드디어 제 차례!  현재 시각 11시 3분!! 

"저기요, 저는 스윈던으로 가는 표를 샀는데 뭐가 잘못 됐는지 엄청 많은 표가 나왔어요.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  기계가 실수한 건가요? 이게 다 뭐죠?!! ㅜ" 

했더니 직원이 표를 하나씩 검토하더니,  

"이건 자리 예약 확인표, 이건 바스 가는 사람들 표의 영수증, 이건 단순 예약 확인표,  당신은 스윈던 가신다구요?  여기 당신표가 있네요.  나머지는 모두 이 전 사람들이 안 갖고 가서 남겨진 표 같아요~ "

라고 웃으며 친절히 설명을 해줍니다.  휴우 다행이다..  기차 시간이 3분 남았고 기차는 벌써 플랫폼에 대기 중입니다.  커피는 진짜로 물건너 갔구나, 얼른 플랫폼으로 가서 기차에 몸을 싣습니다.  오늘 오전, 내 정신이 내 정신이 아님을 확인한 터라 혹시 몰라서 플랫폼에 있는 직원에게이 기차가 내가 가고자 하는 디드콧 (스윈던 가는 기차 환승역) 가는 기차가 맞는지 재차 확인.  이제는 아는 길도 물어갑니다.

그리곤 십오분도 가지 않아서 기차가 디드콧에 도착합니다.  커피가 어찌나 고픈지.. 커피를 마시지 않고서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것처럼 커피 생각이 너무 간절했습니다.  디드콧 플랫폼 4에 내려서 갈아탈 기차는 플랫폼 1.  환승시간은 약 20분 가량입니다.  디드콧은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환승하는 기차역이지만 그리 큰 기차역은 아니라서 그런가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구간에도 커피 파는 곳은 보이지 않고, 플랫폼 1로 올라가봤으나 거기도 커피파는 곳이 없습니다.  흑흑.. 이럴 수가.. 어쩔 수 없이 개찰구쪽으로 가서 기차역사 내를 살펴보니 작은 샌드위치 가게가 하나 있네요.  개찰구를 지키는 직원 아저씨 세 분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조심히 다가가서 부탁을 드립니다.  "저기, 죄송한데요.. 제가 지금 기차를 갈아타려고 기다리는 중인데, 지금 커피가 너무너무너~~~무 마시고 싶어서요. 요 바로 옆에 가게에서 커피만 얼른 사와도 될까요?" 라고.. 그 중 한 아저씨가 묻습니다.  What's wrong with your train? (네 기차에 무슨 문제 생겼어?) -  "아니요, 지금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그런데 커피가 너무너무 마시고 싶어서, 요기 옆 가게에서 커피만 잠깐 사서 다시 들어와도 될까요? 했더니, 영국 아저씨들, "오브 코오스~" 하며 개찰구를 열어줍니다  ('너무너무너~~ 무'는 "Reeeeeeally" (리이!얼리)로 강조하여 표현했습니다. ㅋ 영국에서는 'r' 발음을 미국식으로 혀를 굴린 발음이 나지 않고 장모음으로 발음합니다.  그래서 "course" 가 '콜스'로 발음되지 않고 "코오스"라고 '코'발음이 장음으로 발음되지요.  


어쨌든 그렇게 커피를 사서 다시 개찰구 앞에 서니 아저씨들이 개찰구를 수동으로 열어주시네요.  그러더니 한마디 농담을 건넵니다.  "너, 지금 네 기차를 커피하고 바꾼거야?" 라고... ㅎㅎㅎ 썰렁하죠?! ㅋ 그래도 아저씨들의 친절이 고마워서 웃으며, 내가?  아닐껄!! 이라고 대답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제가 탈 기차가 오는 곳 1번 플랫폼으로 다시 올라갔습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플랫폼 1에서 고개를 딱 드니.. 왠걸...  건너편 2-3번 플랫폼 구간에 역사 내에 있던 샌드위치와 동일한 샌드위치 가게가 떡 하니 있습니다!  허걱.. 아까 왜 저걸 못 봤을까!  좀 더 찬찬히 봤으면 저기 가서 커피를 샀으면 됐을텐데..  이곳의 샌드위치 가게도 플랜차이즈 중의 하나인 것 같기는 한데 이름이 펌킨입니다.  주황색 Pumpkin 간판 아래 파란색 벤치들과 재활용 쓰레기통들. 색깔이 나름대로 이쁩니다.  이렇게 흐린 날에 저런 색상이라도 없다면 정말.. 우울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웃블로거 Pumpkin Time 단영언니가 생각나서 (아마 언니로 추정 ^^;;) 펌킨 샌드위치 가게도 사진을 한장 찍고, Pumpkin이라 찍혀있는 컵 홀더 사진도 하나 찍어봅니다.  별 것 아닌 일상을 사진으로, 글로 기록하는 것이 블로깅이 주는 재미 중 하나니까요.  아래 사진은 Pumpkin Time블로그에 대한 헌정사진. ^^

커피를 홀짝이며 괜히 지나가는 기차 사진도 하나 찍어봅니다.  디드콧 기차역은 옥스포드 인근에 나름대로 큰 환승기차역입니다.  런던, 레딩, 바스, 브리스톨 등으로 가는 기차들이 서고, 옥스포드에서 브리스톨이나 바스 (Bath) 쪽으로 여행 가려면 이 곳에서 기차를 환승해야 하지요.  

보시다시피 이 기차는 First Great Western 기차입니다.  영국은 마가렛 대처가 총리로 있던 시절, 대대적인 공기업 민영화를 하면서 철도회사를 모두 민영화시켜버립니다.  그래서 운영하는 구간별로 서로 다른 철도회사가 열차를 운영하며, 레일을 관리하는 회사는 또 다른 민영회사로 분리가 되어 있는 등 아주 복잡한 시스템이지요.  기차값이 비싸기도 하지만 잦은 고장 및 그로 인한 수리 등으로 기차 연착이나 취소 등의 문제는 영국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예요.  


뭐든 민영화만 한다고 다 효율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보여주는 사례이지요. 

기차에 물결무늬 때문에 기차가 서 있어도 마치 달리는 중인 것 같은 착각이 일게 하네요.  남색 열차에 빨간 문이라.. 색깔이 예쁜가요? 어떤가요?  제 기분에 따라 이뻐 보이는 날도 있다가, 안 이뻐보이는 날도 있는 그런 열차 디자인입니다. ^^;;

기차가 들어올 때 쯤이 되니 한통 가득한 커피는 이제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재활용 쓰레기통에 컵을 버립니다.  파란색 철제 벤치와 그 옆에 놓인 검정색과 녹색 뚜껑의 쓰레기통.  검정 뚜껑은 일반 쓰레기, 녹색은 자연을 생각한 녹색이라 한눈에 알아보기도 쉽습니다.  

플랫폼에 기차가 들어올 때 쯤에 플랫폼으로 올라와서 일 하시는 형광색 safety jacket을 입으신 아저씨들.  이런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형광자켓은 필수입니다.  아마 규정 상 반드시 입도록 되어 있을 것 같아요.  영국은 Health and Safety에 대한 규정이 정말 엄격하거든요.  사실 엄격하다 못해 말도 안되는 여러 사항들을 health and safety reason이라며 직원들에게 강요하는 악덕 회사들이 가끔 있어서 문제가 되기도 하지요.  

기차가 들어올 때 가까이 가지 않도록 발조심하라는 경고가 적혀있어요.  "Mind the step".  노란색과 검정색 라인 안에 흰색 글씨가 눈에 띄면서.. 뭔가.. 이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국에서 살다보면 소소한 것에도 디자인을 가만 보면 꽤 고민이 많이 들어가 있는 디자인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지요.  바로 이렇게. 

이 날은 뭔가 착오가 있어서 일등석 열차칸이 이날만큼은 일등석이 아닌 날입니다.  열차 문을 열어주시던 아저씨가, 이 칸에 일등석이라 마크되어 있지만 그렇지 않고 그냥 standard좌석이라고 큰 소리를 외치십니다.  오홋.. 왠걸.. 그래도 오늘은 돌다리도 짚어가야 하는 어리벙벙한 날.  아저씨에게 다시 한번 묻습니다.  "스탠다드라구요?  일등석 아니구요?" 그러니 아저씨가 맞다고, 일반석이라도 대답하십니다.  오른 쪽에 작게 나온 넥타이를 맨 아저씨가 바로 그 아저씨입니다.  

영국에서 일등석 칸에 처음으로 앉아보는 횡재를 합니다.  흠.. 이렇게 생겼었구나.. 한국의 우등 고속버스 좌석같은 느낌..!  넓고 쿠션 좋고~  지금 사진을 올리면서 보니 좌석에 독서 조명까지 달려있네요.  역시, 독서를 좋아하는 영국인들!  아까 우리에게 소리친 아저씨는 이제 표 검사를 시작하십니다.  "디드콧에서 타신 분들, 열차 표 보여주세요" 라고 말씀하며, 한명 한명 표를 확인하네요.  물론 저를 포함하여! 

잠시 한숨 돌리고 나니 벌써 스윈던에 도착했습니다.  아래는 스윈던 역 플랫폼.  이번에도 어김없이 아저씨께서 길게 줄을 서서 이등석 열차칸에 올라타려는 사람들에게 소리 치십니다.  이쪽 일등석이 일등석이 아니라고.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본인들이 줄을 서 있던 열차칸에 그냥 올라타네요.  참 신기한 광경.. 

모든 사람이 기차에 올라타자 문을 닫으면서 열차를 정리하시는 아저씨.  사실 저 아저씨는 다리를 심하게 저시는 분이셨습니다.  영국에서 지내다 보면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이 역무원분처럼 비장애인과 동일한 직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 역무원 아저씨도 그렇고, 학교 사회과학도서관의 카페테리아에서 일하는 직원 한분은 학습장애가 있는 분으로 말투가 어눌하고 사람들과 원활한 대화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학교 식당에서 열심히 또 친절하게 서비스를 해주시죠.  한국에서도 장애에 관계없이 제한된 신체적 조건 안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사회에서 본인들이 원하는대로의 일을 하면서 살아 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합니다.  

이렇게 내려서 어디를 가느냐?!  사실 오늘은 스윈던 아웃렛을 가서 이것 저것 세간살이를 둘러보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시내에 있는 백화점 아울렛을 먼저 가보기로 했습니다.  스윈던 역에서 아울렛까지 가는 지도.  16분 걸린다고 나오지만 구글맵에서는 편안한 걸음으로 갈 경우의 소요시간을 알려주므로 빠릿빠릿하게 걸으면 그 보다 적게 걸립니다.  

시내 아울렛을 대충 둘러보고, 이젠 본격 아울렛 구경을 하기 위해 아울렛이 모여 있는 쇼핑몰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이동하려던 시간에 하필이면 비가!! 그래서 비를 대충 맞으며 쇼핑몰에 도착하니 춥고 젖어있어서 따뜻한 국물 생각이 간절.  Wagamama  와가마마라는 일식이라 해야 할까요.. 일식 풍의 음식을 하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그릴에 구운 오리를 넣은 라면 요리를 주문합니다.  Grilled duck ramen 입니다.  13.95파운드.  오리고기가 들어가서 좀 비싸죠?  

저도 이 집은 이렇게까지나 돈을 주고 먹을만 하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아서 영국 살이 7-8년 중에 어쩌다 두어번 간 것이 전부인데, 이날은 날씨 탓에, 또 제한된 음식점 선택지 탓에 이렇게 와가마마에 들어와서 식사를 하네요. 아래 사진처럼 고기가 듬뿍 올라가있었어요.  

그런데 그 아래 깔려있던 라면도 양이 엄청났다는.. 생각보다 맛있어서 이 한그릇을 다 먹었다는!! ^^

구입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아이쇼핑도 아이쇼핑이라 힘이 듭니다.  누가 여자는 쇼핑으로 지치지 않는다 하였던가요!  저에게도 쇼핑은 쥐약입니다.  힘들어요.  그래서 쇼핑몰을 떠나기 전 잠시 달달구리 케잌과 커피를 마시며 휴식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쁜 접시 세트에 나온 커피와 디저트.  그런데 이 가게의 로고와 같은 색상의 설탕 스틱에, S의 파란색 목도리와 애기의 데님 드레스까지.. 모두 파란색으로 의도치않게 깔맞춤이 되었습니다! ^^

S가 말합니다.  "언니, 블로그 하니까, 어서 이것도 찍어요!" 라고.. 아, 아직 이 초짜 블로거에게는 음식 사진 찍는 일이 참 익숙치 않고 낯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접사진도 한장 더!  Chocolate fuzzy cake 을 주문했더니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함께 나왔네요.  흠.. 엄청 단데.. 저것도 다 먹어치웠다는.. 거의 저 혼자.. ^^;;  


오늘은 그냥 소소한 일상을 적어보았습니다.  기차역에서 일어난 일련의 에피소드가 재미있어서 기차역에서 핸드폰에다가 글을 쓰기 시작해서 결국은 하루 지난 오늘에야 컴퓨터에 옮겨 적고 있는데요.  이쁜 애기를 베이비시팅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고, 이렇게 큰 쇼핑몰을 구경해보는 게 도대체 몇년만의 일이기도 했던 터라 그것도 신기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물건이 있는 가게들이 엄청나게 많이 모여있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하하.  한국에서는 너무 흔한 일이지만, 이곳 영국에서 작은 도시에 사는 저에게는 정말 특별한 하루였지요.  


하루 하루 일상적인 일들이 참 소소하고 별 게 없어도 이런 일상 하나 하나가 즐거움과 재미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앗, 점심 먹은 와가마마에서 오징어튀김도 함께 먹었었는데, 그건 사진이 없네요.  ^^;; 갓 튀긴 튀김이..꽤 맛있었는데!!  군침이 돕니다.  오늘은 또 뭘 먹으며 하루를 보낼까.. ㅋ 먹는 걸로 시작해서 먹는 걸로 끝나는 것이 외로운 유학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큰 즐거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