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다이어리/임신

1월 15일 밤 둘째를 출산했습니다.

옥포동 몽실언니 2020. 1. 27. 06:50

영국에서 제가 아이를 둘이나 낳다니. 

영국에서 오래 지내면서 한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 바로 지난 주에 일어났습니다. 

지난주 수요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열흘 하고 하루 전, 저는 옥스퍼드 대학의 JR 이라 줄여서 부르는 '존 래드클리프 병원' 에서 아이를 낳고 돌아왔어요. 

저에게 현재 허락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으므로 짧게 소식만 전하자면, 

1월 14일이 예정일이었으나 그로부터 하루 지난 15일 저녁 8시부터 갑자기 진통이 시작되어 (20분 간격) 9시까지 딱 세번의 진통이 있어서 긴장하고 집안일을 정리하던 중.. 진통 간격이 갑자기 줄어들어 15분만에 4분 간격 진통으로 발전했어요.  병원에 당장 전화를 걸었고, 둘째라 이야기를 하니 방을 준비해둔다고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하더라구요. 

황급히 샤워를 하고 미리 싸둔 짐을 챙기고, 방에서 주무시던 엄마를 깨워 잭 옆에서 함께 주무시라고 부탁을 드린 후 저희는 병원으로 고고.

병원까지 차로 25분.  차 안에서 급기야 진통이 2-3분 간격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 7층 조산원으로 올라가라고 안내해줬고, 7층으로 올라가자 검진실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진행하는 중.... 진통이 너무 빨라져서 바로 분만실로 이동. 

분만실에서 조산사의 가이드에 따라 진통을 견디고 (웃음가스라 불리는 가스형 진통제 흡입) 힘주기를 이어가다보니 아이 머리가 나오고, 아이 몸까지 꿀렁~꿀렁~ 하며 분만 완료!

조산사는 아이가 나오자 마자 수건으로 아이를 감싼 후 아이를 제 맨 가슴에 얹어줬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했어요. 

"아이 몸이 양수가 터지면서 나왔어요.  양수가 터지면서 아이가 나오면 아이에게 행운이 있다고 이야기한답니다."

아이 몸이 나올 때 꿀렁 꿀렁 하는 느낌이 든 것이, 양수가 터지면서 양수와 함께 부드럽게 나와서 그런 느낌이었나 봅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에게 행운이 많다니, 과학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그저 미신같은 이야기지만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틴틴에게 아이의 출생시각을 물었습니다. 

"지금 몇시야?"

틴틴에게 물으니, 조산사가 시간을 알려줍니다.  아이 출생시간은 밤 11시 10분이라고. 

"잭이랑 거의 비슷한 시간에 나왔네."

틴틴의 이야기에 놀란 저는,

"뭐라고? 몇 시라고?"

라고 되물었습니다.

"11시 10분."

"진짜?"

우리가 병원에 도착한 것이 10시 25분, 조산원으로 올라간 게 10시 반 남짓이었을텐데, 자그마치 40분만에 아이가 나와버린 거죠, 

스스로 낳고도 믿기지 않은 현실. 

영국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탯줄을 바로 자르지 않고, 엄마 가슴 위에 올려둔 채로 탯줄이 기능을 다 할 때까지 탯줄을 통해 최대한 영양을 공급받도록 해둡니다.  그리고 탯줄이 기능을 다하게 되면 그 때 탯줄을 자릅니다.  잭을 낳았을 때도, 이번에도 틴틴이 탯줄을 잘랐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제 몸 위에 있는 동안 조산사들은 아이를 감싼 수건을 여러번에 걸쳐 교체하며 아이 몸을 닦아내주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아이를 안고 있는 동안 조산사들은 제 몸에 출산 후 처치들을 이어갔습니다.  태반이 나오는 것을 도와주는 주사를 다리에 놓은 후 몸에 힘을 주니 태반이 나왔고, 그 후 아이를 낳느라 회음부에 생긴 열상으로 인해 조산사가 직접 스티치를 했습니다.  이번에도 피부조직과 함께 근육조직까지 찢어지긴 했으나 근육조직의 열상은 정도가 약하다고 합니다.  첫째를 낳았을 때는 근육조직도 상당히 찢어져서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첫째때보다는 여러모로 나았습니다.  아이가 더 작게 태어나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잭은 3.26킬로, 둘째는 3.03킬로).

모든 후처치를 마친 후 회복실로 옮겨진 저희 셋은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잭을 낳았을 때는 병동에 입원을 해서 틴틴이 병원에 함께 머물 수 없게 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다행히 조산원 회복실에 입원한 덕분에 틴틴이 밤에 함께 머물 수가 있었습니다.  회복실에는 저와 틴틴이 함께 누울 수 있는 더블사이즈 침대 하나와, 아기 바구니 하나가 놓여져있었습니다. 

아기를 낳고 한밤 중에 토스트를 준다는 것을 극구 사양하고 (애 낳고 토스트가 왠말입니까!!), 집에서 가져온 바나나 두개로 허기를 채운 후 잠을 청했고, 틴틴은 새벽 6시까지 저와 함께 자다가 집으로 돌아갔고, 그때부터 저는 방에서 아기와 단 둘이 남아있었어요. 

출산 후 다음날 오전, 병원에서 기본적인 아기 신체검사를 받고, 저의 소변양 체크를 받은 후 저희는 그날 오후 6시에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병원에서는 아침식사로 씨리얼이나 빵 중에 선택하라 해서 저는 어린아이들용 아침식사에 자주 쓰이는 위타빅스를 달라하여 우유에 말아먹었습니다.  산모의 출산 후 첫식사로.. 한국에서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히는 식단이죠? ㅋ 보기에 저래 보여도 담백하니 나름의 맛은 있습니다. ㅋ

첫째 아이를 낳고 나서 제가 병원에서 먹은 식사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한 글--> 2017/12/28 -영국 대학병원의 산모식단

식사를 마친 후 아이를 바구니에 든 채 5층으로 내려가 신체검사를 받고 돌아왔지요. 산모가 직접 아기 바구니를 끌고 7층에서 5층까지 다녀와야 합니다. 아이가 잠을 자며 눈을 뜨지 않는 바람에 눈 검사를 진행할 수가 없어서 그것 때문에 아이 눈 뜨기를 기다리느라 저녁 6시까지 퇴원을 못 했답니다.  그것만 빨리 진행되었어도 좀 더 일찍 퇴원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조산사 말이, 외국애들이면 잠을 자고 있어도 눈꺼플을 올리면 눈을 볼 수가 있는데, 저희 아이의 경우 동양인의 눈이어서 눈 꺼플을 올려도 눈을 볼 수가 없다고 ㅋㅋㅋ 이렇게 깨우는 데도 안 일어나는 애기는 처음 본다고.. 기가 막혀 하더군요.  그 장면을 보는 저도 기가 막힐 노릇이었구요.  그 바람에 조산사는 저희 아이 눈 검사를 위해 제 방으로 세번이나 방문을 했답니다. 

눈 검사를 안 할 때는 이렇게 두 눈을 뜨고 있는데, 눈 검사를 하는 그 시간에는 어쩜 그리 잠만 자는지..

저희 첫째 잭이 태어나던 날에는 유례없는 폭설이 내려 다음날 교통이 마비되었는데, 저희 둘째가 태어난 날은 태풍주의보가 내려 하루 종일 비가 왔습니다.  저는 창 밖의 비를 내다보며 집에 간 틴틴이 다시 돌아오길 기다렸지요. 

아이 신체검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니 점심과 저녁 식사를 신청하라고 식사 메뉴판이 침대에 놓여있었어요.  저는 최대한 건강식으로 신청을 했습니다.  병원에서 디저트로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볼 때마다 참.. 신기한 일인 것 같아요. 

이렇게 식사 주문을 하려고 하였으나... 아이 신체검사 받느라 식사신청 시간을 놓쳐버리는 바람에 저는 아무거나 주는 것을 먹어야 하는 신세로 전락. 

그렇지만, 이번에는 엄마가 와 계시니 틴틴 편에 엄마가 미역국에 밥을 준비해서 보내실 거라서 밥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의 반전.  틴틴이 밥을 싸 와서 그 밥으로 배 불리 식사를 하긴 했는데, 무슨 일인지 실수가 생겨 제 방으로는 단 한번의 식사 배달도 오지 않았다는 사실!!  집에서 밥을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하루 종일 굶을 뻔 했던 거 있죠!  오후에 배가 고파서 저에게 점심이 배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자, 그럼 샌드위치라도 가져다 주겠다고 해서 치킨샌드위치를 달라고 해뒀는데, 20분이면 준비된다고 했던 그 샌드위치 마저도 배달되지 않았다는 사실.  같은 층에서 계속해서 분만이 이루어지고 있다 보니 다들 바빠서 실수가 생기게 마련이겠지만, 집밥 없었더라면 어쩔 뻔 했나 싶던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둘째를 낳고 집에 와서 엄마와 틴틴과 함께 일주일을 보냈고, 틴틴은 회사로 복귀했어요.  

이제 26개월이 된 큰 아이와 갓난아기가 함께 있다 보니.. 어른이 셋인데도 손이 부족합니다.  그나마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는 평일은 할 만한데, 주말은 모두가 힘듭니다.  잭은 잭대로, 틴틴은 틴틴대로, 저는 저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잭은 현재 감기에 걸렸고, 틴틴은 그 감기를 옮았고, 저는 아직 회복 중인데 밤마다 혼자 갓난쟁이를 돌보다 보니 몇시간마다 깨서 수유와 기저귀갈기를 계속하느라 만성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엄마는 엄마대로 연세도 많으신데 시차적응 안 된 상태에서 저희 밥을 해 주시며 아이 돌보기를 도와주시다 보니 엄마는 엄마대로 힘드신 상태예요.  갓난쟁이는 갓난쟁이대로 형아의 감기를 옮으려는 건지 오늘부터 이 아기도 콧물이 졸졸 흐르네요.

그렇게 저희 다섯가족은 고군분투하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힘은 들지만 웃을 일도 많아요.  몸은 고되지만 기쁨도 많습니다. 

엄마가 계신 동안 이렇게 겨우 버티고 있는데, 엄마가 가시고 나면 어쩌나 벌써 걱정이에요.  그러나 그 걱정은 엄마 가신 후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오늘의 일에 집중해야겠어요.  당장 내일 잭 도시락으로 뭘 싸줘야 하나 고민입니다. 

다음에는 동생의 등장 후 잭이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뜻깊은 새해 보내셨길 바라고, 올 한해 건강하고 웃음 넘치는 한해 되시길 바랄게요!

그럼 모두 다음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