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영국에 닥친 이상한파로 느끼는 지역사회의 온정

옥포동 몽실언니 2018. 3. 6. 17:53

올 2월 말부터 3월 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도록 춥고 눈이 왔다.  눈이 귀한 영국에 이렇게 눈이 오다니.  우리 잭이 태어난 12월 9일도 그렇게 눈이 와서 교통대란이 일어났었는데.. 이번에는 며칠을 연속해서 눈이 내렸다.  틴틴의 회사에는 눈으로 인해 출근을 못 한 사람들이 여럿이었다.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그 정도 눈이 왔다고 출퇴근을 못하냐 하겠지만 눈이 잘 오지 않는 이 나라에서는 그 정도 눈만 와도 난리가 난다.  좁은 국도길을 오랫동안 달려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다가, 그런 길들은 밤에 다니는 차들이 별로 없다 보니 밤새 눈이 내리면 길이 얼어버린다.  

눈이 이렇게 오자 난리가 영국은 난리가 났다.  학교 도서관도 일찍 문을 닫고, 우리 잭이 태어난 날도 병원에는 출근 못한 직원으로 인해 밤새 일했던 직원들은 눈 때문에 발이 묶이는 일도 일어났고, 각종 가게의 배달 시간은 현저히 줄었으며 지역의 버스들도 여파가 컸다.  직원들이 출근을 못하니 모든 서비스가 마비된 것!

사실 이렇게 2월 말, 3월 초에 그것도 영국에서 이렇게 눈구경을 한 것도 놀랍지만,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페이스북의 우리 동네 아빙던 그룹에 올라온 따뜻한 글들이었다.

먼저 이 작은 동네에 이 눈으로 인해 200가구나 전기가 끊겼다는 충격적인 소식!!!

그러나 그 소식과 함께 발견한 것은, 자신의 동네에도 밤 10시까지 전기가 없는데, 자기집 인근 구역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며, 따뜻한 차가 필요한 노인이 주변에 있다면 자신이 제공해줄 수 있으며, 자기 집에 와서 마셔도 좋다는 제안을 하는 글이었다.  동네에 전기가 끊겼다며 이웃 노인에게 친절의 손길을 내미는 이웃이라.. 가끔 이렇게 영국인들의 타인에 대한 친절에 놀랄 때가 있다. 

먼저 산모인 나에게 가장 눈에 들어왔던 글은 모유수유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다른 아기 엄마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모임인 Baby Cafe의 글이었다.  모유수유 선생님인 Sue는 갑작스런 눈으로 베이비 카페를 직접 올 수 없으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경우 연락하면 오후에 자신이 연락을 하겠다며, 따뜻하고 안전하게 있도록 하라는 인삿말을 남겨주었다. 

또 다른 글은 Tenby 지역의 한 택시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왔다.  이 택시회사에서는 추운 날씨로 인해 상점을 가지 못하는 노인들을 위해 "무료"로 자기 택시 직원들이 해당 지역을 지나는 길에 전기 가스 탑업은 물론 상점에 들러서 필요한 음식이나 물건도 사다줄 수 있다며, 주저말고 자기네 회사로 연락을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빙던 지역의 한 사람도 우리 지역의 택시 회사에서도 이런 정책을 써보면 좋지 않겠냐는 제안의 글을 올린 것.

뿐만 아니다.  이 회사에서는 계속된 눈으로 결국 차량 운행은 중지하게 되었는데, 차량들은 모두 차고에 세워져있지만 여전히 사무실은 열려있으니, 눈 때문에 집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기 회사 오피스에 와서 추위를 피해도 좋다는 글이 올라왔다. 

또한 갑작스런 눈으로 차가 국도에서 눈에 빠졌는데, 본인을 도와준 고마운 이가 있었다고, 그 사람을 꼭 찾아서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며 그 사람을 찾는 글도 있었다.  

작은 동네이다 보니 이 같은 지역 주민들간의 교류와 따뜻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는 것인지, 이 지역 사람들이 특별히 더 이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지역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들을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훈훈해졌다. 

* * *

이 며칠간 지속된 눈으로 나는 2월 20일을 마지막으로 죽 바깥공기 한번 쐴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사실 그건 추위나 눈 때문만은 아니라 밤새 배앓이로 씨름하는 잭을 돌보느라 잠이 너무 부족했기에 아침에 산책을 할 시간도, 체력도, 기분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잭을 들어안아 창밖 눈 구경을 시켜주는 틴틴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다락방 침실에서 내려다본 가든.  뒷집 고양이가 우리 가든을 가로질러 갔나.. 귀여운 발자국이 나있다.

그리고 아래는 내가 전날밤 틴틴의 신발을 신고 쓰레기를 내어놓으러 나가면서 생긴 발자국.

아래와 같은 동네 사진은 영국이 아니라 마치 눈내린 북유럽 느낌! (사실 북유럽 가본 적 없음 ㅋ)

이렇게 이 동네에 대해, 또 동네 사람들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고 친숙해지게 되고 정을 붙이게 되나보다.  얼른 잭이 좀 더 자라서 이 지역사회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할텐데.. 언제쯤 그날이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