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다이어리/결혼

그래, 이 남자가 난 그래서 좋았어!

옥포동 몽실언니 2017. 8. 10. 09:30

남편과 나는 결혼 전 연애만 3년을 넘게 했다. 

나에게는.. 이건 생각해본 적도 없는..긴 연애 시간이다.  이렇게 긴 연애는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줄 알았더니.. 나도 이런 긴 연애를 하게 되다니.. 그리고 그 연애 끝에 이렇게 결혼을 하게 되다니.. 내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잘 믿기지 않는 남의 이야기만 같다. 

어떤 점 때문에 이 남자와 결혼을 결심했느냐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물어볼 때가 많다.  사실 결혼 결심 직전까지만 해도 난 Tintin에게 나 혼자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난 분명히 바람 필 거 같다고 ㅠㅠ 떨어져서 장거리 연애를 이어가는 것은 힘들거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얼마전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이효리가 자기는 자기가 바람 날까봐 결혼이 두려웠다고 이야기하는데, 내가 작년 가을 Tintin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라서 너무 놀랐다. 

지난주부터는 plumber (배관공) 아저씨들이 집에 와서 작업을 했다.  물탱크에 문제가 생겨서 욕조에, 복도 카펫에 며칠동안 물이 계속 새고 있었기 때문에..  이 아저씨들을 맞이하고, 뭐가 문제인지 물어보고, 아저씨들을 상대하고.. 오늘은 남은 작업을 마무리하러 전기공 아저씨가 왔다.  나 혼자 집에 있는데 아저씨들이 집에 와서 작업을 하고 가니.. Tintin은 은근히 걱정이 되나보다.  회사에 가서 얼마 안 되어 오전부터 전화가 왔다.

"몽실, 전기공 아저씨 일하러 왔어?"

"아니, 아직.  곧 오겠지 뭐."

"그래.  아저씨 오면, 그 아저씨가 그 전기공 아저씨가 맞나 잘 확인하고 문 열어줘~" 

라고 당부의 말을 남긴다.

뭘.. 이런 걱정을 다 하나 싶어,

"응 알았어.  그 아저씨가 그 아저씨가 맞나 확인하기 위해 문 틈으로 아저씨 손을 먼저 내밀어 보라고 할게" 

라고 장난스럽게 받아치니, 곧 이어지는 Tintin의 대답

"흐흐, 그래.  팔을 털어서 하얀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아야 그게 진짜야.  만약 흰 가루가 떨어지면 그 아저씨는 가짜니까 문 열어주면 안 돼~"

라고 하질 않나! 

아 정말, 순간 그의 이야기에 웃음이 터졌다.  아.. 이 디테일한 남자를 보라..!  Tintin은 어린시절 동네 오락실에서 오락만 하고 책을 정말 안 읽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이야기들은 이렇게 디테일하게 기억하는걸까..  너무 웃기면서도 놀랍다.  

그림설명: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염소 동화 중.. 염소들에게 엄마인척 하러 가기 위해서 늑대가 방앗간에서 밀가루를 앞발에 묻히는 장면.. 

제 눈에 안경이라 하지만 가끔 나오는 그의 재치있고 순발력 있는 멘트들이 나는 자주 즐거웠고, 유쾌했고, 그렇게 자주 함께 웃음을 나눌 수 있으니..함께 하는 일상이 지루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 바로 이래서 내가 이 남자와 그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지.. 그래서 이 남자가 좋았어.. 생각하게 한 대목..  ㅋ 우린 아직 신혼이니까.. 오글거림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