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다이어리/한국 정착기 2020.11-2021.02 7

[한국정착기] 한국에서 우리 아이가 좋아한 것들

한국에 머물는 동안 저희 아이가 좋아했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지하주차장 저희 아이는 한국에서 지하주차장을 그렇게 좋아하더군요. 영국에 살면서는 한국식으로 치자면 아파트라 할 수 있는 플랫에 사는 고모집에 가면 지하주차장에 차를 댑니다. 고모집을 가 본 적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그래서 그런가 그 때마다 지하주차장을 그렇게 무서워하더니 한국에서는 지하주차장을 아주 좋아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지하주차장에 탁 트인 공간을 좋아한 것 같고, 그래서 마음껏 뛸 수 있어서 좋아했던 것 같고(위험하니 뛰지 못하게 하느라 힘들었던 기억), 차량이 나오거나 들어올 때 삐이삐이 울려대는 알람 소리가 신기하고 좋았던 것 같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에서 지상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재미있었나봐요. 영국에서는..

[한국정착기] 한국에 가서 아이가 놀란 것

큰 도로 영국 소도시에 왠만한 도로는 모두 편도 1차로로 이루어진 곳에 살던 저희 잭은 한국에 도착하여 인천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던 중 넓은 도로를 보고는 저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여기 고속도로야?" 저희 아이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을 좋아해요. 다양한 종류의 차들을 구경할 수 있고, 탁 트인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것이 좋은 가보더라구요. 고속도로는 좋아하지만 차 안에서 30-40분 이상은 견디기 힘들어하는 탓에 저희는 아이를 데리고 멀리 여행가 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랬던 저희에게 지난 겨울의 한국행은 굉장한 여행이었지요. 장시간 비행도 비행이지만, 공항에 내려서도 몇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었던 할머니댁까지 가야했기 때문입니다. "엄마, 여기 고속도로 같은데?" 아이는 그 넓은 도로가,..

육아가 주는 불가피한 우울감, 그리고 타인의 육아와 내 노동의 맞교환

지난 2주간의 시간. 그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나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육아가 그렇다. 하루 종일 쉴틈없이 애들을 돌보며 바쁘게 지내는데, 시간이 흐르고 보면 그 시간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그저 세월만 가버린 것 같아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 시간 안에는 분명히 아이들을 돌보느라 고군분투하던 나의 애씀이 있었고, 그 시간이 만들어낸 아이들의 성장이 있었으며, 그 시간 속에서 오갔던 나와 아이들간의 교감이 있었건만, 지나고 보면 그 모든 시간이 없던 시간처럼 느껴지는 이상한 마법이 육아에 있다. 그 시간이 내가 다 날려버린 시간 같아 공허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달갑지 않은 마법. 엄마들은 아이들과 함께라 행복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끔은 우울해진다. 아니, 적어도 나는 가끔 우울해진다. 나..

한국생활 한달, 그간 내가 느낀 것들...

공인인증서와 휴대폰 본인인증의 무한 루프 한국에서는 조금이라도 “공적”인 성격이 들어간 일을 처리하려면 공인인증서가 있어야 하는데, 공인인증서가 만료되거나 정확한 개인정보로 내 정보를 수정하려고 하면 휴대폰으로 본인인증이 되어야 한다. 휴대폰으로 본인인증을 하지 못하면 정확한 개인정보로의 수정도 불가능하고, 최신의 공인인증서를 통해 공공업무를 볼 수도 없다. 휴대폰으로 동일업무를 진행하려고 해도 PC에 있는 공인인증서를 핸드폰으로 옮겨와서 그 공인인증서를 통해서만 일을 진행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도 본인명의의 휴대폰이 필요하다. 가령, 아이 영유아검진을 받기 위해서는 병원에 가기 전에 온라인 상으로 문진표를 작성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도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 어린이집 비용을 결제하기 위해서도 ..

영국생활 13년 후 한국 정착기: 한국의 좋은 점

우리는 이번에 한국에 오랫동안 머물다 갈 계획이다. 사실 한국에 머물면 머물수록 겁이 난다. 한국에 계속 살고 싶기 때문이다. 가끔씩 짧은 일정으로 한국을 올 때는 느끼지 못했던 기분이다. 특히 아이가 없을 때는 더더욱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다. 외롭고 재미없기는 해도 영국에서의 삶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영국의 시스템이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이미 그 시스템에 적응해있는 우리에게는 영국 생활이 주는 익숙함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생기고, 아이들과 함께 한국을 와보니 마음이 달라진다. 미세먼지에, 층간소음로 인한 어려움은 있지만, 인근에 가족들도 있고, 주변환경도 친숙하다. 10년 넘게 영국에 살며 한국을 떠나있었지만, 내가 나고 자란 곳이 주는 편안함이 이렇게 강력한 것일줄 몰랐다. 내 나라가 주는 ..

[한국일기] 책상 구입을 둘러싼 아버지와의 갈등

내년에 남편이 우리 부모님댁으로 오게 되면 남편과 내가 함께 작업실을 함께 쓸 수 있도록 현재 작업실에 책상 하나가 더 필요하다. 아버지께서는 짐이 늘어난다고 지금 상태에 가구를 더 사는 것은 절대 반대하시는 입장이시다. 그러나 남편과 내가 약 두달 반의 시간을 함께 작업해야 하는데, 책상 하나를 함께 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쓰는 아버지의 책상은 1600*80 으로 상당히 큰 책상인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든 이 책상을 함께 쓰려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상의 구조 상 책상을 받치고 있는 다리가 책상의 바깥쪽이 아닌 책상 3분의 1지점에 두 개의 받침이 놓여져있기 때문에 책상 가운데에 한 사람의 다리만 들어갈 수 있는 구조의 책상이다. 구조적으로 1인용 책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일기] 2년 만의 한국 방문

약 2년만에 한국에 왔다. 원래 빠르면 여름쯤, 늦으면 올 겨울 한국을 한번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코로나19 사태가 터져버렸다. 그 바람에 모든 상황이 좀 안정되면 한국을 가기로 하고 한국에 대한 마음은 비운 상태였다. 그러다 이런 저런 상황으로 한국을 서둘러 가기로 결정하면서 11월 중순으로 비행기 표를 예약해뒀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런 잉글랜드 지역의 락다운 (봉쇄령) 발표. 해외여행이 금지된다는 소식에, 봉쇄령이 실시되기 바로 전날 떠나는 비행기로 변경하여 급하게 짐을 싸서 한국으로 왔다. 락다운 발표가 10월 31일 토요일 오후였고, 아이들을 재우며 잠들었던 나는 11월 1일 새벽에야 해외여행 금지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날 바로 대한항공으로 전화를 걸어 비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