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하루 15분이 바꾼 나의 육아 라이프

옥포동 몽실언니 2018. 2. 14. 19:44

2주전부터 아기가 감기가 걸리고, 아기를 돌보느라 나는 임파선염에 유선염까지 닥쳐서 아기는 감기약, 나는 항생제를 복용, 남편은 이런 우리 둘 때문에 덩달아 피곤해서 편도선염에 감기가 왔다. 

38도가 넘는 열이 며칠이 지속되다가 결국 39도가 넘어서고 약까지 먹게 되니, 온 몸에 이곳 저곳 다 아픈 게 갑자기 그렇게 서러워졌다.  병원 한번 가려해도 이제는 홀몸이 아니라 남편이 휴가를 내서 함께 가 줘야 하는 상황이 되니, 이럴 때 도와줄 가족이 주변에 없다는 사실은 서러움에 서글픔까지 얹어주었다.  출산 후 호르몬 영향으로 이런 서러움과 서글픔은 극대화되어서 결국 나는 새벽에 남편을 붙들고 엉엉 울고말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뭔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자.  아기도 아기이지만 내 정신건강부터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타향에서의 육아생활이 장기적으로 순탄하게 지속되지 못하리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에게 제안한 것이 아침 먹는 시간을 줄여 단 15분만이라도 산책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수유를 마치면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내가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아이를 봐준다.  사실 아이가 아침에는 대체로 컨디션이 좋은 편이라 혼자서도 잘 놀기 때문에 옆에서 감독만 해주면 되므로 남편에게도 편하고 나에게도 황금같은 시간이다.  

그런 이 소중한 시간을 나는 과감히 줄이기로 했다.  아침을 먹으며 이것저것 집안일도 함께 하곤 했는데, 이제는 유일하게 아이가 나에게서 떨어져있을 수 있는 그 시간을 쪼개어 딱 10분, 15분이라도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하건 운동을 하건 하겠다고 했고, 남편은 너무 좋은 생각이라고, 10분, 15분이 아니라 30분, 1시간은 되어야 하는데 그 만큼의 시간이 되지 못해 어떡하냐고 미안해했다. 

어쨌든 그렇게 아침 산책을 시작한 것이 그저께 월요일.  집에서 출발해서 빠른 걸음으로 동네를 짧게 한바퀴 돌고 오니 딱 15분이다.  그리고 둘쨋날 어제는 같은 코스를 반대방향으로 돌았다.  짧은 거리를 동일하게 반복하자니 그건 지겹고.. 다른 루트를 개발했다가는 자칫 15분을 넘어버려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수유를 해야 해서 아침 먹는 시간을 잃어버리게 될까봐.. 그게 두려워서 새로운 루트는 시도하지도 못하고 그저 같은 코스를 방향만 바꿔서 돌고 돌아왔다.  역시나 어제도 동일하게 딱 15분이다. 

겨우 15분 그렇게 썼을 뿐인데, 하루가 너무너무 달랐다.  집 안에서 창 밖으로만 바라보던 하늘을 밖에 나가서 직접 볼 수 있다니!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쉴 수 있다니!  내 팔다리를 내 의지대로, 나를 위해 마음껏 움직일 수 있다니!  


바로 그런 15분으로 나는 기분이 훨씬 좋아졌고, 좋은 기분으로 아이와 훨씬 즐겁게 있을 수 있었고, 하루의 대부분을 수유하느라 동물처럼 가슴을 까고 젖소가 된 기분으로 시간을 보내지만 그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물론 힘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전처럼 기분이 다운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가 꾸벅꾸벅 졸면 나도 같이 맘편히 쉴 수 있었다.  그 전에는 내 신경이 너무 예민해서 아이의 숨소리만 들려도 편히 쉬어지지 않고 마음이 불안했다.  이 아이가 안녕한지, 혹시라도 내가 잠시 한눈 판 사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늘 초조불안했기 때문이다.  겨우 아침 15분 맑은 공기를 쏘이며 간단한 '걷기'로 신체활동을 했을 뿐인데, 그 15분 덕에 하루도 더 상쾌하고, 밤에 잠도 더 편히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더 일찍 시간을 냈다.  그 시간을 좀 더 길게 갖고 싶은데, 수유 간격이 짧은 우리아기를 생각하면 아기가 좀 더 길게 잘 만한 이른 새벽에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아침 수유가 6시반에 끝이 났고, 아이의 눈이 팽글팽글 돌아가며 REM 수면에 제대로 들었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살짜쿵 침대 속을 빠져나와 살금살금 방으로 가서 옷을 대충 걸쳐입고 목도리를 휘휘감고 집을 나섰다.  오늘 목표는 30분이다!

시간이 있었으면 30분을 즐겁게 걸을 만한 코스라도 개발했겠건만, 이 낯선 동네에서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걸어야 지겹지 않으면서도 아침 7시도 안 된 시간에 안전하게 걸을 수 있을지.. 별로 감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동네 인근 체육관으로 발걸음을 향한 뒤 체육관까지의 도보 거리만 확인하고 다시 어제와 같은 동네 한바퀴를 좀 더 우회하여 빠른 걸음으로 걸어다녔다.  돌아돌아 집에 오니 딱 32분이 걸렸다.  현관을 열고 들어와서 입구에 외투를 거는데 저 계단 위에서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T틴틴, 아기 울어? 잭, 엄마 왔어~~ 엄마 간다~ 조금만 기다려~ 맘마 줄게!!!" 하고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아기는 징징대고, 그런 아기를 틴틴이 내려다보고 있다.  "이렇게 일찍 나갔다 왔어?  (내가 돌아온 시간이 7시 14분이었다) 아기는 지금 방금 울기 시작했어.  괜찮아.  일단 기저귀부터 한번 볼게." 한다.  "응, 아까 맘마 먹은 게 6시 좀 넘어서니까 아마 우리 아기 벌써 배 좀 고플거야.  기저귀만 갈면 내가 수유할게."  

그렇게 틴틴이 기저귀를 갈 동안 나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침실에 돌아와서 다시 우리아기에게 맘마 공급.  우리 아기 배를 좀 채워준 뒤 나는 다시 아침을 먹으러 부엌으로 내려가고, 남편은 아기를 돌보며 출근 준비를 했다.  나는 얼른 아침을 먹기 전에 우리가 며칠 먹을 미역국을 끓이고, 빨래를 잽싸게 돌리고, 아침을 먹었다.  아침은.. 먹을 게 다 떨어져서 참기름 간장을 비빈 참기름간장밥에 딱 하나 남아있는 참치 한캔을 깠다.  그래도 뭔가.. 단백질을 먹어줘야 할 것 같아서. 

출근 준비를 하다가 부엌에 내려온 틴틴.  밥 한공기에 참치 한캔 내어놓고 먹고 있는 날 보더니 "아니, 이게 뭐야!  불쌍한 우리 몽실!!!" 하며 울상을 짓는데, 그 모습에 내가 감동받아 오히려 눈물이 날 뻔 했다.  역시.. 별 일 아닌 것에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은 것이.. 아직 호르몬이 정상이 아니다. ㅠㅠ 틴틴은 "야채라도 좀 먹지!" 한다. "괜찮아. 야채가 어딨어?" 그러자 냉장고에서 남은 장아찌 반찬을 내어준다.  "아.. 그거.. " 출산 전에 만들어서 지겹게 먹다가 그마저도 떨어져서 몇주전에 재탕으로 다시 만든 장아찌.  그 마저도 오늘 먹은 것이 마지막 남은 몇조각.  그렇게 그 남은 장아찌 반찬을 끝내며 나의 아침 식사 마무리. 

오늘은 아침 산책도 이른 시간에 하고, 아침 식사도 일찍 끝나고, 틴틴의 회사 간식을 챙겨주며 오늘은 틴틴에게도 회사를 일찍 가라고 보내줬다.  내가 아프고 아기가 아프면서 휴가도 자주 내고 병원 때문에 중간에 한두번 양해를 구하고 나온 적도 있다 보니.. 그래도 뭔가 회사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비록 그렇게 빠졌던 시간은 점심시간과 퇴근 후 근로시간을 연장하여 업무 시간을 보충하기는 했으나.. 아무리 외국 회사여도 어디든 인지상정.  뭐라도 하는 모습을 보여서 나쁠 것 없는 건 여기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우리모두의 하루는 시작됐다.  오늘 산책 30분은 중요한 기록이다.  30분이면 달리기를 해도 5킬로를 달릴 수 있는 시간이다.  (물론 어느정도 훈련이 쌓여서 속도가 빨라져야 가능한 일이다 ㅠ)  처음 산책 때는 20미터를 겨우 달렸는데, 오늘은 100미터 정도는 아주 가볍게 달려보았다.  정말 가볍게... 느린 속도로.  아마 키 큰 성인이 내 옆에서 걸었으면 내가 달리는 속도와 비슷했을지 모른다. ㅋ  앞으로의 산책 중에도 가끔 그렇게 짧은 달리기.. 1분에서 2분의 달리기를 넣어볼 생각이다.  달리는 시간을 조금씩 조금씩 쌓아서 앞으로는 아침 산책 15분 시간을 30분으로 차츰 늘려가고, 그 30분 속에 달리기를 조금씩 더 늘려가서 황금같은 30분을 정말 황금같이 써서 내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회복시키고 싶다. 

즐거운 블로그 글쓰기도 더욱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  아이가 모빌을 보며 혼자 노는 시간을 활용하되, 짧고 간략하면서도 내가 담고 싶은 메세지를 담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집안일도 중요하고 요리도 중요하고 아기 돌보기는 더더욱 중요하지만 내게 즐거움이 되는 일도 놓쳐서는 안된다.  삶의 여러 부분을 효율화해야 한다.  효율성을 중요하지 않은 나에게도 지금 이 효율의 확보는 생존에 필수적이다. 

앞으로의 운동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렇게 조금씩 하다 보면 다시 몸과 정신의 건강을 회복하겠지.  그리고 더 즐겁고 활기있게 육아와 가정 그리고 내 개인의 라이프를 이어갈 수 있으리라. 

평일의 짧은 산책이 아닌, 주말의 긴 산책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나의 건강을 생각하여 자신의 아침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나의 남편 틴틴, 고마워요.  주말에도 부탁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