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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먹거리] 430년 전통의 반버리 케잌

옥포동 몽실언니 2018. 10. 30. 04:54

안녕하세요!  몽실언니입니다. 

오늘은 새롭게 알게 된 430년 전통의 영국 케잌을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영국에서는 인근 지역의 지명을 딴 도로명을 자주 찾을 수 있는데요.  가령, 제가 살고 있는 동네는 아빙던이라는 곳으로, 옥스퍼드에서 아빙던로드를 따라 남쪽으로 약 10킬로를 가다보면 나오는 동네입니다.  옥스퍼드 시내에서는 북쪽을 향해 나 있는 두개의 메인도로가 있는데, 그 도로들의 경우 하나는 우드스탁 로드 (Woodstock Road)이고 또 하나는 반버리 로드 (Banbury Road) 예요.  우드스탁로드를 따라 가면 '우드스탁' 이라는 작은 도시가 나오고, 반버리 로드를 따라 죽 올라가면 반버리에 도착해요.  오늘 소개해드리는 케잌은 바로 이 지명의 이름을 가진 '반버리 케잌'입니다.  

아래 사진의 케잌이 바로 Banbury Cake입니다.  이게 무슨 케잌이냐구요?  ^^ 그러게요~ 하지만 납작한 팬케잌도 팬케잌이라 불리니 이것도 케잌이라 불리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매주 월요일에는 저희 동네 아빙던 시내에 장이 서는 날이에요.  그곳에는 과일/야채상도 있고, 생선파는 트럭, 고기파는 트럭, 꽃가게, 잡화상과 함께 동네 베이커리에서 와서 빵을 팔아요.  늘 그냥 구경만 하다가 오늘은 가까이 가서 보게 되었는데, 요 녀석이 눈에 쏙 들어오더라구요.  흥미로운 이름 "Banbury Cakes" 이라는 팻말과 함께.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반버리는 옥스퍼드 북동쪽에 있는 소도시 이름이라서 이 지명을 딴 케잌이라니 흥미로워서 빵집 아저씨께 여쭤봤어요.  이건 어떤 케잌이냐고.  그랬더니 패스츄리 안에 과일과 스파이스들로 만든 속 (filling)이 들어있는 거라고 설명해주셨어요.  일단 먹어보자 싶어 하나만 달라고 하고, 그것만 사기는 아쉬워서 처음으로 이곳에서 작은 덩어리 통밀식빵도 구입했습니다.  바로 아래의 빵이죠. 

집에 와서 케잌의 속을 갈라보니 안에 마치 팥앙꼬나 단팥같이 보이는 속이 들어있었어요!  속으로 이게 정말 팥빵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한입 먹어봤는데, 팥빵은 당연히 아니었고 단팥보다는 덜 달면서 시나몬 향이 은근히 퍼지는 달콤한 속이었어요. 

속은 생각보다 달지 않으면서 케잌의 표면에는 또 설탕이 발라져있어서 입에 닿을 때는 달콤하고, 겹겹이 페스츄리가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운 그런 디저트였습니다. 

먹고 나서 이 케잌의 유래를 찾아보니 정말로 반버리 라는 지역에서 시작된 케잌으로 1586년부터 구워졌다고 하네요.  한 때는 이 반버리 지역에서만 만들어지고 판매되었던 케잌이라고 해요.  속에 들어가는 과일은 커런트 (그 중에서도 Vostizza Current) 라는 검정색의 신 과일이래요.  그야말로 지역 특산품!  우리나라 조선시대부터 만들어지고 먹고 지낸 케잌이라.. 참 놀랍습니다.  이 별것도 아니어보이는 녀석이 정말 오래된 그야말로 "전통 디저트"라 할 만한 그런 케잌이네요.  게다가 그런 오랜 역사를 가진 케잌이 여전히 대중적 빵집을 통해 만들어지고 팔리고 한다는 것도 놀랍구요.  

레서피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 블로그 (영어블로그임 ㅠ) 에 잘 나와있네요~ (링크 클릭)

영국 살다보면 정말 긴 역사를 가진 것들이 현재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 때마다 참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가끔은 불편하고 말도 안 되는 것들마저 지속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또 비합리적이더라도 그 오랜 역사를 지속함으로써 자기들만의 문화, 전통,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영국이고, 이 나라의 힘의 일부도 거기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가령 영국에는 창문도 덜렁거리고, 단열도 잘 되지 않아서 아무리 난방을 해도 집이 추워 실내에서 항상 두꺼운 외투수준의 옷을 입고 있어야 겨우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집들이 꽤 있어요.  그런데 그런 집들을 허물고 신식 건물을 짓기 보다는 오히려 그런 집들은 더 높은 가격을 주고 매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답니다.  단지 "그 오랜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그런 주택을 높게 사고, 그런 주택의 특이성을 값어치있게 보는 거지요. 

오늘 저는 저 반버리 케잌을 저혼자 절반이나 (?!) 먹은 후 남은 절반은 아이를 재워놓고 남편과 함께 다시 나눠먹었습니다.  흥미로운 이름의 케잌 하나 덕분에 영국의 새로운 디저트도 알게 되고, 인근 지역 특산품도 알게 되니 좋네요!  다음에도 장터에 가서 뭔가 신기하고 재미난 먹거리 없나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