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페인 알메리아

가슴아픈 스페인 내전의 역사, 알메리아 땅굴

옥포동 몽실언니 2017. 1. 16. 08:43

스페인의 눈부신 햇살과 신선한 지중해식 요리 그리고 대단한 건축물들. 거기에 아마 축구?  이런 정도가 사람들이 '스페인' 할 때 떠올리는 것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 스페인에서 심각한 내전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내전에 승리한 프랑코 장군이 1975년까지 자그마치 36년간 군사독재정부를 운영해왔다는 사실은 아마 잘 알려져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1936년 전쟁이 시작되기 무섭게 스페인 알메리아 시에서는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지하대피소를 건설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설치된 땅굴은 잘 복원 및 보존하여 일반 관광객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 대피소는 유럽 전역에서 가장 중요하고 잘 보존된 대피소라고 합니다.  이 땅굴관람은 사실 저희가 알메리아를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알메리아를 떠나는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일정에 포함되었을 정도로 가장 우선순위에서 아래에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을 방문해보고 나서는 이곳을 오지 않았더라면 큰 일 날뻔 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가장 기억에 남는 곳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은 그 지하대피소 Los Refugios de la Guerra Civil (스페인 내전 대피소)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전에 먼저 스페인의 내전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스페인 내전 (Spanish Civil War, 1936-1939) 이란? 


19세기 말, 민주주의가 태동하던 시기에 스페인에서도 왕에 의한 통치가 막을 내리고 최초의 공화정 (1873년- 1874년)이 수립됩니다.  그러나 이 공화정은 아주 짧은 시도로 끝이 나고 왕당파가 다시 집권을 하면서 민주주의는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1931년, 스페인에 두번째 공화정이 들어서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이 두번째 공화정도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1936년, 공화정에 반대하고 귀족정치를 추구하는 민족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이 두 세력간의 다툼은 세계 다른 나라들의 군사지원으로까지 이어지며 커다란 전쟁으로 번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있었던 스페인 내전, Spanish Civil War 입니다.  


이 내전은 결국 민족주의자들의 승리로 끝이 나고, 독재자 프랑코가 집권한 후, 83세의 나이로 그가 사망을 하고 나서야 스페인에는 민주주의가 찾아옵니다.  스페인의 첫 민주주의 선거가 1982년에 있었다고 하니, 1987년에 첫 민주주의 선거가 있었던 한국과 비교하여 민주주의의 역사가 겨우 5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프랑코 장군은 독일 나치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의 군사지원을 받는 등 강력한 파시스트 세력이었습니다.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전역에 걸쳐 총 754개의 폭탄이 떨어졌는데, 알메리아 상공과 해상에만 총 52개의 포탁이 떨어졌습니다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Almer%C3%ADa_air_raid_shelters).  그 중 알메리아에 가장 충격이 컸던 공습은 1937년 독일 나치에 의한 공습이었습니다 (참고자료: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Spanish_Civil_War).  


스페인 내전은 이처럼 공화정 대 파시스트들의 전쟁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또 일부에서는 이 내전은 사실 좌파인 혁명세력과 보수파인 반혁명세력 간의 갈등으로 보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이념과 통치를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다치고 죽는 전쟁은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역사인 것 같습니다.  


알메리아의 지하대피소 


알메리아에 내전이 시작되고 3개월 뒤, 알메리아 시에서는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지하 땅굴을 건설하기 시작합니다.  16개월에 걸친 공사 끝에 1938년 초에 완공된 이 땅굴은 전체 알메리아 시의 인구 5만여명 중 3만오천에서 4만여명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이었습니다.  이 땅굴은 알메리아  시민을 보호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역사적 보고이자, 알메리아의 20세기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가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인데도 불구하고 관람객이 많았습니다.  


관람방법


알메리아 지하 땅굴 대피소는 시내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관람소로 가서 표를 구입하고 가이드의 철저한 동행과 안내 하에서만 관람이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이 대피소는 지하 9미터에 길이 4.5킬로미터에 이르는 굉장한 규모의 지하 터널이기 때문입니다.  


주소 및 위치: Plaza Manuel Pérez García, 04003 Almería, Spain (https://www.google.co.uk/maps/place/Plaza+Manuel+P%C3%A9rez+Garc%C3%ADa,+04003+Almer%C3%ADa,+Spain/@36.8414823,-2.4668983,17z/data=!3m1!4b1!4m5!3m4!1s0xd707600ba2d87d7:0x568b4d34656ac201!8m2!3d36.841478!4d-2.4647043)


관람시간: 관람시간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으니 미리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관람인원도 제한되어 있어서 미리 표를 구입해두지 않으면 관람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정보: http://www.almeriacultura.com/index.php?view=venueevents&id=64&option=com_eventlist&Itemid=112


입장료: 성인 1인당 3유로.  


단점:  이런 대단한 시설물임에도 불구하고 영어 가이드는 없습니다 (단, 2016년 12월 31일에 확인된 정보. 이후 변동 가능).  다만 짧은 영어 소개가 들어있는 안내문을 내어주고, 또 인터넷을 찾아보라고 조언했습니다. 


저희도 사실 관람하러 간 당일은 이미 표가 다 팔리고 관람이 끝나서 관람이 불가능했습니다.  다음날 표를 구입하겠냐고 해서 잠시 망설이다가 구입했는데, 다음날 관람표마저도 저희 다음다음 사람들이 끝으로 매진되었으니.. 정말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은 미리 표를 구입할 것을 권합니다. 


표를 산 다음날, 시간에 맞춰 갔더니 관람을 예약한 사람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어제 표를 팔던 여자 직원이 정시가 되자 출입문을 닫고 앞에 사람들 앞에 나와서 뭔가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 이 시설에 대한 짧은 소개와 함께 곧이어 틀어줄 영상물에 대한 소개를 한 것 같습니다.   스페인어 막귀라.. 대충 눈치로 짐작. ^^ 


그렇게 영상물이 시작되었는데.. 충격적입니다.  전쟁의 가슴아픈 역사가 생존자들의 입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 대피소의 역할이 정말 컸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 영상물에는 영어자막이 있었습니다.  아래에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전쟁 당시 자기들은 꼬마였다고 했습니다.  '산티아고, 산 세바스찬.. 라스 클라라스까지.. 기본적으로 그 모든 곳들이 화염 속에 있었어요..'라고 회고하는 할아버지.


이 할머니는 인터뷰 내내 눈물을 그렁그렁 하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있던 곳은 센 세바스찬 교회 아래였는데, 거기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죠." 라고..  동네에서 한 집이 아이를 잃어버려서 난리가 났었는데, 나중에 집에 가보니 아이가 대피소에서 무사히 대피하고 돌아와서 집에 와 있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이야기 등 여러 가슴 아픈 에피소드를 전해주셨습니다. 


이런 소개를 마치고, 이제 본격적으로 지하 대피소로 들어갑니다.  영상물을 시청한 곳 바로 왼쪽에 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문이 바로 이 기나긴 터널로의 입구였습니다.  모두들 긴장된 마음으로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갑니다. 


계단을 내려가서 있는 붉은 조명.  이 부분에서는 붉은 조명 뿐만 아니라 공습 경보를 전쟁 시와 비슷하게 울려줘서.. 분위기가 삼엄하고 무서웠습니다.  마치 전쟁 당시를 경험하는 듯한 착각이 일었습니다.  


이 땅굴을 따라 들어가고,


또 들어갑니다.  땅굴의 긴 길이가 가늠이 되시나요?  이렇게 통로 양측에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게 벽을 따라 의자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중간 중간 아래처럼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통로가 있는데, 이렇게 통로가 좁은 곳에는 의자는 없습니다.  


표를 팔고 초반에 저희에게 영상물을 소개했던 직원이 리셉션 직원인 줄 알았더니, 그 분이 바로 이 곳의 총 가이드입니다.  


어느 정도 들어가다가 어느 지점이 되면 저희를 모두 자리에 앉히고 저희는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로 열심히 설명을 하십니다.  이렇게 다같이 나란히 앉으니 모두 전쟁통에 대피소에 앉아있는 모습 같아서 전쟁을 겪고 있던 사람들의 고통이 이 지하 땅굴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설명이 끝나면 다음 지점으로 또 이동하기 위해 계속해서 땅굴을 들어가고 또 들어갑니다. 


그러다 중간 어느 지점에서는 저기 안쪽에 있는 응급 수술실이 설치된 공간을 보여주기 위해 그룹을 반으로 나눴습니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담소를 즐기는 사람들. ^^


저희 차례가 되어 저희도 안으로 들어가봅니다. 


아래 공간이 바로 응급수술이 이루어지던 방입니다.  양측에 보이는 선반들이 바로 침상입니다.  


이 수술실의 맞은 편에 있던 방.  여기도 뭔가.. 의료시설로 쓰인 장소 같지요?


이렇게 의료시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곳에는 이렇게 건축가에 대한 설명도 있고, 아이들 장난감이 있는 방도 있습니다.  


터널을 따라 가다 보면 이렇게 서로 다른 쪽으로 출구가 표시되어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대피소의 출입구가 알메리아 시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인데요.  당연히 그래야만 가장 가까운 대피소 출입구로 향할 수 있겠지요.  

저런 출구 표시를 따라가보면 윗쪽을 보면 이렇게 계단으로 지상 출입구로 안내합니다.  


그리고 각 출입구가 어느 쪽 출입구인지에 대한 설명도 함께 있구요.  아래는 성 베드로 성당쪽 입구 쪽에 붙어있던 출구 안내판. 


드디어 긴 시간의 관람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전체 관람 시간이 한시간 가량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저희가 나온 출구는 들어갔던 시내 북쪽 출구와 다른 곳인 게 아닙니까!  아마 스페인어로 설명을 했을 것 같은데, 전혀 알아듣지 못했던 저희는 "여긴 어디? 우린 누구?"하며 아주 어리둥절했답니다. 


저희를 내보낸 후, 직원은 저 유리 문을 잠근 후 유유히 사라졌죠.  

너무 신기해서 저희가 나온 출입구의 계단도 한장 찍어둡니다.  


고개를 들어 우측을 보니.. 큰 건물도 있고.. 구글맵을 검색해보니 시내에서 남쪽쯤 어디에 있는 출구였더라구요.  여전히 시내까지는 걸어서 10분 남짓.   


생각보다 관람 시간이 길었지만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스페인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그나마 관람 전에 보여준 영상물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러 전쟁의 피해상을 알려주고 경고해주는 시설물들이 있지만, 저에게 이 대피소 관람은 참 특별했습니다.  지방 정부가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이렇게 대단한 시설을 지었다는 점, 그리고 그 덕에 정말 많은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점 때문에, 가슴아픈 전쟁의 역사에 제 마음도 무거웠지만 동시에 가슴이 따뜻해지기도 했습니다. 


스페인 알메리아에서 관람료를 냈던 유일한 시설.  그러나 이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관람객 전원이 모두 엄숙한 분위기로 관람을 하는 진지하고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