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아이를 낳을거라 하자 이곳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고 계신 분들은 모두 아이 낳으러 갈 때 연락을 주면 미역국을 끓여다 갖다주겠다고 하는 참으로 감사한 제의를 해주셨다. 그 중 한 언니에게 병원 가는 길에 연락을 했고, 두세명의 언니들이 맛난 음식들을 준비해주셨으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우리 잭이 태어나는 날은 영국에 몇년만의 폭설이 내려서 교통이 모두 마비되고, 병원 안에서는 또 전화가 터지질 않아서 예정대로 음식을 전달받지 못하고 나는 병원에서 주는 밥으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영국 병원에서는 산모에게 어떤 밥을 줄까?
영국 병원의 밥이 맛이 없다는 것은 영국 내에서는 사회문제로 제기될 정도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의 학교의 급식의 맛과 영양이 주기적으로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은 전액 세금으로 운영되는 의료시스템이다 보니 재정문제가 불거지면 가장 쉽게 타켓으로 줄여지게 되는 것이 밥값이라 그런가.. 밥이 맛있으면 사람들이 병원 밥 먹으려고 건강을 돌보지 않고 자꾸 병원으로 입원하기라도 할 것처럼, 그래서 일부러 맛 없는 식사를 제공하기라도 하듯 .. 정말.. 맛이 없다. 게다가 환자에게 이런 음식을 줘도 되나.. 하는 정도의 음식이 나올 때도 많다.
나는 이번 출산으로 병원에 입원한 것이 영국에서의 세번째 입원이다. 처음에는 일주일 입원, 두번째는 하루지만 그래도 입원, 그리고 이번 출산으로 입원.
아이를 낳자 마자 병원에서 내게 준 음식은 뭘까?
나는 입맛이 없고 먹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내 스낵을 준비해왔다고 이야기했지만 조산사는 극구 내게 음식을 권했다. 넌 지금 아이를 낳았고, 먹어야 한다고. 입맛 없어도 먹으라고. 그렇게 조산사가 권하여 밤 11시 15분 출산 후, 새벽 3시경 처음으로 병원에서 받아먹은 음식은... 바로!!
흰 토스트 두 장!!!!!
버터와 함께 나왔는데 버터는.. 어디갔지.. ㅋ 사진에 빠졌다.
사실 샌드위치를 즐겨먹는 나라, 영국에서 그나마 맛있는 것이 식빵이다. 그치만 애 낳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이 텁텁한 식빵이 넘어갈 리도 없는데, 세상에.. 네상에.. 영국에 9년째 살면서.. 이렇게 맛없는 식빵은 또 처음이다. 어이가 없던 나머지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 식빵을 Tintin과 한장씩 나눠먹었다.
나: 아.. 이게 뭐야.. 정말 이렇게 맛없는 식빵은 또 처음이네. 내가 애를 낳아서 맛없게 느껴지는 건가?
Tintin: 아니, 맛 없는 식빵 맞아. 아마.. 젤 싸구려 식빵이라 그렇겠지.
영국병원은 기본적으로 무조건 "모자동실"이다.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산모가 아기를 돌봐야 한다. 남편은 남자라 병실에 면회 시간 외에는 머물수도 없어서, 그야말로 아이를 낳자마자 병원에서부터 "독박육아"가 시작되는 것! 그러다 보니 없는 기운이라도 차려서 이따 아기도 돌보고 모유수유도 해야 하니.. 목으로 잘 넘어가지도 않는 식빵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눌러 삼켰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소변량도 체크하고, 병실 준비를 한 후 나는 분만실에서 병실로 옮겨졌고, 남편은 병실에 머물 수 없어서 혼자 눈속을 뚫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두어시간 후.. 드디어 아침식사 시간이 되었다. 식사를 배달해주시는 직원이 병실에 들어와서 산모 한명 한명에게 아침 메뉴 중 무엇을 먹고싶은지 묻는다.
"빵 줄까? 씨리얼 줄까?"
흑.. 나는 이 상황은 예상하고 있었다. 과거에도 아침에는 매일같이 빵이나 씨리얼 중에 골라야 해서.. 늘 그냥.. "나 안 먹을래.. 괜찮아" 하고 패스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정말.. 입맛은 없고, 빵도 시리얼도 도저히 땡기지가 않지만 그래도 무조건 먹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리얼보다는 첨가물이 적은 빵을 선택. "나는 빵 먹을게" 라고 했더니 아래와 같이 통밀빵 하나, 하얀 빵 하나, 그리고 버터와 잼이 나왔다. 거기에 전날 집에서 챙겨온 바나나를 하나 꺼내 함께 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점심 시간이 되었다. 오전 내내 혼자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모유수유를 해보겠다고 아이를 안고 낑낑 씨름을 하고, 아이 기저귀를 갈리고.. 잠시 정신을 잃은 듯 잠도 잔 것 같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 테이블 위에 점심 식사가 놓여져있었다. 바로 아래와 같은 식사!
두둥~ 뚜껑을 모두 열어보니.. 아래와 같은 식사가 들어있다.
우측 맨 위에 놓인 컵에는 수프. 토마토 숩인 것 같은데.. 정말.. 맛은.. 니맛도 내맛도 아닌.. 이상한 숩이었다. 아래 사진에 보다시피.. 보기에도 맛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프라 따뜻하고,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 꾸역꾸역 마시다시피 삼켜버렸다.
그리고 좌측에는.. 또 빵이다...!! 애 낳고 세번째로 나온 빵!!! 새벽 3시, 아침 9시에 빵을 먹고 나니, 이젠 더이상 빵은 못 먹겠다. 빵은 안 먹고 패스. 대신 함께 나온 쥬스는 마셨다. 이 또한 기내식에서나 볼 법한 농축액으로 만든 오렌지쥬스지만, 그래도.. 영양을 생각해서 안 먹는 것 보다는 먹는 게 낫겠지 라는 생각으로 쥬스도 원샷.
은박으로 덮인 접시 아래에는 메인 디쉬가 들어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라자냐와 메쉬드포테이토!
산모용이라 이렇게 조리가 된 것일까.. 아니면 이젠 일괄적으로 한가지 메뉴만 제공하는 것일까.. 과거에 같은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A4용지 만한 종이에 스타터부터, 메인, 사이드, 디저트까지 모두 환자가 직접 고르는대로 음식을 갖다줬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냥 라자냐를 테이블에 놓고 갔으니.. 그리고 밥을 안 먹고 굶을 수는 없으니.. 꾸역꾸역.. 먹는다. 이건.. 뭐.. 크리미해보이는 느낌이지만 그리 크리미하지도 않으면서.. 토마토 소스도 정말.. 밍밍하면서.. 태어나서 먹어본 라자냐 중에 가장 맛이 없는 이상한 라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이 따뜻하고 부드러우니 그럭저럭 넘어갔다. "먹어야 한다" 는 생각으로 한두스푼 먹다 보니.. 거의 다 먹었다.
마지막으로.. 갈색 항아리같은 곳에 담겨있던 디저트는 다름아닌 쵸코 브라우니!!! 한국 산모식단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을 법한 메뉴이다. 쵸코렛은 임신 중에도 카페인 때문에 자주 먹지 않았는데.. 아기를 낳고 나서 이렇게 병원에서 내어주다니.. 먹고 싶지도 않고,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도 않으니 미련없이 패스. 대신 포항에서 성희가 보내준 영양갱 하나 챙겨온 것으로 디저트를 대신했다.
이렇게 새벽 야참, 아침식사, 점심식사까지가 내가 전날 병원에 들어가서 먹은 모든 음식이다. 나는 양수가 먼저 터지고 양수파수 18시간 후에 아이를 출산해서 병원에서는 아이를 10시간 동안 2-3시간에 한번씩 체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체크가 다음날 오전 9시로 끝이 났고, 이후에도 이런 저런 아이 건강 검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 모유수유에 대한 조언을 듣고, 나는 퇴원하기로 결정. 병원에 출산하러 들어가서 딱 24시간만의 퇴원이자, 아이 출산 후 18시간만의 퇴원이다.
병원에서는 하루 더 머물고 다음날 퇴원해도 된다고 하는데, 나는 남편 없이 이른 오후까지 혼자서 아이 기저귀를 교체하고, 모유수유를 하고, 병원의 맛없는 밥을 먹고, 화장실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너무나 불편하고 몸도 힘들어서 난 남편이 있는 집으로 가겠다고, 나는 남편이 필요하다고.. 퇴원을 결정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Tintin은 그날 오후 내가 좋아하는 과일과 건강한 요거트를 간식으로 챙겨왔다. 집으로 출발하기 전에 이거라도 요기를 하라고. 사려깊은 남편 덕에 맛있는 과일을 냠냠 먹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병원에서 나온 식사 사진을 Tintin에게 보여주며, 병원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만의 마지막 만찬을 즐겼기에 망정이지, 그마저도 아니었으면 버티기 힘들었을 거라 했다.
양수가 터진 그날, 우리는 오전에 병원으로 가서 간단히 검사를 받은 후, 옥스포드로 들어가 남편 이발을 하고, 근처 레스토랑에서 먹고싶은대로 맘껏 시켜먹었다. 둘 만의 오붓한 식사는 당분간 오늘로 마지막일거라.. 이야기하며.. 평소같으면 스타터 하나 정도를 나눠먹으며, 각자 메인 요리 하나씩을 먹었겠지만, 그날은 오늘의 수프인 호박수프도 먹고,
전체로 깔라마리 (오징어튀김)도 시키고,
구운 가지에 구운 야채들이 싸져있는 가지롤도 스타터로 시켰다. 둘이서 스타터만 3종류!!
메인 요리로 나는 아래와 같이 통구이 생선을 시키고,
Tintin은 간만에 또 버거~ 생선은 기대이상으로 맛있었고.. 버거는 음식 잘 하는 펍에서보다는 맛이 좀 덜했다. 고기패티가 너무 말라있다고..
내 요리에 사이드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칩스!
흐음~ 다시 봐도 군침이 돈다. 출산 11시간 전에 즐긴 우리들의 마지막 만찬!! 언제쯤 레스토랑에서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는 때가 올까?!
어느새 아이가 태어난지 30일. 이젠 병원에서 먹었던 병원밥은 사진으로 꺼내보지 않고서야 잘 기억도 나질 않는다. 아이를 어떻게 낳았는지조차도. 다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다면.. 그 때도 영국에서 낳게 된다면.. 그때는 병원에 들어가면서 보온도시락에 내 도시락을 직접 싸서 병원으로 들어가리라..다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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