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연은 이러하다.
남편이 한 3주째 몸이 좋지 않았다. 처음에는 몸살처럼 온몸에 근육통을 앓더니, 그 다음날부터 점점 체온이 올라서 매일 밤마다 체온이 38.5도를 찍었다. 소염진통제를 먹고 자면 다음날 아침에는 37도 중반정도로 체온이 내려왔다. 그러나 밤이 되면 또 체온이 올랐다. 그러기를 한 보름. 병원에 가서 소변검사, 피검사를 했고,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회복해서 어젯밤엔 체온이 37.4도였다.
그렇게 남편이 몸이 좋지 않았던 시기는 하필 우리 아이 마지막 예방접종과 겹쳐서, 예방접종 후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지쳤을 나를 도와주기 위해 하루 냈던 휴가는 오히려 남편 몸 회복에 쓰여야 했다. 나는 그날 아침부터 점심, 저녁, 내내 밥이며, 간식을 만들어 남편을 보살피고, 동시에 아이도 언제나처럼 내가 봐야했다. 이렇게 좀 잘 챙겨주고, 잠도 좀 더 잘 수 있게 배려해주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낫지 않을까 싶어서 아침 당번도 내가 서고, 퇴근시간에 맞춰 저녁도 좀 더 거하게 차려보려 애를 쓰고, 밤에 애가 깨도 내가 하겠다고 틴틴은 더 자라고 하며.. 그렇게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3주가 넘도록 계속 낑낑대니.. 나도 조금은 지쳤다. 아니, 사실 많이 지쳤다.
남편의 고열이 지속될 때에는 힘들긴 했지만 걱정도 정말 많았다. 편도선이나 임파선이 붓기라도 했거나, 차라리 감기라서 기침이라도 하면 걱정을 덜 할텐데, 어디 특별히 아픈데가 없는데 계속해서 열이 나니.. 직접 지각할 수 없는 어떤 장기가 아프거나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려나 걱정이 됐다. 혹시라도 암이나 혈액관련 질환이나.. 그게 뭔지는 몰라도 내가 들어본 무서운 병들은 다 생각이 났다.
그러나 그 컸던 걱정도 잠시. 소변검사, 혈액검사 결과상 두드러진 문제가 없고, 남편의 체온도 조금씩 정상을 찾기 시작하고, 시간도 점점 길어지니 나도 조금씩 화가 났다. 나도 온 몸이 힘들고 아파죽겠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애써야 하나 싶어서.
긴병에 효자없다는 말. 정말이다. 긴병에 효자도 없는데, 어디 효부 있으랴!
남편도 이렇게 저조한 컨디션으로 보름 이상 가 본 게 참으로 오랫만이리라. 자기도 지치고 힘들터인데, 나도 지치고 힘든걸 어쩌랴. 본인 몸이 점점 힘이 드니, 퇴근 후 저녁시간에도 아이랑 놀아주는 모습이 영 시원찮고, 그 시간의 육아도 은근슬쩍 나에게 떠넘기는 듯이 나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졌다.
어제는 그게 극에 달했던 저녁이었다. 하루종일 아이를 돌보며 빨래를 두번이나 돌리고, 한번은 아이를 업고 재우고, 그 다음은 아이를 데리고 유모차로 나가서 재우고, 그리고 오후에는 아이를 업고 저녁준비를 했다. 당연히 나머지 시간은 아이와 놀아주고, 아이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빨래를 개고, 기저귀를 갈고, 수유도 한다. 늦은 오후가 되면 남편이 오자마자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아이를 혼자 오래 둘 수 없으므로 늘 아이를 등에 업고서. 그리고 저녁 후 설거지 거리를 줄일 수 있도록 저녁준비하며 나온 설거지도 모조리 다 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침실로 올라가 아이를 좀 더 데리고 놀다가 목욕을 시키고, 또 좀 데리고 놀다가 재운다.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된다. 그러고 나면 내 몸 샤워할 기운도 없다. 양치질과 세수를 겨우 하고 아이를 재우고 나도 잠든다.
어젯밤에는 남편이 유독 아이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지금 생각하니 왜 그랬나 궁금해진다. 어쨌든 아이에게 별 관심 없이 형식적으로 아이 옆에 붙어있는 게 보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내내 칭얼거리고, 그게 듣기 힘든 나는 결국 아이를 들었다 놨다 하며 놀아줬다. 목욕을 하고도 잘 생각을 않는 아이. 남편이 아이 옆에서 아이를 보는데도 내내 아이가 칭얼거리며 내 팔도 물었다 놨다 하는데 그 와중에 나는 깜빡 잠이 들었다. 아주 짧은 잠이었는데도 (아마 5분도 안 되었을 듯) 그 잠이 그리 달콤했다.
그리고 일어나 남편에게 아이를 받았다. 이제 내가 할 테니 틴틴은 좀 쉬라고. 그리고 포대기를 가져와서 아이를 또 업었다. 내 등에 업히자 아이가 "휴우.." 하고 편안한 한숨을 내쉬고 방긋방긋 웃는다. 아이를 업고 방 안을 왔다 갔다 했다. 아이를 업은 채 내가 조곤조곤 말을 하면 애가 잠에 잘 들곤 했다. 그래서 어제도 혼자서 이 말 저 말 하며 방안을 배회했다. 그러다 아이가 좀 진정되었을 때 아이를 침대로 내려 수유를 했다. 아이가 잠에 들랑말랑했다. 그래서 아이 잠자리로 아이를 다시 옮기고 수유를 계속 했다. 그리고 드.디.어. 아이가 잠들었다!
내가 아이를 업고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남편도 곧바로 잠이 들어서는 코를 드렁드렁 곯았다. 틴틴도 어지간히 피곤했구나 싶었다. 그러다 내가 아이를 내리고 아이 잠자리로 옮기고 하는 소리에 남편도 깼다. 남편에게 나는 방의 창문을 닫아달라고 부탁했고, 남편은 그렇게 했다.
아이가 잠들었으니, 이제 편히 자라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내게 등을 돌린채 누웠다. 아무 말이 없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 화가 치솟은 지점은.
바로 이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긴긴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나도 어깨, 무릎, 손목, 손가락, 발바닥. 어디 한 곳 안 아픈데가 없는데, 남편 자기를 위해 내가 이 밤에도 아이를 업고 아이를 겨우 재웠는데.. 내게 수고했다, 잘 자라 말 한마디 없이 등을 돌리고 눕는 남편에게 너무 화가 났다.
나의 이 수고로움을 너무 당연한 일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자기만 아픈가. 자기 아픈 건 알겠지만, 나도 아프거든? 앉아서 일어설 때 마다, 화장실 가느라 계단을 디딜때마다 무릎이 찢어질 것 같고, 발바닥도 찢어질 것 같거든? 손목도 너무 아프고 손가락도 아 아프거든?! 너만 아프냐고!!!!!! 라고 소리지르고 싶었다.
사진출처: https://www.pexels.com/photo/brown-and-white-bear-plush-toy-42230/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소리는 어지간해서는 지르지 않는다. 남편과 연애시절부터 모두 털어서 큰 소리를 내어 본 건 한 두어번쯤 있는 것 같다. 마음이야 소리를 확 지르고 싶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상황을 풀어내는 것만 더 힘들어질 뿐. 게다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우리 재채기 소리에도 놀라서 우는 아이를 앞에 두고 어찌 큰소리를 내랴!
아무튼, 너무 화가 나서 남편과 이야기도 하기 싫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럴 수도 없다. 그래서 작은 목소리로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나 화났어. 내가 너무 당연한 일 한 것처럼 여기는 것 같이 느껴졌어. 나도 온 몸이 아파. 왜 나에게 말 한 마디 안 하고 그냥 자리에 누워? 요즘은 저녁 시간에 애 보는 것도 점점 더 나한테 떠넘기는 느낌이야. 나도 힘들어."
틴틴이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하고 내 곁으로 왔다.
아니야, 그런 거 아냐. 그냥 잠시 침대에 몸을 기대었을 뿐이야. 바로 자려고 했던 것 아니야. 니가 한 일 절대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아. 아이 보는 것 떠넘긴 것 같았던 것, 인정해. 좀 그랬던 것 같아. 미안해.
그리고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이 되었고, 나는 틴틴에게 말했다.
나 아직 화났어.
소심한 나는 뒷끝이 이렇게 있는 편이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틴틴이 사과한다.
틴틴, 아픈 거 다 낫기로 한 시간 지난 거 알고 있어?
응, 알아. 한참 지났지? (웃음) 미안해! 주말에 내가 어떻게든 니 시간 가질 수 있게 노력해볼게.
지난주, 내가 틴틴에게 도대체 언제 다 나을거냐고 다그쳤더니, 이틀안에 다 낫겠다고 말했던 틴틴이었다. 우린 이렇게 서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지낸다.
그리고 틴틴은 출근했고, 나는 혼자 아이를 돌보고 있다. 아이를 재웠고, 이 재운 시간에 이렇게 블로그에 나의 답답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살겠다. 그나마 이런 하소연이 내 소중한 숨 쉴 구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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