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글을 자주 씁니다.
휴식기라서 가능합니다.
지난 일요일에 있던 데드라인 하나를 맞추고 나서 다음 데드라인 10월 중순 이전까지는 특별히 바쁜 일이 없거든요. 아, 9월 25일까지 읽어야 할 책이 한 권 있는데, 한국책인데 전자책으로도 나와 있지 않아서 한국에 주문하여 책을 배송 받는 중인데, 그 책이 아직 도착을 하지 않은 덕분에 이렇게 시간이 나지요.
사실 지금도 졸려서 글을 쓸 여력이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급한 마감에 시달리고 있지 않을 때 한 자라도 더 적어두고픈 마음에 졸린 눈을 겨우 뜨고 글을 적어봅니다.
둘째를 키우면서 언니들 생각이 참 많이 나요. 뚱이가 잭에게 하는 행동들을 보면 내가 언니들에게 저런 존재였겠구나, 언니들에게 나도 저렇게 했겠구나, 싶고, 잭이 동생에게 하는 행동들을 보면 우리 언니들도 나에게 저렇게 해줬겠구나 싶거든요.
오늘은 두 아이를 모두 데리고 공원에 다녀왔어요. 잭이 산책을 가자고 하는데, 마침 그 때가 뚱이도 밥을 두둑히 먹고 낮잠을 잘 때 쯤이 되었던 터라 이 참에 둘째 뚱이를 유모차에서 낮잠도 재우고 잭의 외출욕구도 채워주자 생각했지요.
저 혼자 두 아이 모두를 데리고 외출하기는 오늘이 딱 세번째였어요. 처음은 동네 산책이었고, 두번째는 오늘과 비슷하게 시내를 들렀다 집에 돌아오는 코스. 두 번 모두 정말 힘들었는데, 이제 세번째라고 여전히 피곤은 하지만 긴장은 이 전보다 좀 덜 한 느낌이었습니다.
* * *
코로나로 락다운 시기를 겪은 후, 저희 잭이 가장 좋아하는 나들이는 "카페" 나들이에요. 집 밖으로 나왔다 하면 항상 "카페가자, 카페!" 라고 합니다. 저희가 마트와 가게들을 못 간 기간만큼 이 아이도 마트와 가게를 못 가고 지내다 보니 카페, 마트, 이런 곳이 제일 그리운 가봐요. 마트도 정말 가고 싶어하는데, 아이를 컨트롤할 자신이 없어서 아직 올 해 들어 저희는 아이 약 사러 마트 한 번 간 이후 단 한번도 대형 마트를 가지 않았습니다. 둘째 여권 신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작은 슈퍼마켓 안에 있는 우체국을 갔어야 하는데, 그 우체국에 아이 데리고 간 것이 전부이지요.
그러다 보니 오늘도 집 밖으로 나올 때는 집 앞을 산책한다고 나온 것이었는데, 잭이 또 "카페, 카페!"하고 노래를 하는 바람에 시내로 와서 카페를 갔습니다.
집 앞 산책한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선지라 아이 간식도 아무 것도 없어서 카페에서 빵 두개, 쥬스 두 개만 사서 저희는 시내 공원으로 들어왔습니다. 코로나 이후 피크닉이 일상이 되었어요. 시내 나왔다 하면, 공원에 왔다 하면 언제나 공원에 매트를 깔고 앉아 간식 먹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렇게 잠시 고요한 휴식을 즐깁니다.
오늘 자리를 깐 곳은 Abbey Garden 한 켠의 나무그늘이었어요. 평소 이 쪽은 매트 깔고 피크닉하는 사람들이 잘 없던 곳인데, 오늘은 저희도 이쪽에 자리를 깔았어요. 왜냐하면 잭이 배가 고프다고, 얼른 간식을 달라고 보채고 있었는데, 그나마 여기가 공원 초입에서 가장 가까운 나무그늘이자, 잠시 자리 깔고 앉을 만한 곳이었거든요.
저희 한참 뒷쪽에도 아이를 데리고 피크닉 중인 엄마들이 있었어요. 평일 점심시간이다 보니 아이 데리고 나온 엄마들만 종종 눈에 보이고, 주말에 비해 아주 조용한 분위기였습니다.
둘째 분유도 준비해오지 않은터라 둘째가 배고프기 전에 집에 가야 한다는 압박이 있는 가운데 잭의 욕구도 충족시켜줘야 하다 보니 그런 점이 좀 힘들었습니다. 분유수유가 여러모로 참 편한데, 외출 시에는 정말 불편해요. 준비물이 없으면 분유를 줄 수 없으니까요. 모유수유 중일 때는 저만 있으면 준비가 끝인데 말이죠.
공원에서 달코미 빵과 쥬스로 당 충전을 마친 후, 얼른 집으로 가자고 하는데 잭이 기어코 놀이터를 가자고 또 노래를 부릅니다. ㅠ 안 된다고 할 핑계도 마땅찮고, 놀이터도 아주 많이 한산하고 하여 놀이터에 또 들렀습니다.
아이는 오늘도 높은 미끄럼틀에 올라갔어요. 이 미끄럼틀이 이제 도전해보고 싶은가봐요. 오늘도 혼자서 성큼성큼 올라가더니, 막상 위까지 올라가서 보면 미끄럼틀이 많이 무서운가봐요. ㅋㅋ 엉덩이를 쑤욱 빼고 미끄럼 아래를 슬쩍 쳐다보는 잭입니다.
예상했지만, 오늘도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지는 않았어요. 계단만 좀 올라다가다 중간에 앉아 용감하게 계단에 앉아있는 모습을 동생에게 보였습니다.
"선재야, 봐봐~"
라고 동생에게 말하면서 말이죠. 아이가 저 미끄럼틀 계단에 올라갔을 때 뚱이가 딱 잠에서 깼거든요.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지는 않았지만, 미끄럼틀 계단에 앉아 양 손을 계단 손잡이에서 떼고 앉는 용감한 모습을 보여줬어요. 저와 동생을 부르며 자랑스럽게 두 손을 흔들더군요. 손도 안 잡고 있을 수 있다고. ^^
그리고 나서 오늘은 그네를 타겠다고 하네요. 지난 번에는 그네 싫다고 하더니, 오늘은 그네가 타고 싶어졌나봐요. 미끄럼틀은 무섭지만 그네는 무서워하지 않거든요.
뚱이는 형아의 그네 타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잭은 제가 자기 그네를 밀어주느라 눈에 안 보여도 동생이 눈 앞에 있으니 더 좋아하는 눈치예요. 겁 많고 소심한 잭에게 뚱이의 존재는 든든함, 그 자체입니다.
든든함만 있는 것인 아닙니다. 어디에나 명과 암이 있는 법. 집에서 놀 때에는 동생 때문에 제약이 많거든요. 기차 놀이를 하겠다고 해서 기찻길을 만들어줬는데, 그 기찻길 안에 앉아서 놀려고 하니 그 좁은 공간에 뚱이가 비집고 들어옵니다. 들어오기만 하면 괜찮은데 레일 위에 철퍼덕 앉아버리니 레일을 쓸 수도 없어요.
그나마 저 레일을 뚱이가 모두 분리해버리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나고 나서 제가 급하게 다시 연결해준 것이지요.
평화로운 시간이 2-3초 지난 후 뚱이는 형아가 굴리려는 자동차 한 대를 손에 집었고, 잭은 "선재야, 안 돼요! 안 돼요, 그건 안돼요!!" 하고 뺏으려 하자 뚱이는 몸매에 어울리지 않게 날쌔게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잭은 그 뚱이를 쫒아가서 뚱이 손에 자동차를 뺏으려는데, 뺏기지 않으려는 뚱이가 자동차를 쥔 채로 휘두루는 팔에 눈을 맞아 "아파요!!" 소리치는 순간 동생 뚱이가 '옛다' 하고 자기 손에 쥐었던 장난감을 던져버렸습니다. 잭은 얼른 그 장난감을 다시 주워들고 레일 안으로 복귀. ㅋ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줄 알았답니다! ㅋ
그 때 제가 두 아이가 앉아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위의 사진을 찍었는데, 마침 핸드폰을 손에 들고 있던 터라 그 장면을 모두 녹화하는 데 성공했지 뭡니까! ㅋ 그 영상이 오늘의 수확입니다! 공유하고 싶으나 시간이 없고 재주가 없어 공유할 수가 없음에 안타깝습니다.
참, 요즘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하긴 한지, 영국 여름이 유난히 덥고 길어 오늘도 완연한 여름같은 날씨였어요. 저희 잭은 6월부터 지금까지 내내 집에서 팬티만 입고 살고 있어서 집에서 찍은 잭 사진은 공개할 만한 게 거의 없습니다. ㅠ 오늘은 심지어 공원에서 매트 위에 앉기 무섭게 "바지 벗을래" 하며 바지를 내리려는 통에 말리느라 혼났습니다. 집 밖에서는 옷 벗는 거 아니라구요. 아무도 옷 벗은 사람 없지 않냐고. --;;;;;
그렇게 저희 뚱이와 잭은 서로와 함께 하는 시간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잭은 많은 시간 뚱이를 귀여워 해요. 시샘도 하고, 가끔 밀치기도 하고, 엄마 아빠에 대한 반항의 의미로 뚱이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그럭저럭 잘 공존하고 있습니다.
잭이 하는 짓이 얄미울 때는, 뚱이가 탁자나 의자를 잡고 서 있을 때 탁자나 의자를 잡은 손가락을 밀어낼 때..? 그러는 거 아니라고 늘 이야기해주는데, 뚱이는 신체발달이 빨라 벌써 혼자 손 놓고 설 때가 자주 있으니 금새 혼자 서기를 터득하면 잭의 그런 방해공작에도 끄덕 없을 것 같아요. 다 자기 밥그릇은 갖고 태어난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 봅니다.
뚱이에게 형아는 늘 있는 존재. 항상 눈 앞에 있는 사람. 항상 흥미로운 사람.
저에게도 언니들이 그러했겠죠? 얄미운 짓을 할 때도 있었겠지만, 저에게 언니들은 늘 있는 사람. 늘 함께인 존재들.
이렇게 글로 적으면 평화로운 하루 같아 보이지만, 너무너무 힘들어서 오후 4시에는 결국 보름 넘게 통화 한번 하지 않았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난 애 둘도 이렇게 힘든데, 엄마는 우릴 도대체 어떻게 키웠나 싶어서요.
영국 오후 4시. 한국은 밤 12시죠. 그 시간에 비디오콜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네, 저도 그럴 때가 있어요. 적고 보니 제가 엄마께 한 짓이 잭이 뚱이한테 하는 짓 같네요. 한국이 12시라는 것을 알고도 그냥 전화 해 버렸어요. 엄마는 한밤중에라도 손주들 보면 좋아하실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또 엄마는 잠시 일어나셨다가도 다시 주무시면 되니까요~ ^^;;;;;;;;;;;
엄마가 전화를 받자 제일 먼저 제가 한 말은,
"엄마, 주무실 것 알면서도 그냥 전화했어요. 엄마, 애들 좀 데리고 가서 키워주세요.. 너무 힘들어."
였답니다.
진지한 저희 엄마.
"그래, 하나만 보내라. 엄마가 키워줄게. 그런데, 애들을 어떻게 보낼 수 있어? 보낼 방법은 있어?"
"뭘 하나만 보내~ 둘 다 보낼테니 둘 다 키워주세요!"
"그래, 알았어. 둘 다, 어떻게 보내지, 애들을 어떻게 보내면 돼?"
"보내긴 어떻게 보내요. 우리가 데리고 가야 가는거지. 그냥 하는 소리예요. 너무 힘들어서. 엄마는 어떻게 우리 넷을 키웠어요.. 난 둘인데도 정말 너무 힘드네."
앓는 소리를 하자, 엄마는 어른들이 늘 하시는 말씀, 바로 그 말씀으로 대답하셨어요.
"뭘 키워. 너희가 알아서 컸지. 너희끼리 컸지."
라고.
타임머신이 있다면 타고 가서 저는 어떻게 자랐나, 울 엄니는 날 어떻게 키우셨나 제 눈으로 꼭 한 번 보고싶어집니다.
오늘의 일기는 여기서 끝~ 애 둘 엄마는 이렇게 하루를 보냈답니다.
모두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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