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갔다. 슬프다. 오늘 하루를 요약하자면,
오늘은 낮잠을 잤다.
울었다.
그래도 블로그는 했다.
어젯밤 잠자리에 누웠는데 순간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이었다. 주말은 남편이 밤당번을 서는 날이라 나는 금요일밤부터 아기방에서 혼자 잤다. 어제가 그 두번째 밤이었던 것. 혼자 고요하게 방에 누워있는데.. 답답~ 한 것이 숨이 막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에게 전화해볼까.. 아니면 엄마에게 전화해볼까..' 생각하다가 그 어디도 내키지 않아 그냥 핸드폰 유튜브로 '밥블레스유' 비디오클립을 몇개 보다가 그냥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는데.. 이게 며칠만의 샤워인가.. 너무 상쾌했다. 나도 매일 매일 샤워하던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샤워가 사치가 되어버렸다. 우리집에서 어린 아들은 매일같이 따뜻한 물 속에서 통목욕을 즐기는데, 나와 남편은 샤워할 시간을 만드느라 애를 먹는다.
샤워를 하다 보면 그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늘 그렇다. 오늘은 문득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아이와 고립되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8월의 런던 나들이, 9월의 짧은 아빙던 카페 나들이, 그 후 10월 말이 되도록 아이와 떨어져서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적이 한번도 없었다. 어젯밤의 그 답답함은 바로 그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나가서 잠깐이라도 달리고 싶고, 혼자 자유롭게 '내 팔다리 내 맘대로 흔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우리 집에는 방이 세 개나 있었지만 우리는 네 남매라 어릴 때부터 나는 늘 작은 언니와 한방을 써야했다. 큰언니는 첫째라 독방을 가지는 행운을 누렸고, 나는 늘 작은언니와 함께 방을 썼다. 그러고보니 늦둥이 남동생은 어릴 때 자기 방조차 없었다. 그리고 큰언니가 대학을 가면서 그때부터는 독방은 고3 전용방이 되어 그 방은 작은언니가 물려받아 고3을 지냈고, 작은언니가 대학을 가자 그 독방은 내 방이 되어 고 2부터 고3, 2년간 독방을 누리는 혜택을 가졌다.
독방을 쓰는 게 꿈이었던 나는 티비를 보다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바로 감옥 씬에서 감옥에서 잘못을 저지른 죄수에게 '독방행'이라는 벌을 주는 것이었다. '아니, 독방 쓰면 좋은 거 아니야? 왜 더 잘못한 사람들에게 독방을 쓰게 해주지?'라고 생각했던 것! 늘 많은 식구들 속에 부대껴 사느라 사람없이 혼자서 지내는 것이 형벌이 될 수 있음을 이해는 커녕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이었다.
나의 요즘 생활은 내가 그리 꿈에 그리던 독방생활이 되어있다. 좀 넓고, 시설도 좀 좋고, 방에서 가끔 나갈 수는 있지만 혼자 나갈 수는 없고 아기 유모차를 끌고 나가야 한다. 아침 저녁으로는 남편도 함께 있다. 대신 밖에 나가면 영어를 써야 하는.. 그런 독방에 갖힌 생활을 몇달째 하고 있는 것 같다. 꿈에 그리던 독방"생활"을 해보고서야 왜 "독방행"이 고문인지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남편이 오늘은 꼭 나가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라 했다. 너무너무 피곤해서 어디도 나가기 싫은데 그래도 아이와 떨어져 있으려면 내가 집을 나가야 하니, 가기 싫은 마음에도 꾸역꾸역 외출을 위해 샤워를 했다. 그리고 머리를 말리고 가운을 걸쳐입고.. 나는 밖으로 나가려고 가방을 싸다가 그대로 아기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덮고 누웠다.
그리고는 한시간 반, 정말 꿀맛 같은 잠을 잤다. 낮시간에 나혼자 낮잠을 자보는 건 아이 낳고 오늘이 딱 두번째 날이었다. 정말.. 세상모르게 잠을 잤다.
그리고.. 내가 자는 사이 전화가 온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의도치 않은 오해에 속이 상해서 좀 울다가 방을 나섰는데, 그 때 남편과 복도에서 마주쳤다. 남편이 드디어 잭이 낮잠을 잔다며 (오후 1시에야 처음으로!), 나에게 점심 좀 먹으며 쉬라고 했다. 그러자 나는 고마움과 미안함과, 좀 전의 그 속상함, 내 상황에 대한 속상함과 답답함, 이 모든 것이 겹치며 눈물이 마구마구 쏟아졌다. 남편에게 기대어 엉엉 한참 울었다. 나도 힘들지만, 남편도 참 힘들거란 생각을 하니, 그것도 마음이 아프고.. 그래도 잘 해주고 있는 남편이 고마워서 또 눈물이 나고.. 눈물이 일단 나기 시작하니 계속 났다.
그러다 틴틴이 고이 잠든 잭을 깨워버렸고 (의도치는 않았지만), 나는 아이를 더 재우느라 결국 아이에게 젖을 물린채 한참을 누워있어야 했다. 틴틴에게 원망의 레이저를 눈으로 마구 발사하면서!
그리고는 잭이 깨자마자 대충 점심을 챙겨먹고 성당언니네로 달려가 호박을 잔뜩 얻어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에서 그 30분의 시간동안 우리 잭이 얼마나 울어대는지.. 이 녀석.. 언니네 집에서는 잘만 놀더니 차에 타서부터 배도 고프고 잠도 왔는지 집에 도착할 때까지 목이 터져라 쉬지 않고 울어댔다. 그 조그만 몸에서 어떻게 그런 울음이 나는지 정말 매번 감탄한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기저귀도 갈리고, 호박을 보며 좀 놀다가, 아이 이유식을 먹이고, 바로 목욕, 그리고 또 수유, 그리고 바로 아이는 취침. 남편과 나는 그제야 저녁을 먹었다. 처음으로 아이를 재워놓고 저녁을 먹은 날. 그래도 애가 조용히 잘 자서 저녁은 잘 먹었는데... 내가 아직 안 자고 있으니.. 내일 나는 또 힘든 하루를 보내게 되겠구나.. 이번 주말에는 밀린 주말알바를 조금이라도 좀 하고 자는 것이 목표였는데 결국 손도 못 댄 채 모두 끝났다. 내 시간을 만들어내기가 이렇게나 힘들다. 예전에는 늘 내가 최고 우선순위였는데, 지금은 '나', 그리고 '내 일'이 우선순위에서 가장 밀린다. '내게도 이런 삶이 다 있구나...' 작년초까지만 해도 차고 넘치는 나만의 시간, 그 시간의 사색과 고민이 너무 많은 것이 또 고민인 삶을 살았는데.. 이제는 그 시간이 너무나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이 느껴지는 삶을 산다.
이렇게 나의 주말은 갔다. 우리 가족의 주말은 갔다. 또 한주가 시작된다.
주말아.. 하지만 나는 알아.. 너는 다시 올 거라는 것을..
니가 다시 오면.. 그 때는 난 너를 좀 더 잘 맞이하고 보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겠지?
얼른 오렴, 주말아! 항상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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