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중순부터 현재까지, 약 두 달여간 저는 올해 들어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 내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전에 블로그에서 일을 하느라 바쁘다는 언급을 하며, 이제 9월 13일이 데드라인인 일을 끝으로 그 어떤 데드라인 있는 일도 없을 예정이라 말씀드린 바 있지요.
그런데...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했나요. 옛말은 틀린 말이 없습니다.
그런 말을 적기 무섭게 저는 또 일을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그 일을 제안하신 분의 말씀에는 '급하게 할 필요는 없고 10월 초 중순까지만 마무리하면 되는 일'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없어도 저에게 갑작스레 주어지는 한달 남짓에 마감해야 하는 일은 급하게 해야 하는 일인데, 뭐든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한달 이상의 시간 여유가 있는 일은 급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약간의 충격.
현재 몸과 정신이 다소 소진된 상태임에 따라 연말까지 그 어떤 공식적 일도 만들지 않겠노라 다짐한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0.01초는 망설였을까, 거의 망설임없이 "네, 그럴게요!"라고 대답을 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는 상당한 충격.
정말, 못 말리는 성격입니다. 전 어쩌면 좋을까요?
욕심쟁이. 애들 돌보는 일도 내가 하고 싶고 (이렇게 말하지만, 남편이 봐 줄 때가 더 좋습니다), 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쟁이라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만 합니다.
***
이 일은 오늘 저의 산책 시간, 저 혼자만의 산책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아이들은 어쩌고 혼자 산책을 할 수 있었냐구요? 틴틴에게 맡겼지요. 틴틴의 점심시간에 틴틴이 밥을 다 먹은 직후 집을 나와 틴틴의 남은 점심시간 동안 제가 산책을 한 것입니다. 1월 중순에 아이를 낳은 후 오늘이 딱 세 번째 나홀로 산책이었어요. 저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
그 때 마침 며칠전에 마친 일을 함께 하고 있는 언니에게 연락이 왔어요. 제가 보낸 일에 대한 약간의 피드백과, 향후 계획에 대해. 그러면서 위에서 말씀드린 그 '새로운 일'에 대한 제안도 받은 거지요.
언니와 짧지만 즐거운 대화 끝에 전화를 끊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생각해봤어요.
올 연말까지 절대 더 이상 일을 벌이지 않겠다고 했던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지금같이 힘든 상황 속에서 나는 왜 또 일을 한치의 망설임 없이 받아버렸나. 낮 동안 온전히 아이들을 돌보다 밤에 일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몸으로 겪어놓고, 그것때매 지금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으면서 (= 13일까지 마감인 일을 아예 손도 못 대고 있어요 ㅠㅠ), 왜 나는 이 일을 또 받은 것인가.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재미있으니까. 하고 싶으니까.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연구하는 일이라 그렇구나.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을 때, 재미있어 보이는 연구에 참여할 수 있게 될 때. 그 제의를 마다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박사 논문을 마치면서 지긋지긋하기 짝이 없었던 '연구'가, 그게 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구나. 그래서 내가 그 우여곡절 끝에 박사를 마칠 수가 있었구나. 그게 내가 그간 해 본 일 중에는 제일 좋아하는 일이니까.
박사학위를 마친지 어느새 4년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제법 긴 시간이 흘렀지요. 제가 박사를 마친 후 박사를 시작한 사람이 박사를 마칠 만한 시간이지요. 그 시간 동안 저는 제대로 된 논문 한편 내지 못하고 임신하고, 아이를 낳고, 또 임신하고, 아이를 낳아 이렇게 두 아이와 사투하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연구에서 멀어진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 지긋지긋했던 공부가 이제는 너무너무 다시 하고 싶어졌습니다. 연구에 대한 사랑을, 나의 열정을 회복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현실은 시간이 없네요.
"절대" 시간이 부족합니다.
아이를 기관이나 타인에게 맡기지 않고서는 절대 제대로 된 시간을 낼 수가 없는데,
아이를 맡길 만한 적당한 곳에 타협하지 못하고 두 아이를 이렇게 끼고 있네요.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면 큰 애는 지속적으로 어린이집을 가고 있었을텐데, 코로나로 아이가 나가던 어린이집도 문을 닫아 버리고. 그 와중에 둘째 아이는 낮잠이 정말 적은 아이라는 것이 드러났고, 그리하여 형아가 집에 없더라도 엄마에게 제대로 된 휴식 시간을 벌어주지 못할 짧은 낮잠만 자는 아이인지라 큰 아이만 어린이 집에 보내는 건 저의 일과 휴식에 큰 의미가 없는 상황.
사실, 첫째가 없으면 둘째 낮잠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재울 수 있고, 저도 낮잠 자는 아이 옆에 누워 조금이라도 쉴 수 있을 것이므로 '큰 의미가 없는' 건 아닙니다.
큰 애가 어린이집 가기를 그토록 싫어하는데, 제 그 휴식을 위해 아이를 어떻게든 기관으로 보내는 게 제 마음이 불편해서 그렇게 하지 않는 거지요. 그게 솔직한 마음이자 상황입니다.
***
그렇게 이 욕심쟁이 엄마는 아이들을 제 품에 끼고 있으면서,
없는 시간 쪼개어내어 어떻게든 뭐라도 좀 해 보고 싶어서 발버둥을 칩니다.
없는 시간, 부족한 체력에 늘 헉헉대면서도,
그래도 뭐라도 할 기회가 생겼음에 기쁘고 설레어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면서도 벌써부터 마음 한켠에 커다란 돌이 저를 짓누르는 것 같아요.
너 시간 안에 할 수 있겠어?
한 달 밖에 시간이 없는데, 애들 재우고 매일 1시간씩 해 봤자 20시간밖에 안 되는데?
남들 이틀, 삼일 앉아서 일 하는 정도밖에 안 되는게, 그걸 매일 쪼개어 써서 그 일을 완수할 수 있겠어?
제 속의 목소리가 제게 물음을 던집니다.
전 할 말이 없어요. 그 말이 모두 맞거든요.
시간 안에 하기 힘들 거예요. 마음에 쏙 들만큼 잘 하기가 힘들 것임에 틀림없지요.
특히나 제가 하는 일의 속성상 20시간을 2-3일에 쪼개서, 아니 4-5일에라도 쪼개어 커다란 뭉치의 시간을 몇번만 써도 며칠이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매일 1-2시간씩 쪼개어 써서는 일의 흐름이 뚝뚝 끊겨서 일의 효율이 더 떨어집니다.
"뭉치시간을 만들어 그 시간에 집중적으로 일하기" 라는 더 효과적이면서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이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엄마는 여기서만큼은 타협해야 합니다.
시간 안에 하기 힘들 거야. 내게 주어진 시간과 체력 안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지.
'주어진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만큼'에 만족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게 현재 제게 주어진 여건이고, 그게 곧 제 실력이거든요.
이런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장점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주어진 여건'안에서 일을 마무리 짓는다는 것이 그렇게나 힘든 일이었어요. 어떻게든 시간을 더 만들어 (=잠을 줄이고, 식사 준비 시간을 줄이고, 노는 시간 없애고, 운동시간을 줄이고 등) 애를 쓰면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는 비현실적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리며 자신을 몰아쳤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기 때문이지요.
어쩔 수 없이 잠을 줄여야 하는 날들이 있긴 하지만, 낮에 아이를 돌보고 다음날도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리하게 잠을 줄일 수도 없고, 식사 준비 시간을 줄이는 것도 최대한 줄인다고 줄여도 어린 애들이 둘이나 되다 보니 많이 줄여지지도 않습니다. 운동시간은 이미 거의 못 가지고 있으니 줄일 것도 없지요. 기타 활동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제가 즐겨하던 한국 드라마 보기도 이젠 전혀 못 하고 있어요. 넷플릭스에 올라오는 한국 드라마를 매주 한두편씩 보는 그 재미가 솔솔한데, 올 해는 코로나로 아이 어린이집이 문을 닫은 이후로 드라마 속 세계로 여행하던 저의 세상도 문을 닫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줄이게 되는 것이 블로그 쓰기. ㅠㅠ 제 유일한 취미이자 기쁨의 활동.
이렇게 장황하게 글을 쓰는 건, 그리하여 이 욕심쟁이 엄마는 또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고로 앞으로도 블로그에 글이 이전처럼 자주 올라오지는 못할 것 같다는 슬픈 소식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그래도 데드라인을 넘긴 후, 혹은 가끔 있는 황금같은 휴식 시간, 그런 시간은 언제나 블로그와 함께 시작하니, 제 블로그에 올라올 앞으로의 소식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아이가 자다 깨서 우네요. ㅠ 아이 돌보러 가봐야겠습니다.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
틴틴이 아이를 다시 재워서 저는 다시 블로그로 돌아왔어요.
그냥 가기 아쉬우니 귀여운 뚱이 사진 하나 띄우고, 오늘 글을 마칩니다. 모두 바이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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