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출산 10주 달리기: 3.2km Easy Run

옥포동 몽실언니 2018. 2. 20. 19:31

출산 9주를 넘어서며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아침마다 짧지만 빠른 속도로 산책을 하다가 드디어 지난 토요일, 출산 딱 10주, 우리 아기 10주 생일이 되던 날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도해보았다. 

출산 10주 첫 달리기: Easy Run 3.2km

그간 빠른 속도로 걷는데 큰 무리가 없는 것을 확인했고, 그 이틀전에는 3분을 연속해서 가볍게 뛰는 것에 성공하면서 어느정도 느린 속도로 달리는 것도 가능하리라 생각되었다.  게다가 그간 계속된 추위에 야외 운동이 힘들었는데, 그 날은 기온은 1도여도 바람이 적어서 (한국의 평균적 바람 정도.  영국은 늘 한국보다 2-3배 강한 바람이 부는 편이다) 춥지만 달리기를 하기에는 무리가 없어보였다. 

갑자기 뛰기로 한 데에는 날씨가 너무 좋았던 것도 한 몫을 했다.  간만에 주말 아침에 이런 해를 보다니..!  아이를 낳고 처음에는 애가 어려서, 그리고 최근에는 애가 감기 걸린 탓에 야외에서 해를 쬔다는 것은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 이런 맑은 주말 아침이 왔으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아침 수유를 마치자 마자 틴틴에게 잭을 맡기고 나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밖으로 나와 달렸다. 

집 앞 골목길을 나서면 이런 도로와 자전거도로가 인도에 함께 있는 인도가 나타난다.  이렇게 한적한 동네에 이 몽실언니와 틴틴, 잭이 살고 있다.  보기만 해도.. 참.. 평화롭지만 심심해보인다.

일단은 "Easy Run"이 목표.  말그대로 편안하고 쉽게 달리는 것이다.  빠르게 속도 낼 필요도 없이 천천히.. 몸을 풀어준다는 느낌으로.  마음속의 목표는 1킬로.  1킬로가 가능하다면 2킬로.  2킬로가 가능하면 3킬로까지.. 욕심을 내어 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집 앞에서부터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주한 거리가 3.2킬로.  사실 3킬로만 달리기에는 아쉬운 생각이 들어서 굳이 200미터를 더 달려서 3.2킬로이자 2마일을 달렸다. 

10분쯤 달렸나.. 저 수풀 울타리 너머에.. 사진에 너무 작게 나와서 잘 보이지 않겠지만.. 하얀 말이 풀을 뜯어먹고 있다.  이런 농장이.. 바로 동네 인근에 있는.. 그런 곳이 우리가 사는 아빙던이다.

저 울타리에는 시에서 만드는 것인지, 저 농장 주인이 새긴 것인지, 이 지역의 상징인 Vale of White Horse 의 모습을 울타리에 새겨두었다.  귀엽다. 

그리고 거기서 한 10미터를 더 달리면 아래와 같이 "HAVE A NICE DAY"라고도 새겨뒀다.  아래 사진은 오늘 아침 달리기를 하며 찍은 거라 날씨가.. 지난 토요일과 달리.. 매우 흐리다.

주말 오전은 가히 엄마들의 시간!  영국의 가정들을 보면 대부분 토요일 아침은 엄마들에게 자유시간을 주는 집들이 많다.  그래서 토요일 아침에는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여자들이다.  같은 가방을 맨 두 아주머니께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며 내 앞에서 열심히 달리신다.

돌아오던 길목에 발견한 울타리 위의 고양이.  너의 세상이구나!  도도한 고양아!

그렇게 달린 첫 달리기 기록.  거의 반년 넘게 만에 처음 달린 것인데 기록이 나쁘지 않다. 3.2킬로를 24분 45초에 달려서 평균 1킬로미터를 7분 44초 페이스로 달린 것.

첫 달리기의 여파:

토요일 당일은 기분이 참 좋았다.  몸도 가벼웠다.  

일요일이 되자, 몸이 좀 노곤한 느낌.  그리고 다리 안쪽이 좀 당기는 느낌.  이날은 산책도, 운동도 노노!

월요일: 뜨아.. 이렇게 몸이 무거울 수가!!! 이건.. 뭐..토요일에 한 8-9킬로는 뛴 듯한 느낌.  거기에 밤새 아이의 배앓이로 잠도 설쳐서 컨디션도 안 좋고 기분도 안 좋다.  스트레스 받으면 먹는 걸로 푸는 나쁜 습관이 있는 몽실은 이날 하겐다즈 쵸코맛 아이스크림 큰 통을 거의 다 비워내버렸다. ㅠㅠ 그리고 배가 아파서.. 짜증이 났다. 

화요일:  바로 오늘이다.  출산 10주 3일째인 오늘 아침.  어제 초저녁 수유를 마치고 아이가 잠들기 무섭게 나도 잠에 들었다.  자정에 아이에게 유산균을 한방울 더 먹였더니 어젯밤에는 배앓이가 좀 잦아들었고, 그 덕에 나도 틴틴도 좀 더 편히 잘 수 있었다.  틴틴에 따르면 어제 내가 얼마나 피곤해보였냐 하면 코를 그렇게 골면서 자더랜다. 

출산 10주 3일 3.2km Recovery Run

그렇게 바로 오늘, 새벽 수유를 마치고 아이 응가를 시키느라 배 마사지를 하다가 아이는 드디어 큰 모닝똥을 선사하고 잠시 또 잠에 들었다.  그리고 일어나서 다시 아침 수유.  아침 수유를 마치기 무섭게 나는 다시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얼굴에 썬크림을 대충 바르고 밖으로 나갔다.  출산 후에는 해를 잠시만 쬐어도 눈 주변에 거뭇거뭇하게 기미가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뜨아한 후 이제는 썬크림을 잊지 않고 바르려고 노력 중이다. 

어쨌든 그렇게 밖으로 나와 달렸다. 

오늘은 집을 늦게 나서는 바람에 틴틴 출근 전에 내가 샤워도 하고 아침도 먹으려면 얼른 짧게 뛰고 돌아가자 생각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뛰다가 시계를 보니 1.15킬로를 이미 달렸다는데, 왠걸!  속도가 1킬로미터에 6분 44초 페이스가 아닌가! 

그렇게 달리고 달려.. 토요일과 비슷한 코스로.. 그러나 마음이 급해서 그날보다는 조금 짧은 코스로 달렸다.  오늘은 Recovery Run으로 1-2킬로만 뛰고 걷자 싶었는데 뛰다 보니 잘 뛰어져서 욕심내서 오늘은 딱 3킬로만 뛰자..싶었다.  그러다가 결국은 더 욕심 나서 지난 토요일과 마찬가지로 3.2킬로를 달려버렸다. 

오늘의 달리기 기록은 아래와 같다.  3.22킬로미터를 21분 44초만에 달려 그 평균 속도가 1킬로를 6분 45초에 달리는 페이스!  축하축하!!

아니.. 어떻게 이런 빠른 속도로 달렸지?  내 처음 목표는 8분 정도의 페이스로 달리는 것이었는데.. 8분 페이스면.. 좀 키 큰 서양인이 빨리 걷는 정도와 비슷하려나.. 아무튼.. 그렇게 욕심없이 뛰기 시작했는데, 토요일에 달리기를 하고 일요일과 월요일 달리기를 하지 않는 동안 몸이 잘 회복을 한 것인지, 아니면 몸이 과거의 달리기 하던 것을 기억해내는 것인지.. 생각보다 빨리 달려서 깜짝 놀랐다.

그렇게 돌아오자마자 재빠르게 샤워를 하고, 물이 뚝뚝 흐르는 머리에는 수건을 대충 감싼 채 우리 잭에게 수유 하기 시작.  한참을 걸신 들린 아이처럼 먹어대더니 잭은 잠이 들었다.  그래, 아침 6시부터 깨어있었으니.. 10시쯤 되면 잠이 올 만도 하다.  아직 생후 3개월짜리 아기이니.. 

아이가 잠들자 나는 함께 잠을 청할지, 일어나서 머리를 말리고 아침을 먹을지.. 한 5분 갈등을 하다가 잠이 별로 오지 않는 바람에 그냥 일어나서 머리를 말리고 재빨리 아침을 먹고, 침실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도록 점심도시락을 챙기고, 설거지를 후루룩 한 후 방에 올라와서 아이가 계속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랩탑을 켜서.. 이렇게 블로그를 정신없이 쓰고 있다. 흐흐..  마치 한편의 스릴 넘치는 게임같은 일상.  아이가 언제 깰 지 모르기 때문에!

기숙사 생활을 길게 하는 동안 열명이 넘는 다른 학생들과 공동 부엌을 쓰는 생활에 이력이 났던 나는 부엌이 있는 집에 사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리고 책상에서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부엌에서 밥을 먹는 것이 또 하나의 소원이었다.  그러던 내가 결혼을 하고 이제는 우리만의 부엌이 있는 집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우리집에서는 부엌의 식탁이 유일하게 우리가 거금들여 구입한 가구임에도 불구하고..!!  침실이 3층 다락방에 있고, 부엌은 1층에 있는데다가 아이 감기 때문에 침실에만 온도와 습도를 아이에게 딱 맞춰둔 터라 이 침실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중이다.  점심도 이 방 한구석에 앉아 아이 눈치를 보며 먹어야 한다. 흐흐흐..  아이가 감기가 낫고, 좀 더 커서 스스로 앉을 수 있게 되고 이유식도 하게 되면.. 그 때는 생활이 좀 달라지겠지. 

어쨌거나.. 어제는 잠도 많이 부족했고 컨디션도 너무 안 좋았고 날씨도 안 좋았으며 개인적으로 서운한 일도 있어서 기분이 너무너무너무 다운되었었는데.. 어제 하루의 아이스크림부터 온갖 군것질 폭식이 있긴 했으나.. 잠을 그 전날보다는 잘 잤고, 오늘 달리기도 상쾌하게 하고 나니 기분이 다시 많이 되살아난다. 

육아는.. 즐거운데.. 내 뜻이 아닌 절대적으로 아기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하다보니.. 그래서 정말 힘든 것 같다.  육아도 나름대로의 굉장한 감정노동을 요하는 일이라.. 그래서 뭔가 힘든 듯. 

스트레스를 잘 풀어줘야 한다.  그게 장기전에 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듯. 

앞으로 운동을 어떻게 늘려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