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페인 알메리아

여행길에 만난 영국 아주머니: 동굴에 살아요!

옥포동 몽실언니 2017. 1. 1. 10:58

그렇다.  여자 나이 70세도 이제는 아주머니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스페인의 알메리아로 행하는 비행기에서 내 왼쪽 자리에 앉으신 아주머니, 내가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그 아주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주머니라고 생각했는데, 본인의 나이를 말씀하시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이가 많으셔서 놀랐다.  그런데 우리엄마도 낼모레면 일흔인데, 우연히 만난 누군가가 우리 엄마를 할머니라고 칭한다면.. 이상할 것 같다.  이미 손주가 셋이나 있는 진짜 할머니이긴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우리 엄마를 할머니로 묘사한다면.. 화가 난다기 보다는.. 그냥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내 눈에는 아직 그 나이의 아주머니들이 할머니로 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내 옆자리 앉으셨던 영국아주머니 이야기를 계속 하자.  이 아주머니는 자식들은 영국에 살고 자신은 스페인에 살아서 영국-스페인 여행이 잦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 영어 발음이 좋아도 너무 좋다.  아니나다를까 은퇴할 때까지 영국에 사시던 그냥 영국분이셨다. 


아주머니와 남편은 2007년에 스페인으로 이주해서 그곳에서 둘만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정착지는 우리가 행하는 Almeria에서 차로 한시간 반 거리에 있는 Sierra Nevada 국립공원 근처라고 하신다.  


어떻게 스페인으로 이주를 하기로 결정을 했냐고, 혹시 날씨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두분은 55세에 조기퇴직 이후에 집을 팔고 카라반을 사서 4년간 유럽 여기저기를 내내 여행을 다녔는데, 그 때 가장 마음에 든 곳이 스페인이었기 때문에 스페인에 가서 살기로 마음 먹고 스페인에 집을 샀다는 것이다.  대단하다.. 그 나이에 그런 결정이 쉽지 않았을텐데..


날씨는 어떠냐고, 영국보다 훨씬 좋죠? 라고 물으니, 겨울에는 좋지만 여름에는 40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20도 정도면 자기는 딱 좋다고, 30도를 넘으면 좀 힘든데, 40도 정도가 되면.. 꽤나 힘들다고. (영국인이 '꽤나 힘들다'고 할 때는.. 이건.. 정말 힘든거다..) 


그런 날씨에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니, 자기는 동굴에 살아서 괜찮다고 하신다.  동굴이라니!! 동굴이라니!! 내가 생각하는 그런 진짜 동굴 맞냐고 내가 깜짝 놀라 물었더니, 맞다고 하신다.  진짜 동굴.  돌과 흙으로 지어진 진짜 동굴에 사신다고 하신다.  대신 집에 붙어있는 동굴이라서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좀 추운데, 그 때는 집에서 살면 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하신다.  사진도 꺼내서 몇장 보여주신다.  스페인에서 동굴에서 살고 있는 영국 아주머니라..!  티비에서나 접할 법한 은퇴이후의 해외이주 삶을 직접 살고 있는 분을 이렇게 만나다니.. 그 집은 대략 아래 사진과 거의 흡사한 사진이었다.


아래 사진: 동굴집의 예. 

사진출처: Airbnb에 올라온 그라나다 인근의 어느 동굴집 (cave house)


사진: 그라나다 인근의 동굴집들

사진출처: http://www.onefootinthecave.net/a-brief-history-of-cave-living-in-spain/  이 지역에 왜 동굴집들이 있는지 검색하다가 들어가게 된 사이트. 



나중에 찾아보니 그라나다 인근에 동굴집들이 유독 많다고 한다.  아주머니가 사시는 곳은 아마 현대화된 동굴집인 것 같다.  집에 동굴이 붙어있는 형태라고 했기 때문에.  Sierra Navada 국립공원은 그라나다와 알메리아 사이에 있는데, 안달루시아에서도 그라나다 지역이 지질학적 특징 때문에 동굴집이 유독 많다고 한다. 


이 지역 동굴집의 기원인 8세기 무어인 (Moor) (아프리카 북서부의 베르베르인과 아랍인의 자손)들이 스페인 남부지역에 무어인들이 들어오면서 자신들의 동굴거주 형태를 그대로 그 지역에서도 유지하게 되는데, 특히 그라나다 지역에는 선사시대의 침전물로부터 형성된 돌들이 폭발한 지질학적 특징으로 인해, 여러 딱딱한 돌과 부드러운 돌이 층층이 쌓여있는 사암들로 구성된 돌들이 많다고 한다.  그 층들이 거의 수평적인데다가, 가운데 부드러운 층이 손으로 팔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고, 딱딱한 층은 동굴의 안전하고 튼튼한 지붕을 만드는 데 손색이 없다 보니 동굴집이 유독 발달하게 되었다고 (참고자료: http://www.onefootinthecave.net/a-brief-history-of-cave-living-in-spain/).  높은 절벽에도 동굴집들이 있다고 하니.. 참.. 이런 것들은 스페인에 대해 이 아주머니 덕분에 완전히 처음으로 알게 된 것들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동굴집이 사람에 의해 직접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로, 시골의 농부들이 자신들의 살 곳이 필요해서 지어졌고, 그러다 보니 빈곤의 상징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최근에 와서는 보다 현대화된 동굴들이 스페인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들에 의해 휴가지 (holiday homes)로 쓰기 위해서는 물론 일반 거주지로 쓰기 위해서도 많이 지어지고 있다고.  실제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들도 이런 동굴집에서는 아늑함을 느낀다고 하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나도 꼭 한번 이용해보고 싶은 마음.. 


55세의 나이에 조기퇴직을 하고, 집을 팔아서 4년간 여행을 하고, 또 스페인에 집을 사서 정착을 한다...라....  사실 아주 lucky한 케이스란 생각이 들었다.  2001년에 55세 나이로 은퇴를 하고도 연금을 받을 수 있던 시절에 은퇴를 하셨다는 점.  게다가 부부가 모두 공무원이어서 연금도 넉넉하던 시절에 아주 호의적인 조건으로 은퇴를 하실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삶이 가능한 게 아닌가 해서 씁쓸하기도 하더라는.. (영국에서도 공무원 연금은 아주 후하다.) 


어쨌든.. 아주머니 덕분에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고.. 흥미로운 대화도 나눴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하는..  그리고 전부터 늘 내 희망여행지 list에 있던 곳이지만, 그라나다는 다음에 꼭 제대로 여행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사실 십년도 넘게 전에 가본적이 있긴 한데, 크리스마스 기간에 그 근처 시내길을 좀 구경한 것이 전부임..).  그리고 그때는 꼭 동굴집 Airbnb를 한번 이용해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