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다이어리/한국 정착기 2020.11-2021.02

[한국정착기] 한국에서 우리 아이가 좋아한 것들

옥포동 몽실언니 2021. 4. 22. 19:40

한국에 머물는 동안 저희 아이가 좋아했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지하주차장 

저희 아이는 한국에서 지하주차장을 그렇게 좋아하더군요.  영국에 살면서는 한국식으로 치자면 아파트라 할 수 있는 플랫에 사는 고모집에 가면 지하주차장에 차를 댑니다.  고모집을 가 본 적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그래서 그런가 그 때마다 지하주차장을 그렇게 무서워하더니 한국에서는 지하주차장을 아주 좋아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지하주차장에 탁 트인 공간을 좋아한 것 같고, 그래서 마음껏 뛸 수 있어서 좋아했던 것 같고(위험하니 뛰지 못하게 하느라 힘들었던 기억), 차량이 나오거나 들어올 때 삐이삐이 울려대는 알람 소리가 신기하고 좋았던 것 같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에서 지상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재미있었나봐요.  영국에서는 그렇게나 무서워하더니, 한국에서는 지하주차장만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항상 들어가고 싶어해서 그걸 말리는 게 참 힘들었어요. 

엘리베이터

영국에서는 엘리베이터를 무서워했던 아이였어요.  어둡고, 폐쇄적인 공간 때문인지 엘리베이터를 타면 늘 무서워했던 아이가 한국에서는 엘리베이터를 너무 타고 싶어했어요.  항상 타고 싶어했습니다.  영국 엘리베이터보다 더 밝기 때문인가.  엘리베이터가 더 크기 때문일까.  저도 생각해보면 영국에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 느껴지는 이상한 긴장감이 한국 엘리베이터에는 없는 것 같아요.  모두 한국사람들이 이용하기 때문이려나요...?  아이가 왜 그리 좋아했는지는 저도 이유를 알기가 힘드네요. 

아쿠아리움

부모님 댁 근처에 아쿠아리움이 있어서 주말 오전에 다녀왔어요.  입장료가 제법 비싸더군요.  둘째 뚱이는 부모님께 맡기고, 잭만 데리고 다녀왔던 아쿠아리움.  아이가 정말 좋아했어요.  물고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기 보다는, 신기하게 연결되는 통로들, 군데 군데 설치되어 있는 신기한 기구들, 그 안에서 할 수 있었던 몇 가지 재미난 활동들에 즐거워했던 것 같습니다. 

케이블카 타기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가서 타곤 했던 케이블카.  나중에 자라서는 케이블카가 환경에 얼마나 나쁜지 알게 되면서, 그리고 어릴 때 없던 고소공포증이 생기면서 케이블카를 거의 타지 않았는데, 부모님께서 잭을 데리고 케이블카를 타러 다녀오셨어요.  정확하게는 저희 아버지, 형부, 잭, 남편.  이렇게 남자 넷이 다녀왔지요.  저는 그 날... 어디를 갔더라...? 뭔가 일을 하러 가고 없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태어나서 처음 타 본 케이블카.  아이는 그게 그리 신기하고 좋았는지, 다녀와서 제게 내내 묻더군요.

"엄마도 케이블카 타 봤어? 엄마랑 같이 또 가고 싶다."

그리하여 얼마 후 엄마 생신날, 엄마, 아버지, 저, 잭 이렇게 넷이 다녀왔습니다.  틴틴은 몸이 좋지 않아서 집에서 뚱이랑 둘이 있겠다고 해서 저희 넷만 다녀왔지요.  

영국에 돌아와서도 잭이 자주 얘기해요.  

"엄마, 케이블카 타러 가자."

흠... 케이블카라...  

저희가 사는 아빙던에서 가까운 케이블카를 찾아보니 런던에 있고, 아일 오브 와이트 (Isle of Wight)에 있고, 그 다음으로는 리버풀 쯤 가야 있네요.  런던에 있는 것은 도심 위를 구경하는 것이고, 잭이 좋아하는 자연 위를 통과하는 케이블카로는 집에서 가까운 것이 아일 오브 화이트.. 2시간 45분.... ㅠㅠ 휴게소 쉬어가며 가면 3시간 반은 족히 걸릴테니, 저희는 적어도 둘째 뚱이가 세 살은 되어야 그 정도 거리의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댁에서는 차로 40-50분만 가면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는데, 참 아쉽네요. 

Isle of Wight의 케이블카 사진 출처: http://www.theneedles.co.uk/plan-your-visit/supersaver-tickets/

해운대 백사장

부산으로 이사간 큰 언니.  마침 또 초중고를 함께 다닌 가장 친한 친구도 부산으로 이사를 가서, 저에게 부산은 참 특별한 곳이에요.  친구네 가족은 저희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 부산으로 가서, 친구는 의도치않게 고3 생활을 외삼촌네에서 하게 되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족들이 있던 부산으로 돌아갔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힘들고 예민했을 고3 시기를 부모님 없이 지내느라 친구가 정말 힘들었을 것 같네요. ㅠㅠ 당시에도 친구가 힘들어했던 기억이 나긴 합니다.  부모님 없이 힘들게 지내느라 수능 성적이 평소 실력대로 나오지 않았던 친구는, 결국 부모님이 계시는 부산으로 가서 재수를 했고, 현재는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직업을 갖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살고 있답니다.  

오래된 친구가 좋은 것은 한참만에 연락해도 언제나 어제 만난 사이같다는 점, 그리고 언제 연락해도 늘 반겨준다는 점이겠지요.  집에 있기 답답해하는 잭을 데리고 일단 집 앞으로 나왔는데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저는 큰언니에게 전화 한번, 부산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한번 했습니다.  혹시 우리가 오늘 부산으로 가도 되겠냐고.  요즘 제2의 인생 커리어를 시작한 저희 언니는 이미 여러 일정이 있어서 시간이 나지 않았고, 친구는 현재 당직 중인데 저희가 도착할 시간 즈음이면 일이 끝날 것 같으니 얼마든지 오라고 했어요.  그리고 하룻밤 자고 가도 된다고 하네요.  사실, 친구가 시간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잭만 데리고 둘이서 부산에 가서 바다를 보고 올 요량이었고, 그래서 가방에 아이의 여벌옷을 챙겨뒀습니다.  그리하여 잭은 그토록 원하던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갔고, 부산에서는 지하철도 타보고, 백사장 바닷가에서 모래놀이도 하고 왔지요. 

기차 타기

영국에서는 기차를 타고 싶어도 탈 수 없었던 아이.  코비드로 인해 작년 3월부터 필수 여행이 아니면 여행이 금지되어 있었던 시간이 대부분인지라 아이는 기차역에 가서 기차역을 통과하는 기차들을 구경밖에 할 수 없었어요.  늘 책으로만 기차를 보고,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기차를 바라보기만 했던 아이가 한국에서 기차를 탔습니다.  그것도 여러번이나 탔습니다!  부산 가느라 두 번, 할머니 할아버지댁(아빠의 부모님)에 가느라 두 번!  왕복으로 탄 것을 생각하면 총 8회나 기차를 탔네요~ 

처음 기차를 탄 날.  아이는 거의 꼼짝마 자세로 미동 없이 앉아있었어요.  많이 긴장했나봐요.  처음으로 타는 기차이다 보니.  그리고, 여러번의 경험이 쌓이자 기차 통로를 다녀보기도 하고, 기차 화장실을 이용하는 엄마를 따라 들어와서 손을 씻기도 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 외에도,

홈런볼, 마시는 야쿠르트, 네모난 아이스크림 엑설런트를 아주 좋아했지요. 

그리고, 수경이 누나, 서윤이 누나, 도윤이 형아와 만나는 것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영상으로만 만나던 이모들을 직접 만나는 것도 좋아했구요.  자기보다 적게는 여덟살, 많게는 열두살 많은 형, 누나들을 이름으로만 부르는 통에 저희 조카들이 웃음바다가 됐어요.  방에서 숙제를 하고 있는 제일 큰 누나, 수경이 누나에게 "수경~ 나와서 밥 먹어~" 하는 통에 부끄럼 많은 조카가 얼굴이 빨개졌답니다. 하하하하.

한국에서의 추억을 적고 나니 다시 한국이 그리워지네요.  

곧 또 한국에 갈 날이 오겠죠?  그 날이 벌써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