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아날로그와 현대화 사이, 영국사회의 이중적 모습

옥포동 몽실언니 2017. 9. 5. 09:30

오늘은 최근 발견하고 있는 영국 사회의 독특한 측면.. 그 중에서도 어찌보면 참 이중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영국생활 근 10년.  그러나 영국에서 생활인으로 살아간지는 이제야 6개월이 다 되어 간다.  확실히 잠시 머무는 (그러나 너무 오래 머물렀지만 ㅠ) 학생으로 살아갔던 긴 시간에 비해, 6개월의 짧은 생활인 삶 속에서 느끼고 배우는 게 참 많다.  최근들어 영국생활에서 다소 놀란 것 중 하나는 영국의 업무 시스템, 그 중에서도 이메일 업무처리!

영국을 여행해본 적이 있는 이들은 잘 알겠지만 런던의 지하철에서는 전화가 터지지 않는다!  그러니 인터넷도 당연히 안 된다.  뿐만 아니다.  실내 건물들 중 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이 꽤나 많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들이 생각하기에는 역시 한국이 인터넷 강국!  IT 강국이다.  영국 살다가 한국에 간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한국의 놀라운 인터넷 속도에 감탄하게 된다.  게다가 지하철, 기차 할 것 없이 어디서건 전화도 인터넷도 빵빵하게 잘 터지니 놀라울 따름!

그러나 최근 몇달간, 집을 알아보고, 변화사와 연락을 하고, 은행에 대출을 알아보고.. 등등을 하며 영국에서 생활인으로 살아보면서 놀란 것은 영국에서는 부동산에서도 상당부분의 업무를 모두 이메일로 처리하고, 변호사들도 이메일로 즉각즉각 연락하고, 은행 대출 관련 직원도 이메일로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한다는 것.  그토록 빠른 인터넷이 농촌 구석구석까지 들어가 있는 한국에서도 부동산 업무를 이메일만으로도 상당부분 처리하는 경우가 잘 없을텐데, 이곳에서는 이메일로 모두 해결!  

변호사라는 직업이야.. 워낙 전문화된 직업이라 그렇다해도, 부동산 직원들이, 은행직원들이, 모두모두 이메일로 빠르고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한다... 한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한편으로는 한국에서는 미리 약속을 잡지 않고 사무실로 바로 찾아가서 상담을 한다거나, 아무때나 전화를 걸어 담당자와 통화를 하는 것이 용이하기 때문에 굳이 서로 이메일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업무를 처리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한편, 보수적인 영국사람들 입장에서는 직원들이 편한 시간에 답을 하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메일을 통한 업무방식이 더 편할 수도 있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여 직원측이나 고객측이나 이메일을 통해 서로 이메일 상이지만 기록을 남겨두는 것을 선호하는 심리가 있을 수도 있다. 게다가 미리 약속을 잡거나 하지 않고서는 담당자와 통화가 연결되는 것이 쉽지 않다 보니 고객의 입장에서도 일치감치 이메일을 보내둔 후 답을 기다리는 편이 속이 편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진설명: 영국의 부동산은 전면 유리에 위와 같이 집 광고 사진을 주렁주렁 붙여둔다.  사진출처: http://www.now-health.co.uk/reasons-expats-give-up-on-their-dream/#prettyPhoto

영국에서도 부동산에 내가 어떤 어떤 집을 보고싶으니 언제로 약속을 잡고싶다든지 하는 것과 같이 어느 부동산 직원이라도 문제없이 해 줄 수 있는 간단한 업무 같은 경우에는 전화로도 신속하게 처리가 된다.  그러나 그 외의 업무처리 - 월세를 들어가기 위해 지원서를 작성하고, 지원서가 받아들여지고, 최종 계약서를 주고 받고, 보증금을 주고 받고.. 등등의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은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은행 대출 관련 직원도 이메일로 문의를 하면 즉각즉각 답이 오고, 변호사 사무실에서도 변호사 당사자 혹은 당사자가 부재중일때는 비서를 통해서도 이메일 회신이 바로 바로 온다. 

이런 서비스도 부동산에 따라서, 변호사 사무실에 따라서, 또 그 외에 여러 업무상 성격에 따라서 다르긴 하겠지만.. 옛것을 좋아하고 (고집하고?) 아날로그적 삶의 방식을 상당부분 고수하는 영국인들이지만 그것은 그들의 사생활이자 일상의 부분이고, 이런 전자업무 처리 방식은 오히려 한국에 비해 훨씬 더 보편화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이 늘 좋지만은 않다.  이런 전자업무 처리 방식이 편리할 때는 편리하지만 한국처럼 전화한통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자리에 앉아서 이메일을 정식으로 써서 보내야 할 때는 좀 귀찮기도 하다.  또한 인터넷을 잘 하지 못하거나 컴퓨터가 없거나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전자업무처리방식이 상당히 난감할 것이다.  이런 사람의 경우에 영국에서 겪을 수 있는 곤욕을 아주 잘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I, Daniel Blake.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를 본 적 없는 이들이라면.. 영국의 아주 숨겨진 모든 모습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사회복지, 사회정책, 사회적 문제, 빈곤문제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쯤 볼 만한 영화! 

사진설명:  나, 다이엘 블레이크

어쨌든 한 사회의 모습은 한 가지의 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지하철에서도 실내건물에서도 전화조차 잘 터지지 않는 나라에서도 50대 중년의 부동산 직원이 이메일로 상당 업무를 처리하는 사회라.. 재미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