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다이어리/결혼

이 부부가 사는 법: 서로 놀래키지 않기 위한 노력

옥포동 몽실언니 2017. 4. 18. 16:14

혼자 살다 둘이 사니 좋은 점도 많고 불편한 점도 있다.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좋은 점들도 많은가 하면, 불편하리라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덜 불편한 점도 있고, 불편할 거라 생각지도 못했던 점이 불편해서 깜짝 놀라기도 한다. 

불편할 거라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가 불편함을 발견하게 된 것이 서로의 존재로 인해 놀라고 놀라게 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집은 전형적인 서구식 구조.  현관에서 복도를 따라서 우측에는 화장실, 좌측으로는 두개의 방이 있고, 이 복도 끝에는 거실과 부엌이 있다.  집도 좁고 복도도 좁은데, 다소 닫힌 구조의 집이다 보니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방에서 나오는 남편과 마주쳐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침실에서 나와서 복도로 나왔는데 작은방에서 갑자기 나오는 남편 때매 깜짝 놀라기도 한다.  거실에 있다가 화장실을 가려고 거실문을 열고 나왔는데 문 앞에 거실로 들어오려고 하던 남편이 서있어서 까무라치게 놀라기도 하고.  간장이 약한지 뭣에든 깜짝깜짝 좀 심하게 놀라는 몽실.  아래 사진의 집 구조를 보면.. 놀랄 구석이 많다.  놀랄구석=서로 예기치 않게 부딪힐 경우의 수들!!  복도를 따라서 나 있는 저 많은 문들을 보라!  방 두개짜리 집이지만 복도에서 4개의 문이 만나니.. 우리는 여기 저기서 끊임없이 부딪히며 서로 놀라고 놀래키게 되는 것! ㅋㅋ

매번 예기치 않게 남편과 마주쳐서 놀랄 때마다 "꺄악!!" 하는 괴성이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튀어나오고, 그 때마다 남편은 내가 내지른 그 소리에 놀라서 까무라치며 본인의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러기를 한번, 두번, 세번.. 그리고 네번쯤 되었을 때였나.. 아, 정말.. 계속 이렇게는 살 수 없다.  남편은 자기가 뭔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내가 매번 소리를 지르며 까무라치게 놀라니 미안하기도 하면서 무안하기도 하면서 자기가 미안할 상황이 아닌데 미안함을 느끼니 그건 또 억울하면서.. 이런 상황.  나는 내가 의도치도 않게 나오는 내 괴성에 나도 괜히 못 볼 거 보고 놀란 사람같아 보여서 남편에게 미안하고, 그러면서 왜 거기 있어서 날 깜짝 놀래킨 건가 남편한테 화도 나는 아주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 연속되니.. 같은 상황의 반복을 보다 못한 몽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나: "아휴, 우리 매번 이게 뭐야 ㅋㅋㅋ 이제 좀 서로 다른 공간에 있다가 이동할 때는 신호라도 좀 주자!  뭐, "구구구구구" 라든지.. 그렇게 소리라도 좀 내면서 움직여~~" 라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무안함을 웃음으로 넘겼다. 

그리고 나서 다음날,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문을 열고 나오자 방에서 소리가 난다.  "구구구구구"

사실 놀라운 것은 그 비둘기 소리 내기가 기대 이상으로 아주 효과적이라는 것! 

"푸하하하하.. 뭐야!! 진짜로 하는 거야? 큭큭큭.. 근데 그거 엄청 효과적이다!! ㅋㅋㅋ 나 하나도 안 놀랬어!!! "

그렇다.  매번 내가 거실이나 화장실에서 나와서 복도로 접어들 때쯔음이 되거나 하면 남편이 늘 먼저 "구구구구구" 하며 신호를 주니.. 내가 놀라는 일이 사라졌다.  앗, 딱 하루, 효과적이지 못했던 날이 있기는 했다.  세수를 하고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마침 남편은 안방에서 복도로 나온 참이었다.  화장실에서 내가 나오면 바로 마주칠 위치.  그런데 이미 그가 "구.."를 시작하려는 찰나에 나는 이미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온 것!  화장실 문 바로 앞에 바로 서 있는 그를 보고 난 이미 놀라서 "꺄악" 하는 순간 0.1초 뒤늦은 그의 "구구구.."!  내 괴성은 이미 내질러졌고, 그는 "구구구.."하며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지만 이미 놀란 나 때문에 그 또한 뭔가 억울한 표정!  그렇게 서로 눈이 마주치고 3초뒤, 우린 둘다 웃음보가 터졌다.  나: "이게 뭐야 ㅋㅋ 타이밍 잘 맞춰서 해야지!! 놀랬잖아!!" 

그 한번을 제외하고는 지금껏 아주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구구구구구...  다른 공간에서 날 찾으러 올 때마다 늘 남편은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사실 그는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원래 동물모사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라 동물 흉내를 곧잘 내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어제부터는 매번 구구구구구.. 하고 비둘기 소리만 내는 게 지겨웠는지 "꼬끼오~ 꼬끼오~~" 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뭣이 됐든.. 날 놀래키지 않으려는 그의 가상한 노력과 나에 대한 이해심에 난 그저 고마울 뿐.  그렇다.  아직 우리는 신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