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다이어리/나의 해외유랑기

[중3겨울, 호주] 나 때문에 일본인 언니가 울었다.

옥포동 몽실언니 2021. 4. 28. 00:38

호주로 간 어학연수.  겨우 3주의 기간이었지만 내가 호주로 떠난 것은 단기 어학연수였다. 당시 어학 수업 중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나 때문에 일본인 언니가 울었던 일이다. 

내가 다녔던 어학학원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시드니 시내 어딘가에 있던 어학학원이었다.  건물 안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인근에는 펍도 있었고, 큰 길 건너에는 맥도날드도 있었다.  학원을 가는 길에 시청 건물 같아 보이는 큰 건물에 시계탑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역에 내려서 학원까지 걸어가는데, 그 역이 꽤 규모가 있는 역이었던 기억이 난다. 

성인반에서 수업을 받다

학원에서는 통상 그러하듯 레벨테스트를 받았다.  그 결과, 나는 나와 함께 단기연수를 떠났던 두 명의 초등학생 아이들과 같은 반을 하기에는 수준이 높았고, 나 이외에는 중고등학생 단기연수생이 없어서 반 편성에 어려움이 있었다.  당시 학원에 있던 중고등학생들은 모두 호주로 유학을 떠나온 친구들로, 내 또래들의 수업은 모두 학교 수업처럼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학원에서는 단기 연수생인 나를 그 아이들과 같은 반에 넣을 수도 없었다. 그 결과 학원에서는 나를 성인반에 넣기로 했다.  

우리 반에는 한국 언니 오빠들이 많았고, 일본 언니도 하나 있었다. 그 외에 외국인이 있었던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있었더라도 소수였고, 대부분이 한국 언니 오빠들이었다.  

나는 사촌 언니 오빠들이 아주 많아서 언니 오빠들과 지내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우리 친척이 아닌 언니 오빠들과, 그것도 같은 수업을 받으며 공부한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일이었다.  특히, 여러 곳에서 각기 다른 일을 하다 이 곳으로 온 언니 오빠들이라는 점은 아주 흥미로웠다. 

같은 반 언니 오빠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나에게도 꽤 친절했던 것 같다.  특별히 관심을 많이 주거나, 잘 챙겨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정다감한 편이었고, 내가 다가가면 늘 친근하게 대해줬다.  특히, 빌리 오빠.  음악을 전공한 오빠였는데, 빌리 오빠가 은근히 나를 잘 챙겨줬던 것 같다.   

나는 레벨테스트를 거쳐 그 반에 배정되었지만, 막상 가보니 나는 그 반에서도 영어를 잘 하는 편에 속했다.  

내 수준은 공부 잘 하는 중 3의 수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성인 반에서 내가 영어를 제일 잘 하는 것을 보고 나는 놀랐다.  같은 반 언니 오빠들에 비해 내게 부족했던 것은 뻔뻔함?  잘 못해도, 틀려도 당당하게 말 할 줄 아는 당당함? 그런 건 많이 부족했다.

당시만 해도 나는 어렸고 순진해서 성인이 되면, 특히 해외로 나오는 성인이라면 모두 영어를 잘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같은 반 언니 오빠들은 영어를 별로 잘 하지 못 했다.  중학교도 졸업하고,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대학교도 좀 다니거나 졸업하고 온 언니 오빠들인데도 영어를 나 정도밖에 혹은 그것보다 못 한다는 사실에 나는 좀 놀랐다.  그 때 나는 내가 생각보다 모범생이고, 학업능력이 좋은 편에 속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중학교 때 이미 다 배우고, 학교 시험에서도 반복적으로 나오는 표현들을 반복적으로 배우고 있었는데, 언니 오빠들은 종종 틀렸다.  가령, be excited at, be intested in.. 같은 표현들.  앞에 따라오는 말에 맞는 전치사가 따로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었는데, 언니 오빠들은 짝이 맞는 전치사를 잘 맞추지 못했다.  틀릴 수도 있고, 배워도 기억을 못 할 수도 있고, 알고 있지만 그게 생각보다 잘 안 될 수도 있는건데, 당시의 어린 나는 그걸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 때문에 일본인 언니가 울다

그러던 어느날, 같은 반에 있던 일본인 간호사 출신 언니가 수업 중에 눈물을 터뜨렸다.  그 언니는 결석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를 매 수업시간마다 보지는 못했다.  그 날은 교재에 있는 문장에 있는 빈 칸을 채워서 문장을 완성해서 말 하도록 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오랫만에 학원에 나온 언니는 그게 잘 기억이 안 되는지, 다들 쉽게 문장을 완성해서 문장을 읽는데 언니는 그게 잘 안 되자 울고 말았다.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님은 갑작스런 학생의 울음에 깜짝 놀라 왜 그러냐고 언니에게 물었더니, 이 언니가 했던 말.

"저 어린 몽실이도 잘 하는데, 나는 그걸 잘 못 해서..."

응....?? 다 큰 언니가 그런 일로 울다니.  나는 그 때도 놀랐다.  언니가 자기보다 한참 어린 나와 자신을 비교해서 우는것에.  

선생님은 괜찮다고, 계속 하면 된다고, 부담 갖지 말라고. 몽실이는 학원을 안 빠지고 계속 나와서 잘 하는 거라고 그 언니를 달래주셨다.  

당시의 나는 그 선생님의 반응에도 놀랐다.  수업시간에 뜬금없이 눈물을 보이는 그 언니의 행동에도 뭐라하지 않고 진심으로 그 언니를 달래주셨다.  그런 일은 내가 속해있던 한국의 교육환경에서는 잘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잘못한 것도 없이 그 언니에게 미안했다.  아주 많이 미안했다.  왜 그렇게 미안했던 것일까.  내 잘못도 아닌데.  아는 걸 일부러 모르는 척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란 아이가 성격이 되바라져서 나서기를 잘 하거나 잘난 척을 하는 성격도 아니었는데.  오히려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이다 보니, 내가 의도치는 않았지만 내가 언니를 울린 것만 같았고, 그 일로 인해 언니 오빠들이 모두 나를 싫어하면 어쩌나 조금 걱정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쉬는 시간. 

나는 여전히 어쩔 줄을 몰랐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던 것 같다.  나는 숫기가 없었다.  

다른 모든 언니 오빠들이 간호사 언니를 달래줬다.  괜찮다고.  자꾸 하다 보면 될 거라고.  몽실이는 아직 어리고, 학교에서 한창 배우다 와서 잘 아는 거라고. 

키가 크고 잘 생긴 외모의 한 오빠는 이 간호사 언니를 자기 무릎 위에 앉혀서 둥가둥가하며 언니를 달래줬다. 

응...?  수업시간에 울었다고 저렇게 성인이 다른 성인을 다리에 앉혀가며 달래주다니! 

알고 보니, 그 언니와 오빠는 사귀는 사이였다.  언니가 학원을 잘 나오지 않아서 나만 모르고 있었던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둘이 그러고 앉아 있는 그 모습은 티비에서 뽀뽀하는 장면도 나오지 않던 시절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는 또 하나의 문화충격이었다.  티비 프로그램이 아닌 실제 상황에서 성인 언니 오빠들의 연애행각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