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다이어리/결혼

침대에서 시작되는 신혼부부의 기싸움

옥포동 몽실언니 2017. 4. 13. 09:00

결혼한지 오늘로 2주하고 5일이 되었다.  오랜 싱글생활 끝에 결혼을 했고, 오랜 연애 끝에 한 결혼이기도 하다. 

M이 그랬다.  "연애를 오래 하면 결혼이 힘들고, 연애가 짧으면 결혼은 쉽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고 난 이해하지 못했다.  M은 10년 연애 끝에 결혼을 한 친구였다.  그리고 M은 덧붙였다.  연애를 오래 하면 결혼은 힘들지만 결혼 하고 나면 쉬운데, 연애가 짧으면 결혼은 쉽지만 결혼 한 뒤는 힘들다고.  실은 M은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덩치도 더 작아서 나에겐 애기같아 보이는 동생인데 사실 그이의 직관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연애를 오래 한 커플들은 결혼할 상황이 되지 않아서 연애가 긴 경우가 많아서 결혼이 쉽지 않은데, 오랫동안 연애를 해서 서로를 워낙 잘 아는 만큼 결혼 이후는 베프와 결혼한 것이나 다름없어서 싸울 일도 적고 아주 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애가 짧은데 결혼이 쉬운 이유는 짧은 연애 후에 결혼을 서둘러 하는 경우들은 대부분 나이가 있어서 만난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결혼을 하기에 적합한 조건들은 이미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연애 기간이 짧았던 만큼 서로 겪었던 갈등도 적고 서로에 대한 이해도 다소 부족하고, 각기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기간도 길다 보니 결혼을 해서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 알아가고 맞춰가야 할 게 많아서 결혼 이후에 어려움이 좀 더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우리 커플은 그 중간 어디쯤인 것 같다.  연애가 짧지는 않았는데, 그렇다고 한 7-8년쯤 연애한 것도 아니니..  우린 적지 않은 나이에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할 여건이 되지 않는 상태가 길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결혼이라는 것은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어떤 선택사항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또한 둘 다 워낙 각자의 삶에 익숙하다 보니 누군가와 함께 하기로 약속한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 함께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우리로서는 참 상상이 잘 되지 않는 것이었다.  결혼을 생각하면 두렵고 불편한 것 투성이었다.  그렇게 결혼을 망설였던 우리였건만..  막상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한두달만에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고 결정을 했으며, 겨우 두달.. 실제로는 몇 주만에 결혼 준비를 끝내고 결혼식을 치루어 버린 것.  그렇게 오랜 망설임 끝에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결혼한 우리.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 좋은 점도 많고 불편한 점도 많다.  그 중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 바로 DAY 1 부터 우리를 힘들게 한 것이 침대!  거기서 시작된 잠자리 다툼!!

침대에서 시작되는 신혼의 기싸움:  초반, 남편의 승기

혼자 살다 둘이 사니 가장 불편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잠자리이다.  각자의 침대에서 편하게 자다가 한 침대에 자려니.. 그것도 렌트한 집에 기본 가구로 배치되어 있는 더블베드에서 자려니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영국의 '더블베드'라 함은 가로 137cm*190cm이다.  지금 이걸 쓰면서도..설마.. 가로폭이 137cm라고..? 의아하여 방금 침대로 가서 줄자로 재어보니.. 아니!  사실이다!! 137cm 짜리 매트리스이다.  이는 곧 공정하게 나눠쓸 경우 한사람에 70cm의 폭만 쓸 수 있다는 것!  이제야 왜 그리 잠자리가 힘들었는지 다시금 깨닫는다.  남편이 무슨 연예인들처럼 어깨깡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 막 벽에 세워 어깨너비를 재어본 결과 평면으로 약 48cm에 이른다 (남편, 미안, 자기 신체 비밀을 마구 공개해서 ㅋ).  팔을 몸에 딱 붙였을 때 말이다.  그런데 잠을 잘 때 누가 자기 팔을 몸에 딱 붙이고 자는가!  그러다 보니 자다 보면 어느새 나는 침대 끄트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리다시피 하여  낙상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의 상태로 자고 있기 일쑤이다. 

나를 밀어내는 남편의 몸짓에도 불구하고 꾹 참고 잠을 자다 자가 못 참고 일어나서 침대를 바라보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건 뭐 더블베드를 혼자 쓰는 사람이 잠을 자는 모양이라 해도 믿을 만한 그림이 펼쳐져있다. 

(사진설명: 신혼이불을 아직 장만하지도 못하고, 전에 쓰던 이불을 이사오자 마자 모두 빨았는데 이불이 덜 말라서 이불보만 덮고 잔 우리의 첫날밤이었나 둘쨋날밤이었나.. 이불이 너무 지저분해보여서 굳이 설명을 덧붙임 ^^;;;;;)

사실 내가 귀퉁이에 내몰리게 되는 것은 단지 남편의 어깨가 나보다 넓어서만이 아니다.  나도 어깨가 좁은 편이 아니어서 남편에게도 나의 어깨너비를 재보라고 하니 나는 37cm라고 하고, 남편은 자꾸 40cm라고 한다.  어쨌거나 그 중간 어디쯔음인가 보다.  내 어깨너비 문제를 차치하고, 남편과 침대싸움이 일어나는 진짜 이유는 남편의 왼쪽본능 때문이다.   그에게는 왼쪽본능이 있어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기가 잘 모르는 길을 갈 때 저 혼자 길을 가도록 놔둬보면 매번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왼쪽 길로 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잠을 잘 때조차도 그는 왼쪽으로 뱅글뱅글 돌면서 자는 경향이 있다.  결혼 전 혼자서 더블베드를 쓰며 사는 럭셔리함을 누렸던 그는 늘 신기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분명히 자기는 침대의 오른쪽 귀퉁이에서 잠을 자는데 (왜냐하면 그 부분만 그나마 매트리스가 탄탄해서), 신기하게도 일어나 보면 늘 침대의 왼쪽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다고.  그의 그런 왼쪽 본능은 결혼 이후 나와 침대를 공유할 때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무조건 왼쪽으로 돌다 보니 침대 왼쪽에 있는 나를 아주 떨어지기 직전까지 몰아내는 것!!!!!

물론 그는 억울할 것이다.  자기가 자는 중에 일어나는 일을 그보고 어찌하라고!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그렇게 나를 침대 왼쪽 낭떠러지로 몰아내어서 잠을 설치게 하는 Tintin으로 인해, 결국 어느날 아침에는 너무 기가 막혀서 그에게 내 왼쪽 자리를 내어주고 나는 침대 우측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침대 우측이 창가라 우풍이 들어서 자연스레 더위를 타는 Tintin이 우측을, 추위를 타는 내가 침대 왼쪽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그렇게 내가 침대 우측으로 이동하고 그에게 왼쪽을 내어주고.. 우리는 다시 두시간여 꿀잠을 잤더랬다. 

나를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전기장판!!

그나마 내가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고 최소한의 내 몸 뉘일 공간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전기장판 덕분이다.  Tintin과 나는 온도차가 난다.  그는 늘 뜨겁고 더워하며 나는 늘 차갑고 추워한다.  같은 공간에서 지금도 그는 반팔, 반바지를, 나는 긴팔, 긴바지에 담요까지 덮어쓰고 있다.  우리가 지금 집에 이사를 온 것은 3월 11일.  아직도 영국은 밤이면 기온이 4-5도까지 떨어진다.  그래서 침대 왼편, 내 자리 위에는 전기담요를 깔았다.  결혼전 내가 쓰던 1인용 작은 전기담요이다.  그 전기담요는 말이 1인용이지, 폭이 정말 좁아서 내 한몸을 딱 뎁혀주는 그런 크기이다.  차가운 침대 속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 추운 나는 결혼 후 거의 매일 전기담요를 켜고 잤는데, 전기담요라는 것이 써본 이들은 다 알겠지만 처음엔 그리 뜨겁지 않아도 시간이 계속 지나면 꽤 뜨겁게 달아오른다.  이불 밑에 폭 싸여진 채로 오랜 시간이 지나서 더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왼쪽으로 왼쪽으로.. 나를 향해 밀어오다가.. 전기담요 윗 부분에 다다르면.. 너무 뜨거운 나머지 더이상 넘어오지 못하고 잠을 자는 그 와중에도 그 선에서 멈췄다.  이 전기담요의 열기만 아니었으면 거의 나를 침대에서 떨어뜨릴 기세이건만, 신기하게도 딱 그 전기담요의 열이 시작되는 부분에서는 그가 멈췄다.  그 덕에 나는 그나마 그 공간이라도 누리며 어깨라도 펴고 겨우 잘 수가 있었다.  전기담요는 늘 참 고맙지만 이럴 때는 더더욱 고맙다. 

나의 반격

남편의 잠을 깨우게 될까봐 나를 밀어내는 남편을 반대로 밀어내지 못하고 끝으로, 끝으로만 밀려가며 자던 것도 일주일 남짓이다.  열흘즈음이 지나자 이제는 나도 못 참겠다, 하룻밤은 나를 밀고 들어오는 남편을 밀어보기도 하고, 또 하루는 남편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나를 치고 들어오는 남편에 맞서서 온 어깨에 힘을 주어 버텨보기도 했더랬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희안하게도 다소 불편해도 잠자리가 전처럼 처음처럼 어색하지만은 않다.  신기한 일이다.  내가 남편을 맘놓고 방어하게 된 만큼 심적으로도 조금 더 편하고 가까워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결혼한지 2주하고 5일째, 함께 살게 된지는 4주하고 4일째.  침대에서의 영역싸움은 이제 익숙해졌다.  더이상 싸움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전 누워서, 혹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직도 서로 확인은 한다.  각자 옆에 얼만큼의 공간이 있는지.  "Tintin, 이거 뭐야, Tintin 옆에 자리 이만큼이나 두고!!! 나 봐, 자리 하나도 없잖아~~~" 구박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Tintin이 억울한 상황도 발생한다.  그 옆에 자리가 두 뼘은 있을 줄 알고 뭐라고 하고 보니.. 실상은 그도 딱 손바닥 하나 만한 공간밖에 없는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그도 잠자기 참 불편하겠다 싶어 나도 미안하고 안쓰럽다. 

결혼한지 거의 10년은 되었을 법한 자녀 셋을 가진 수퍼대디 선배 J에게 우리의 결혼생활의 고충, 이 침대를 둘러싼 기싸움을 이야기했다.  그는 하하하! 웃으며 드디어 너희도 시작했구나! 침대싸움!!! "그래서 이렇게 막 사진도 찍고 그래요!! 증거사진!!" 이라고 하자, 선배 J왈, "우리도 아직도 찍어, 사진!!!" 허걱... 저렇게 오랜 결혼 생활을 해도 아직도 잠자리 다툼에 사진까지 찍다니!  충격적이다!!

우리의 침대싸움은 이 집에서 사는 앞으로의 1년간은 지속될 것이다.  그래도 싸움의 양태와 우리의 대처는 이미 벌써 상당히 성숙해졌다.  아직 얼마 안 되는 기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그 새 벌써 좁은 잠자리에 꽤나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 좁은 공간 덕분에 서로의 온기를 더 느낄 수 있는 것도 좋다.  아직 신혼은 신혼인가 보다.  

다음에는 작은 신혼집에서 찍는 호러공포영화 이야기를 써보도록 하겠다.  기대하시라.. 스포일러는 "구구구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