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영국 병원에서 첫 아이 출산하기

옥포동 몽실언니 2018. 1. 5. 22:34

내가 출산을 영국에서 하게 될 줄이야.. 아니.. 영국에서 이렇게 결혼해서 살게 될 줄이야.. 1년 전만 해도 생각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이렇게 엉겁결에 모두 일어나고 말았다.  결혼과 동시에 임신.. 그 덕에 결혼한 해에 바로 출산..! 

만으로도 서른 일곱, 한국나이로는 서른 여덟에 첫 결혼과 첫 출산이다 보니.. 임신 자체에 대한 걱정도 컸지만 출산과 양육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은 더더욱 컸다.  그런데 바로 그 모든 과정을..내 나라가 아닌 남에 나라에서 하게 되었다.  바로 영국 이곳에서.  

우리가 아이를 낳기로 한 곳은 옥스포드 대학병원, John Radcliff Hospital.  

영국에서는 아이를 조산사만 있는 조산원에서 낳을지, 집에서 낳을지, 의사가 있는 병원에서 낳을지 결정할 수 있다.  특별한 합병증이나 질병이 있는 경우에는 선택의 여지 없이 의사가 있는 병원에서 낳아야 하지만 임신 과정 중에 별 문제가 없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집이나 조산원에서 아이를 출산할 수 있다.  만약 무통주사 같은 마취제를 쓰고 싶은 경우에도 반드시 의사가 있는 병원에서 낳아야 한다.  당연하게도 마취는 의사만이 할 수 있으므로.  또한 의사가 있는 병원에서도 조산사에 의해 분만과정이 이루어지는 조산원이 있다.  

우리가 아이를 낳은 곳은 바로 병원 내의 조산원.  무통주사를 맞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없었던 데다가 (몰라도 너무 몰랐기에), 특별한 어려움이 없을 경우 조산원에서의 출산을 권하는 듯한 분위기를 느꼈고, 그게 그리 나쁜 생각 같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나는 과거의 병력도 있고, 나이도 있고 하다 보니 언제라도 갑자기 응급수술이 필요하거나 의료적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비하여 적어도 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의사가 있는 곳으로 바로 이전이 가능한 대학병원 내의 조산원에서 낳기로 했고, 우리가 사는 아빙던에서 가장 가까운 큰 병원은 옥스포드 대학병원이기도 한 John Radcliff 병원이었기에 우리는 바로 그곳에서 아이를 낳기로 했고, 예정대로 그렇게 진행되었다. 

영국의 대학병원은 어떤 모습일까?  일단.. 병원마다 아주 다르다.  영국의 국민의료 시스템인 NHS (National Health Service)는 전액 세금으로 운영되는 그야말로 "보편적 의료" 시스템이다.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로 죽고 살고가 결정되지 않으며, 바로 이 제도는 영국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자신들의 제도 중 하나이다.  오죽하면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이 제도에 대한 홍보를 하였겠는가!   

출산의 조짐이 보이면 병원의 MAU (Maternity Assessment Unit)으로 연락을 해서 나의 상황을 알려야 한다.  출산 평가 센터라고 보면 되는데, 출산이 얼마나 임박했는지 평가하여 알려주는 부서이다.  나는 예정일보다 4일 늦은 12월 9일 새벽 4시반에 양수가 터졌고, 새벽 5시 경 병원의 이곳 MAU에 전화하여 양수가 터졌다는 사실을 알렸다.  병원에서는 진통이 만약 시작되지 않는다면 오전 10시까지 병원으로 일단 와서 검사를 받으라고 하였다.  나는 진통이 시작되지는 않았고 그래서 예정대로 10시까지 병원에 갔다.  

바로 이 MAU에 들어가서 양수파수가 확실함을 확인받고, 4분 간격의 진통이 오면 병원으로 다시 오라고 했다.  산전교실 수업에서도 듣기를, 4분 간격 진통에 자궁경부가 4cm까지 열렸을 때가 진진통의 시작이라고 하였다.  자궁경부의 확장은 내가 알 길이 없으니 4분 간격의 진통이 오면 병원으로 오라고 한 것.  그렇게 우리는 병원을 다시 나서 옥스포드 북쪽 동네 Summertown에 가서 남편의 머리를 자르고, 근처 레스토랑에서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우리 부부의 그날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하기로!)

영국 병원의 산전교실 이야기 보러가기 --> http://oxchat.tistory.com/190


드디어 4분 간격 진통이 시작된 것은 같은 날 오후 4시 경.  더는 미뤄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Tintin에게 어서 병원으로 가자고 했고, 우리는 내 출산가방, 아기 짐이 든 아기 가방, 남편의 스낵과 갈아입을 셔츠, 속옷이 들어있는 남편 가방, 이렇게 총 3개의 가방을 들고 병원으로 출발!  아래 사진이 바로 우리의 가방이다.  애 하나 낳으러 가는데 짐이 이렇게나 많다.  영국에서는 특히 병원복을 따로 주지 않기 때문에 아이 출산 시 입을 옷, 아이 출산 후 병원에서 입을 옷 등 내 옷을 다 챙겨가야 하므로 짐이 더욱 많다. 

이렇게 원래는 가방이 3개가 예정이었는데, 물, 간식 등을 더 챙기다 보니 가방이 하나 더 늘었다. (맨 오른쪽의 지퍼 없는 누런색 Eco 백이 바로 그렇게 추가된 가방. 

재미있게도 영국은 병원 내에도 우체통이 있다.  영국인들의 우편 사랑!  Royal Mail, 영국의 우편 시스템 또한 영국에서는 NHS와 더불어 없어지기 힘든 시스템인 듯.  영국인들의 프라이드와 그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니!  기차역에도, 병원에도 있는 우체통!

나는 원래 이곳 병원의 7층에 위치한 조산원에서 아기를 낳을 예정이었으나 양수가 먼저 터졌기 때문에 만약 분만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항생제를 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인지, 의사가 있는 분만실이 있는 2층 병동으로 안내를 받았다.  일단 내 분만실을 할당 받기 전에 진진통이 진행되는지 확인하느라 일단 임시방에 배치가 되었고 그곳에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나 모르겠다.  낑낑 아파하며 심호흡을 이어가던 중, 드디어 방이 정리되었고, 너의 진통은 진진통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분만할 방으로 이동하겠다며 나를 분만실로 데려갔다.  그곳이 바로 아래의 침대가 있는 방. 

조산원 내의 분만실은 아주 편안한 분위기로 방 안에 욕조도 있고 짐볼도 있고, 의자도 더 편한 게 있고 침상도 더 큰데, 이곳 병동에 있는 침대는 더 작고, 방 안에는 덩그러니 침대 하나와 의자 하나 뿐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처음에는 침대에서, 그러다 너무 힘들어서 바닥에 매트를 깔고 거의 엎드리다 시피 하다가.. 다시 침대로 올라왔다가.. 의자를 붙들고 기대었다가, 남편 목에 매달렸다가, 침대에 누워 남편에게 내 다리 좀 들어달라고 했다가, 조산사에게 나 무통주사 놔달라고 사정했다가, 도저히 못 하겠으니 제왕절개 해주면 안 되냐고 안 될 거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애타게 사정해가며.. 몇시간에 걸친 진통을 했고, 결국 그날 밤 11시 15분 "눈 떠!! Open your eyes!" 라는 말을 듣고 보니 아이가 내 바로 아래 있었다!

아이가 나오고, 태반이 나오고, 회음부 상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찢어진 부위를 꿰매고 (영국은 일부러 찢거나 하지 않고 저절로 찢어지면 찢어진 정도에 따른 처치를 한다), 소변이 나오는지 확인하여 소변양을 체크한 후 우리는 병실로 이동했다.  소변양을 측정하기 위해 간호사가 나에게 화장실로 함께 이동하자고 했는데, 일어서는 순간 너무 어지러워서 걸을 수가 없었고, 그길로 간호사는 나를 바로 다시 침대에 눕도록 했고 그렇게 나는 침대에서, 남편은 내 옆 의자에서 두시간을 잤던가.. 세시간을 잤던가.. 아기에게 첫 수유를 하느니 어쩌니 할 생각도 하지 못한채 우리는 잠에 들었다.  그리고 일어나 모든 것이 정리되고 우리는 분만실에서 입원실로 이동되었다. 

입원실에는 병실 하나당 침대가 4개.  아래와 같이 생겼다.  침대가 있고, 돈을 내고 볼 수 있는 티비도 있고, 침대 옆에는 아기 바구니가 있다.  영국은 한국식 용어로 치자면 기본적으로 모두 "모자동실"이다.  무조건 엄마가 아이를 봐야 하는 것.  특별히 아기나 산모에게 특별한 상황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게다가 영국 병원은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정해진 시간에만 방문객이 출입할 수 있다.  또한 이곳은 여성들만 입원해있으니 남자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몇시까지던가.. 남편이라 해도 남자들이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병실로 아침 7시쯤 이동한 것 같은데, 남편은 나를 이동시키는 것만 도와주고, 5분쯤 함께 앉아있었나.. 바로 병실을 떠나야 했다. ㅠㅠ 그때부터 나 혼자 남겨졌다!

위와 같은 구성의 침대/아기침대가 4세트가 있고, 각 침상은 커텐으로 구분되어 있다. 

내 옆에는 아래와 같이 우리 아기가~ 너무 못생겨서 나와 남편을 웃음을 터뜨리게 한 우리 아기!  영국에서는 아기 출산 후 목욕을 시키지 않고 닦기만 하므로 아기 모자에는 피가 조금 묻어있다.

이날은 영국 겨울에 보기 드물게 엄청난 눈이 내렸다.  남편과 나는 아이를 낳느라 눈이 오는 줄도 몰랐다가 병실로 옮기고 나서 창밖의 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때문에 남편은 면회시간 제한 때문에 아침일찍 집에 갔다가 병원으로 나를 데리러 올 때도 교통이 마비되어 애를 먹었다. 

아이를 데리고 있으니 간호사들이 와서 정기적으로 체크도 하고, (양수가 먼저 터지고 18시간 후에 태어난 아기라 6시간 마다인가.. 체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벌써부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 청각 테스트도 했다.  아래는 간호사가 와서 아기 귀에 청각테스트를 하는 모습.  아기가 불편한지 딱 스티커와 같은 표정을 하고 찡찡거렸다. 

각종 검사 결과 아기는 전반적으로 건강하고 정상적이다.  오후에는 아이 신체에 대한 전체적 검사도 이루어졌다.  고관절, 눈, 힙, 다리.. 등등 아이를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며 이 검사 저 검사 간단히 하더니 정상이란다.  눈에 눈곱이 많이 꼈는데, 이건 산도를 통과하면서 눈에 감염이 생겨서 그럴 수 있다며, 많은 아기들이 이런 경우가 있는데 저절로 좋아질거라 한다. 

그리고 오후 3시경, 나에게 하루 더 입원을 하고 다음날인 11일에 퇴원해도 된다고 하는데, 나는 그날 저녁에 또다시 남편 없이 혼자서 밤을 지새며 아기를 돌볼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아 오늘 그냥 퇴원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나는 9일 밤 11시 15분에 출산을 하고 다음날 10일 오후 4시 반 경 퇴원을 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집에 돌아온지 이제 약 4주!  내일이면 우리 아기가 태어난지 꼬박 4주가 되는 날이다.  이렇게 4주가 지나서야 이제야 겨우 뭐라도 글을 끄적여볼 여유가 생겼다.  사실 지금도 급하게 글을 쓰기 무섭게 아기는 엄마의 맘마를 찾아 찡찡대기 시작.  나는 milk producer가 되어 아이에게 수유하러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