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18일. 우리 아이의 백일이었다.
나와 틴틴은 한국에서는 백일을 어떻게 세는지도 모르고, 영국식으로 그 다음날이 100일인줄 알고 있다가 백일을 이틀 앞둔 날에서야 18일이 백일임을 알게되었다. 영국에서는 태어난 날을 "Day 0"로 카운트하는데, 한국에서는 태어난 날을 첫날로 셈해서 영국식으로 계산하는 것보다 백일이 하루 더 빨랐다.
우리 첫 아이의 백일을 앞두고 어떻게 백일상을 차릴까 고민이 많았다. Tintin은 요즘 누가 백일을 챙긴다고 그러냐 했지만 나는 그냥 보내기가 싫었다. 아마도 내가 백일상이나 생일상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자라서 더욱 집착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으로 "셀프백일상"을 검색하며 이런 저런 상차림을 구경한 끝에 우리가 준비하게 된 것은 "자연주의" 백일상. 애초에 의도한 것은 아니다 보니 이건 "어쩌다 자연주의 백일상"인 셈! 우리의 결혼식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 백일상도 셀프에, 최소의 비용으로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한 백일상을 준비해보았다.
우리의 "자연주의" 백일상!
우리는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최대한 있는 것들을 활용하되, 우리가 좋아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올리고, 백일상 때문에 별 필요도 없을 것들을 일부러 사고 싶지는 않았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추구한 원칙은 네가지, 바로
생화를 올릴 것,
입체적으로 상을 차릴 것,
심플한 상차림,
가족끼리 옷 색상을 좀 맞출 것
우리 아이는 친구에게 선물받은 크림색 옷을 입히고, 남편은 하늘색 줄무늬 셔츠를, 나는 임신 중에 샀던 파란색 임산부 원피스를.. 꺼내입었다.
사진촬영은 아마존에서 7파운드 주고산 핸드폰 삼각대에 틴틴의 갤럭시 6 핸드폰으로 하다 보니.. 사람이 들어간 사진의 구도가 아주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뭐.. 아주 나쁘지는 않다. 전문 백일상보다 어설프고, 사진도 전문 사진사가 찍어준 것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우리가족의 이쁜 추억 한꼭지를 장식한 하루!
이 백일상은 한 가운데 케잌이 들어설 자리를 요거트가 대신하면서 완성된 "어쩌다 자연주의" 백일상이다. 백일상에 백설기 대신, 케잌도 아닌, 요거트가 올라간 사연은?
우리 동네에는 한국 슈퍼도 없으니 떡집이 있을리 만무! 백설기 대신 케잌이라도 올리자 생각했는데, 케잌을 사오기로 한 Tintin의 누나가 그날 아침에 내린 폭설로 우리집을 올 수 없게 된 것!
사진설명: 3월 말에 눈이라니!!! 앞집에 쌓인 눈들.. 영국은 눈이 저만큼만 쌓여도 교통대란이 온다. ㅠㅠ
그래서 백일날 아침 동네 마트에서라도 케잌을 하나 사오라고 Tintin 을 보냈더니.. 이런... 케잌만 빼먹고 다 사왔다. ㅠㅠ
그럼 이 자리를 뭘로 채우나.. 고민하다가 주말동안 손님들과 나눠먹으려고 사둔 요거트 통을 쌓아올리게 된 것! 백일상 아이디어로 고민하던 나에게 니더작센의 장금이는 "언니, 언니가 임신 중에 잘 먹었던 아이슬랜드 요거트도 상에 올려요!" 라고 농담처럼 제안했다. 나는 이내 좋은 생각이다 싶어서 비싼 가격때문에 특별한 날에나 먹던 요거트를 우리 아이 백일을 맞아 10개나 주문했다. 사실 백일 전날은 캠브릿지에서 J 가족이 놀러오기로 했고, 백일에는 Tintin의 누나가 함께 하기로 했기에, 이 모든 모임에서 손님들과 함께 디저트로 먹을 생각으로 넉넉히 구입한 것.
통에 이쁜 블루베리 그림도 있고, 파란색 뚜껑도 이쁘고 하니, 잘 됐다 싶어 이 요거트 통들을 층층으로 쌓았다. 요거트 사이사이 빈 자리는 냉장고에 있던 블루베리를 "무심한 듯이 툭툭" 놓아두었다. ㅋㅋ 나름대로의 장식!
이 상을 차리느라 우리가 돈을 주고 산 것은 흰색 식탁보, 그리고 딸기가 놓인 접시가 전부. "흰색" 식탁보를 사지 않고 일회용 종이 식탁보를 사서 쓸 수도 있었지만 아이 돌때도, 또 우리 생일이나 기념일, 혹은 특별한 날의 식사에 흰색 식탁보가 유용하게 쓰일 것 같아서 과감히 투자를 했다. 자그마치 60파운드!! ㅠㅠ 식탁이 크다 보니 식탁보도 큰 사이즈를 구입할 수밖에 없어서 더욱 비싸다. 그래도 그게 가장 저렴한 식탁보였다는. 딸기를 놓은 큰 접시는 채러티 샵 (charity shop)인 옥스팜 샵에서 2.99파운드를 주고 구입. 이후에도 손님들이 오거나 하면 이 큰 접시를 유용하게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나름 득템!
폭설로 백일 전날은 물론 백일 당일에도 손님들이 오지 못하게 되면서.. 저 많은 요거트는 모두 나와 Tintin의 차지가 되었다! 평소에는 비싸서 잘 사먹지도 못하는 요거트를 우리 아기 백일 핑계로 실컷 먹었다. 뚜껑을 열면 블루베리 향이 확~ 나는 아이슬랜드 전통 방식으로 만든 스키어 요거트! 뚜껑 안에 스푼도 들어있어서 설거지도 줄어든다는! ^^
저 백일상의 비밀을 이야기하자면, 딸기가 가득 쌓인 것 같지만 정면에 보이는 딸기 뒷쪽으로는 빈공간이며, 요거트 또한 뒷쪽은 없이 앞쪽만 쌓아올렸고, 파인애플도 작은 케잌스탠드에 올려둠으로써 적은 과일로도 훨씬 풍성한 느낌을 만들어냈다는! 게다가.. 요거트는.. 손님들이 못 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 부부가 열심히 먹어서.. 백일상에 올라가던 당시에는 이미 빈통들이었다!! ㅋㅋ
사진설명: 사진 촬영 후 빈 요거트 통이 층층이 쌓여있다. ㅋ
백일 사진 촬영이 끝나고 옷 차려입은 김에 기념으로 틴틴과 잭의 스냅샷을 한장 더~
틴틴에게 아기 옷을 입히라고 해뒀더니.. 양말 신기는 것은 빠뜨렸다. 평소 양말을 따로 챙겨신기지 않고 발까지 감싸는 우주복만 입히다 보니.. 틴틴이 양말 생각은 하지도 못 한 것 같다. 우리 백일 사진의 옥의 티, 우리 아기의 맨발 ㅠ
어쨌거나 이렇게 우리 가족의 백일맞이 이벤트는 끝이 났다. 뭘 백일을 챙기냐 했던 틴틴, "몽실, 이렇게 하길 너무 잘 한 거 같애. 뭔가 특별하고 기분 전환도 되고! 역시, 살면서 이벤트가 가끔은 필요한가봐!" 라고 말하니.. 나도 기분이 좋다.
특별하게, 하지만 소박하게 백일상을 차리고 싶으신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영감이 되었기를 바라며, 오늘 글은 여기서 마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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