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옥스포드, 얼음꽃이 내린 겨울 아침

옥포동 몽실언니 2017. 1. 5. 22:18

영국의 겨울은 그리 춥지 않다.  그리고 그리 맑지 않다.  비도 자주 온다.  그러다 가끔 날이 맑은 겨울날이면 날이 추운데, 이런 날은 눈 대신 예쁜 얼음꽃이 피어오른다.  영국에 왔던 첫 해 어느날 아침 공원을 가로질러 아침 수업을 가는데, 그 공원 잔디에 가득 피어있던 그 하얀 얼음꽃밭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난생 처음보는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커튼 사이로 드는 눈부신 햇살에 눈을 떴다.  이런 날은 잠이 부족해도 몸이 가볍다.  오늘은 매주 한번 있는 기숙사 청소날.  이 날 오전은 모든 학생들이 단기 강제퇴거를 당하는 날이다.  아마 대부분의 영국대학들이 그러할텐데, 기숙사에 생활하면 매주 한번씩 청소를 해주고, 공용구간은 좀 더 자주 해주기도 한다.  이런 날은 늦잠이 자고프더라도 다음 청소일까지 쾌적하게 지내기 위해 기꺼이 잠시 방을 비운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연휴동안 건너뛰었던 밀린 청소를 위해 나도 방을 비우고 칼리지 가든을 거니는데, 따란~ 오늘도 어김없이 하얀 얼음꽃이 활짝 폈다.  


칼리지 뒷편 벤치 - 사실 얼음꽃이 이런 것을 지칭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첫눈에 '얼음꽃'이라는 단어가 생각난 탓에 오랫동안 나혼자 그렇게 불러왔다.  


테이블 위의 얼음꽃


테이블 뒷편 벌판의 풀잎에 핀 얼음꽃.. 이쁘다.. 


칼리지 가든 앞 예쁜 빨간 열매를 맺고 있는 이름모를 풀.. 막 자란 것 같아 보이지만 이래뵈도 칼리지에서 일하는 정원사가 가꾸는 풀이라는.. 



참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그것도 지방에서 자랐지만 지방의 도심에서 자란 탓에 자연과 그리 가깝게 지내지 못했던 나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게 해 준 것은 이 곳 영국이었다.  한국보다 더 일찍 산업화가 일어나고 경제가 발전했던 이 곳 영국으로 유학을 와서야..자연을 알게 된 것이다.  하루 하루의 습도에 따라 나부와 나뭇잎과 잔디의 빛깔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동물들이 언제 자고 언제 활동을 하는지, 언제 알을 품고 언제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지..  이런 것들을 알게 해 준 것이 바로 이곳, 그리고 자연을 옆에 품고 있는 칼리지 생활 덕분이다.  


참고로, 칼리지는.. 영국 옥스포드와 캠브릿지 대학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대학 시스템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칼리지에 거주하며 생활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자. 


칼리지 호수앞으로 갔더니 오리들이 열심히 세월 좋아보이게 잠을 자고 있다.  오리들도 오랫만의 따뜻한 겨울햇살이 너무도 그리웠던 것처럼.. 평화롭게 잠을 잔다.  해가 잘 드는 곳의 잔디의 얼음꽃은 이미 다 녹았다. 


이제 기숙사 방 청소가 끝났겠거니..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앗, 다람쥐다!  요녀석들은 워낙 민첩하고 사람이 7미터쯤 이상 가까이만 가면 재빨리 도망가버려서 가까이 가서 볼 수가 없는데 (아빙던의 다람쥐들은 좀 덜 예민했지만 ^^;), 그래서 잠자코 있는 다람쥐를 발견하면 나는 무조건 핸드폰카메라를 꺼내든다.  늘 사진찍기에 실패하지만 오늘도 포기를 모르는 몽실언니.. 조심스레 정지샷 찰칵! 


한걸음..한걸음.. BUT, 오늘도 실패.  얼른 도망쳐버리는 다람쥐.  그래도 순간 포착!  날이 맑은 덕분에 사진이 잘 찍힌 듯! 아 귀여워~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해가 잘 드는 곳의 얼음꽃은 녹고, 아직 그늘 속에 있는 잔디는 얼음꽃을 품고있다.  바닥에 흙더미는 소똥이 아닌 흙이다.  뱀새 활동한 땅두더지 굴. 


저멀리 나무 사이로 든 햇살과 벤치의 얼음꽃이 너무 예뻐서 또 한장.. 


기숙사 앞까지 왔는데.. 거위 두마리가 여기까지 마실을 와 있다.  안녕, 거위들~  여긴 처음이지~? 사실 여기까지 자주 오는데, 이렇게 기숙사 건물 바로 앞까지 와 있는 것은 오랫만에 본다. 


기숙사 입구까지 계속해서 걸어가는 거위들.  가까이 갔더니 확~ 날아가버린다.  하지만 순간 포착! 날아가는 거위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거위들의 날갯짓에 일어난 바람에 내 머리가 날렸을 정도이다.  이렇게 세게 날개짓을 하는 줄이야.. 대단한 힘에 놀람. 


이렇게 아침 산책을 마치고.. 기숙사로 컴백.  Housekeeping 아저씨께서 청소를 깨끗이 해주셨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일과로 돌아오는 날.. 밀린 일이 많다.  오늘 하루는 성과가 있는 하루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