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다이어리/나의 해외유랑기

내가 받은 영어 '조기교육', 그리고 그 영향

옥포동 몽실언니 2021. 5. 13. 08:37

 

사진출처: https://unsplash.com/photos/jAebodq7oxk?utm_source=unsplash&utm_medium=referral&utm_content=creditShareLink

 

나는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영어를 잘 하는 편에 속했다.  사실, 가장 잘 하는 아이 중 한 명쯤은 되었을 것이다.  내가 다니는 중학교는 학군이 좋은 곳에 있던 학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지역 내에서 가장 안 좋은 학군 중 하나였으리라.  학교 주위는 동네 시장.  시장 골목길을 통과해야 학교가 나타나는 그런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해외에 살다 온 아이들이나, 영어 원어민 과외를 받는 아이들은 아주 희귀한 아이들이었다. 

한 학급이 58-60명씩 총 14개 학급이나 있었기에 전교생을 내가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아이들 중에서는 해외에 살다 온 아이가 없었고, 원어민 과외를 받는 아이도 없었다.  중 3때 우리 반이었던 효민이가 중 3을 마치고 호주인지 뉴질랜드인지로 조기유학을 갔는데, 그 친구가 해외 경험을 가진 유일한 친구였다.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이전의 시대이니 그도 그럴 만 하다.  1995년 김영상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세계화, 글로벌 사회, 영어 이런 것들을 강조하며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으니.  

그런 시대적인 분위기에서 나는 나름 우리 동네에서는 영어 '조기교육'을 받은 아이였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특히 우리 동네에서는 대부분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알파벳과 함께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나는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에 시내에 있던 영어학원을 다니며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는 우리 반에 나 말고 딱 한명 정도가 전부였다.  내가 다닌 학원은 우리 지역에서는 꽤 유명한 학원이었는데, 그 학원을 다니는 아이는 나와 우리 옆집 살던 친구 하나 뿐이었다.  옆집 친구는 우리 엄마가 나를 그 학원에 보낼 거라 하니 자기 딸도 같이 다니면 좋겠다고 함께 보내셨다.  그 덕에 나도 옆집 친구와 함께 학원을 오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 거리인데, 친구와 함께 오가며 수다도 떨고, 간식도 사 먹는 게 당시로서는 호화로운 여가활동이었다. 

당시 내가 영어를 일찍 배웠던 것은 엄마에게 영어학원을 보내주든 뭘 하든 내가 영어를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졸라댔기 때문이다.  그 때 내가 영어를 배우고 싶었던 동기는 딱 하나.  중학교에 들어간 작은언니가 나에게 자꾸 영어로 뭐라고 해대기 시작하는데, 영어에 'ㅇ'자도 모르는 나였건만 저건 분명히 날 욕하거나 모욕하는 게 분명해보이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기억에서 희미해졌는데, 언니가 너는 바보다, 멍청하다, 이런 식의 말을 했던 것 같다. 

뭐라고 하는지 알고 싶은데 절대 가르쳐 주지 않고, 자꾸만 자기의 짧은 영어로 나를 약 올리는 언니가 얄미워서 언니의 입을 다물게 하고 언니의 말에 대응하기 위해 나는 영어를 배워야했다. 

당시에는 언니가 미웠지만, 내가 영어를 일찍 배울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줬다는 점에서는 언니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흥미로운 일이었고, 처음으로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학원'이라는 기관을 다닌다는 것은 내게 좀 더 다양한 경험을 선사했다.  내가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자 알파벳 쓰는 법, 소문자 적는 법 등을 언니에게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가끔 그것도 모르냐고 나를 무시하는 말을 하긴 한 것 같지만, 그러면서 언니도 자연스럽게 나에게 하던 영어 욕을 끊어서 그것도 좋았다. 

영어 학원을 다니면서는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도 즐거웠지만,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난다는 것이 신나는 일이었다.  나와 다른 학교를 다니며, 나와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는 아이들과 친구가 되는 일은 당시의 나이에는 아주 설레이는 일이었다.  꽤 가까워졌던 친구가 두어명 정도가 있었는데, 6학년이 되고 시간이 얼마 더 지나면서 언제인지 분명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중학교에 갈 때 즈음 해서 학원을 끊었던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초기까지는 학원을 다녔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렇게 학원도 중단했고, 그 친구들과도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졌다. 

다른 친구들보다 영어를 조금 더 일찍 배우기 시작했던터라 나는 중학교 영어가 쉽고 재밌었다.  어려운 게 별로 없었다.  문법은 좀 어렵긴 했다.  2형식이니, 3형식이니 이런 것들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렇게 영어를 가르쳤나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는 학원에서 영어를 처음 배우면서 알파벳도 모르는 상태에서 원어민들에게 회화 수업을 받으면서 좀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힌 것 같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은, Stand up 이라는 표현을 배우고 나는 앞의 단어 stand 는 "스탠", 뒤의 up은 '덥'이라고 발음되는 줄 알고 있다가, 나중에야 up은 '업'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것.  쓰기는 up라고 쓰는데 왜 '덥'이라고 발음될까, 희안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stand up 이라서 '덥'이 되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Do you like apples?" 같은 의문문을 처음 배울 때도, do는 '도'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왜 '두'라고 발음될까 하고 의아해했던 기억.  그렇게 별 체계는 없지만 소리로, 문장으로, 말로 먼저 영어를 배웠고, 학원에서 친구들 만나는 재미에 학원에 재미를 붙였고, 영어를 일단 어렵지 않게 느끼다 보니 중학교를 다니는 내내 영어가 어렵고 힘든 과목이 아니라 조금만 공부하면 성적을 쉽게 받을 수 있는 편한 과목으로 느꼈던 것 같다. 

어쨌든 작은 언니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 시작하게 된 영어 덕분에, 나는 영어학원에서도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이후 호주에 가서도 다양한 언니 오빠,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거기서 만난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영어를 조금 일찍 시작한 덕분일까, 다른 과목들보다 영어가 쉬웠고, 그래서 영어를 잘 했고, 그 덕에 영어를 전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아버지께서는 나를 영어교육과로 보내셨다(내 대입원서를 아버지께서 쓰셨다).  대학을 가고 보니, 영어를 "잘" 하는 건 아주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 하는 건 그냥 시험 문제만 맞추면 되는 그런 일이 아니라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어는 아직도 내게 큰 산이다.  영어를 잘 할 수는 있어도, 아주 잘 하는 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영어와 관련 없는 일이 하고 싶었는데.  결국 영국에 와서 이렇게 살면서 영국 사는 이야기를 적고 있다니.  인생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