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in 2023

[형제육아의 즐거움] 만 5세 첫째와 만 3세 둘째의 말재간

옥포동 몽실언니 2023. 4. 29. 07:40

요즘 아이들이 말을 할 때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첫째는 말이 늦기도 했지만, 언어적으로 표현을 많이 하지 않는 아이였어요.  몸짓과 행동으로 많이 하는 편이었거든요.  아기 때 옹알이도 별로 없었고, 좀 더 커서도 자기가 생각하는 걸 말로 하기 보다는 자기 혼자하는 어떤 행동에 몰입하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둘째는 말이 빨랐고, 자기가 하는 행동이나 자기가 느끼는 감정들을 말로 잘 표현하는 편이에요.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 확인받고자 하는 욕구가 좀 더 많은 것 같고, 언어 자극에 대한 반응도 좀 더 큰 편인 것 같아요. 

이렇게 첫째와 둘째가 참 다르지만, 둘 다 각자만의 속도대로 자기만의 방식대로 커가는 걸 보면  참 신기합니다.  첫째는 첫째대로, 둘째는 둘째대로 각자의 언어적 발달로 저를 놀라게 해요.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이라 하더니.. 요즘 그런 걸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상황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언어적으로도 참 그런 것 같거든요. 특히 저희가 하는 말과 말투, 말의 내용까지도 말이죠. 

첫째 잭과 있었던 일이에요. 

남편이 부엌 싱크대 수도에서 물이 새는 고쳐보려고 스패너를 들고 와서 이리저리 수도꼭지를 돌려보다가 정리를 하던 중이었어요.  남편이 자기가 쓰던 스패너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왔는데, 그 뒷편에 여분 스패너 하나가 부엌선반에 덩그라니 놓여있었어요. 

틴틴: 이거 누가 여기 갔다놨어?  몽실 네가 갖고 온거야?

몽실: 아니. 내가 왜? 내가 그걸 어디서 갖고 와? 

틴틴: 그럼 이게 왜 여기 나와 있어?

몽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틴틴이 가져왔겠지. 

틴틴: 난 안 갖고 왔는데? 

몽실: 아니, 내가 그걸 왜 갖고 와? (각종 도구가 어디에 있는지 관심도 없고, 부엌 정리에 여념이 없던 중이었음)

틴틴: 그럼 잭이 갖고 온 거 아니야? (하면서 스패너를 도구함에 다시 갖다두러 감)

몽실: (거실에서 티비보는 잭을 향해 큰 목소리로) 잭, 잭 네가 스패너 부엌으로 갖고 왔어?

잭: (거실에서 티비를 보다가 부엌으로 걸어오며) 뭐? 무슨 스패너? 어떻게 생겼어? 잭이 어떻게 갖고 와? 가라지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각종 도구가 가라지에 있다는 건 알고 있는 상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잭이 어떻게 갖고 와?? 

몽실: 잭 가라지에 장난감 어딨는지 그런 거 엄마보다 더 잘 알잖아~

잭: 장난감만 알지, 도구는 어디에 있는지는 아빠가 안 말해줬는데 잭이 어떻게 알아~ 장난감 같은 거만 어디에 있는지 알지~

하고 말을 해서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대답에 저희 말문을 막아버립니다. 아이가 저렇게 정교한 논리를 펼쳐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그에 앞서 아이의 머릿속에서 저런 논리가 작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감탄을 했죠. 

가라지에 도구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가라지의 어디에 있는지는 아빠가 말해 준 적 없으므로 자기는 알지 못하고, 따라서 자기는 스패너를 갖고 오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호소하는 다섯 살. 

 

그리고 그와 유사한 일이 어제도 벌어졌어요. 

마트에서 사 온 피자도우에 피자 토핑을 얹어 피자를 만들고 있었어요.  토마토소스를 바르고 모짜렐라 치즈를 마음껏 뿌리고 먹던 아이들.  첫째 잭은 형형색색의 피망을 토핑으로 올리겠다고 하는데 야채를 좋아하지 않는 동생 뚱이는 피망을 올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사실 잭도 피망을 야채로 그냥 먹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피자에 올라간 피망은 맛이 괜찮았다는 경험이 있고, 노랑, 주황, 빨강의 피망 색이 예쁘다 보니 자기들이 만드는 피자를 더 피자답게 만들고 싶은 열망에서 피망을 올리겠노라 결단을 한 거죠.  잭은 동생 뚱이에게도 피망을 올리는 게 어떠냐고 동생을 설득하더군요. 

잭: 뚱이~ 뚱이도 피자에 피망 올려~

뚱이: 안 좋아. 피망하는 거 싫어. 치즈만 할거야. (말과 동시에 피자에 올리고 남은 치즈를 폭풍흡입 중)

잭: 왜~ 피망 넣어. 

뚱이: 안 넣을거야. (치즈만 계속 폭풍흡입)

잭:  뚱이야, 치즈는 그냥 먹으면 너무 짜. 근데 피자에 넣으면 (맛이) 괜찮아. 피망도 똑같애. (그냥 먹는 건 맛이 안 좋아도) 피자에 넣으면 (맛이) 좋아. 

뚱이: 치즈만 할거야. (먹는 취향만큼은 꺾기가 쉽지 않은 동생)

아이가 치즈의 예를 들며, 피망에 대한 동생의 입장을 바꿔보려고 시도한 것에서 깜짝 놀랐어요.  제가 아이들을 설득할 때 자주 쓰는  방법을 그대로 잭이 동생을 설득하는 데 그대로 사용하더라구요.  동생을 설득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아이가 동생을 말로 설득시켜보려고 하는 그 모습이 대견하고 신기했어요. 

그런데 두 이야기를 적으며 보니, 아이가 제 말투와 언어습관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것 같아 좀 놀랍네요.  잭이 했던 말 그대로를 제가 한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거든요.  '(도구가) 가라지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가져와?'라는 말이 제 입에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아요.  아이들이 말을 안 들을 때 다른 상황, 다른 예시를 주며 현 상황에 대해 이해시키거나 납득시키려고 하는 것도 그렇구요. 

 

이번에는 둘째와 있었던 일이에요.  어디 부딪히고 넘어지고 다치는 일이 잦은 뚱이.  며칠 전에도 또 집안에서 달려가다 어딜 부딪혔네요.  

뚱이: 아야! 엄마 뚱이 여기 다쳤어.

몽실: 에고~ 우리 뚱이~ 또 다쳤어~ 많이 아팠겠다~ 다쳐서 어떡해.. 

뚱이: 엄마, 뚱이 오늘 너~무 많이 다치는 거 같아?

몽실: 응? (사실 그게 오늘 처음이었는데.. 그래도 니가 듣고 싶은 대답을 해주마 맘먹고) 응, 뚱이 오늘 너~무 많이 다치는 거 같아. 

뚱이: 그래서 엄마 마음이 많이 속상해?

몽실: 응, 엄마 너~무 속상해, 우리 뚱이 너무 많이 다쳐서. 

뚱이: 뚱이가 너무 아파서?

몽실: 응, 우리 뚱이 다쳐서 아프니까 엄마가 속상하지~ 아이고, 우리 뚱이~ 또 아야했어~

아이를 안고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데, 뚱이가 한 저 말들에 저는 소오름~ ㅋㅋㅋ 얼마 전, 쿵, 쾅, 쿵, 쾅.. 도대체 집 안에서만 뚱이가 몇 번을 부딪히거나 넘어졌는지.. 아이가 그날따라 유독 너무 많이 부딪히고 다치는 것 같아 참 많이 속상했어요.  그날 아이를 안고 아이에게 저런 말을 제가 건넷었죠. 오늘 우리 뚱이 왜 이렇게 많이 다치냐고.  오늘 뚱이 너무 많이 다치는 것 같다고.  엄마 너무 속상하네 하고..  그런데 그 말들을 그 순서 그대로 되뱉으며 제 입을 통해 그날과 동일한 대화를 듣고자 하는 뚱이. 정말 귀엽습니다.  아이가 부모의 말을 그대로 배우는 걸 보니 고운 말, 좋은 말을 많이 쓰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 뚱이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저 세살짜리 뚱이는 말도 잘하고 거침이 없는 편이라 형아 잭에게도 스스럼 없이 뭘 시키거나 할 때도 있어요.  형아 뭐뭐 해. 형아가 XX 해, 하면서 형아에게 지시를 내리기도 하죠.  그 상황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형아 잭이 자기도 모르게 동생이 시키는대로 행동을 하려고 하다가 문득 자기가 동생 말에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형아 잭이 갑자기 태세전환을 할 때가 있습니다.  둘 사이의 상호작용을 보고 있노라면 봐도 봐도 지겹지가 않아요.  

아이 둘을 키우는 게 최근까지도 참 힘들었는데, 전업육아 9개월째쯤 접어드니 저도 아이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상황대처능력도 올라가고, 아이들도 아이들대로 그 9개월간 많이 성장하고 성숙해져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재미가 아주 좋아졌습니다.  전에는 보람도 있고 기쁨도 있지만 힘듬도 참 많다고 느껴졌는데, 요즘은 이제 좀 요령이 생기는 것 같고, 재미도 있는데, 몸이 좀 힘든 게 아쉽다고 느껴져요.  그리고 벌써부터 이런 아기자기하고 알콩달콩한 재미가 가득한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만 같아 아쉽게 느껴집니다.  2년만 더 지나면 둘째가 지금 첫째 나이가 될텐데, 그 때는 상황이 지금과 정말 다를 것 같아요. 

사실 매일, 매해가 새롭습니다. 그러다보니 너무나 불확실한 우리의 미래가 불안하기도 해요. 앞날이 어떨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거든요.  유학이라는 구체적이면서 정해진 기간에 갖고 영국에 체류하던 제가, 갑자기 결혼을 하고 애도 둘이나 낳아서 이민 1세대가 되어 2세대 이민자를 키우는 현실.  이 드라마틱한 변화에 아직도 저 자신이 어리둥절하거든요.  갑자기 내가 엄마? 학부형? 교포 2세를 키우고 있는 이민자???  앞날이 구체적으로 잘 그려지지 않고, 그런 불확실한 미래가 많이 불안해요.  하지만, 불안하다는 마음보다는 기대되고 설렌다는 마음으로 바라보도록 하자고 되뇌어봅니다.  

앞으로 유학생으로 살 때와 정착한 이민자로 살 때의 차이에 대해서도 적어보면 재밌겠네요.  시간만 많으면 하고 싶은 얘기는 차고도 넘치는데..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는 시간을 찾기가 힘드네요.  이런 상황도 몇 년이면 금새 바뀌겠죠? 그렇게 기대해봅니다. 

업데이트가 불규칙하고, 글도 자주 올리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방문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