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힘겨운 하루였다.
비가 올 예정인 것을 알았지만, 잭이 놀이터를 가겠다고 해서 놀이터로 나섰다. 잠시 내릴 줄 알았던 비는 거의 내내 내리는 바람에 빗속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느라 힘들었다. 놀이터에 도착하였을 때로부터 얼마간만 비가 내리지 않고 거의 내내 비가 왔다. 비는 오는데 아이들은 유모차에 방수커버를 씌우는 것을 너무 싫어해서 커버도 반쯤 걸쳐둔 채 공원을 배회했다. 날씨가 그 모양이니 놀이터에는 우리 밖에 없었다. 코로나 중에 최적화된 (?) 놀이터 이용법 (이건 다음에 제대로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얼마 놀지도 않았는데 비가 내리는 바람에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워 방수(비닐)커버를 씌워 아이들을 비로부터 보호했다. 유모차에 앉은 잭이 강물이 세게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싶다 해서 유모차를 끌고 강 위의 다리로 가서 그 위에서 세차게 흐르는 강을 구경했다. 이것은 소위 "물멍",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
다리를 두 번이나 건너고 싶어해서 두 번이나 건넜는데, 그 두 번째에 다리를 통과해서 보트가 지나가느라 다리가 접혔다가 펼쳐지는 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그 장면을 목격한 잭은 넋이 나간채 바라보았다.
메도우(넓은 초원)를 통과해서 시내로 갔다. 가는 길에 메도우에 양들이 풀을 뜯고 있어서 잭과 뚱이 모두 아주 좋아했다.
나만 멍멍이 고생. 한 손에 뚱이를 안고 양을 보여주며, 또 다른 한 손으로 유모차를 대충 밀면서 우리 앞에서 달리기를 하며 뛰어가는 잭을 쫓아가야했다.
비가 내내 추적추적 내리는데, 외투 입기를 거부했던 잭이 좀 얼어있는 듯 해서 잠시라도 몸을 녹여야 할 것 같았다. 마침 길 건너에 있는 카페 코스타에 손님이 하나도 없는 것을 발견, 우리는 코스타로 들어가서 아이들용 따뜻한 우유 한잔과, 잭이 마실 스무디, 내가 마실 오렌지 쥬스, 그롸상 하나, 쵸코 트위스트 하나를 사서 자리에 앉았다.
올 초 둘째 출산 후 카페 안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마시기는 처음. 뚱이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두리번 거리며 신기해했다. 오랫만에 카페에 앉아서 우유도 마시고, 쥬스도 마셔서 잭이 기분이 좋았다.
우리 밖에 없어서 안심하고 들어간 카페인데, 비가 계속 내려서인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카페로 들어왔고, 우리 테이블과 제법 간격은 있었지만 바로 옆 테이블에도 사람이 앉아서 우린 대충 먹고 서둘러 카페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열심히 두 녀석이 앉은 유모차를 밀며 하나, 둘, 하나, 둘 잭의 구령에 맞춰 집으로 돌아왔다. 그 와중에 뚱이는 유모차 커버의 고리를 잡아당기며 나름 스스로를 즐겁게 하고 있었다.
귀가 후
피곤했던 잭은 집에 와서 온갖 나쁜 짓을 행했다. 아주 약한 힘으로 하긴 하였으나 팔을 휘둘러 나를 때리기도 했고, 아주 살살, 건드리는 수준이긴 했지만 발로 나를 찼다. 우리 집에서 절대 금지인 다른 사람 때리기 행동이 나온 것이다. 아이가 피곤하고 많이 졸리면 나오는 행동. ㅠ 어김없이 2분간 벌 서는 구석에서 벌을 섰고, 그리고도 나쁜 짓이 두어번 연속되어 그 때부터 나는 잭과 놀지 않았다.
잭이 나쁜 짓 (다른 사람 때리기, 물건 던지기, 음식으로 장난치기) 을 해서 내가 잭과 놀아주지 않게 되면 그 때 발동되는 것이 있다. “혼자놀기 신공”
절대 혼자 놀지 않고 우리와 함께 놀고 싶어하는 잭은 이렇게 벌을 받는 동안 갑자기 혼자 정말 잘 노는 아이로 변신한다.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달리기에 점프도 했다가, 혼자서 집 안에 굴러다니던 온갖 물건으로 스스로 장난감을 만들고 혼자서 이야기를 지어내며 논다. 노래도 흥얼거렸다가 괜히 가만히 있는 동생 얼굴도 만졌다가, 가끔 심통나면 동생을 밀었다가, 다시 세워주면서.
뚱이도 갑자기 쑥 자란 느낌이다. 나를 바라 볼 때의 눈빛이 이전에 비해 훨씬 또렷또렷해졌다. 그리고, 잭처럼 손을 능수능란하게 잘 쓰지는 못하지만, 음식을 주면 포크를 뺏어서 포크에 있는 음식을 자기 스스로 먹는다. 그건 참 잭에게서 보기 힘들었던 능력. 설혹 있었더라도 잭이 절대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능력이다.
비도 오고 추운 날씨에 밖을 너무 배회한 데다가, 어젯밤 이런 저런 고민으로 잠에 일찍 들지 못해 그렇잖아도 잠이 부족했는데, 11킬로가 넘는 뚱이 오후 낮잠마저 등에 업은 채로 45분간 잠을 재웠더니 너무 너무 피곤했다. 그 바람에 틴틴이 퇴근한 5시 35분, 나는 거실에서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두 아이와 틴틴이 시끌벅적한 바로 그 거실에서. 방석 두 개를 바닥에 깔고 뒹굴어 다니던 쿠션을 머리에 베고서 정신 없이 잠을 잤다. 자기 전까지 수면부족으로 눈이 따끔거렸는데 자고 일어나니 눈이 따갑던 게 사라졌다. 틴틴은 알아서 잭 저녁도 다 먹이고, 자기 저녁도 알아서 먹었다. 먹을 거리도 없는데 알아서 찾아내서 먹고 먹이고 해 주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오랫만에 자기의 나쁜 짓으로 오후 두 세시간을 엄마와 놀지 못하는 벌을 받은 잭은 잠 자리에 누워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쁜 짓 참을 거야.”
“나쁜 짓 참을 거예요.”
두 번이나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오늘 한 나쁜 짓이 꽤나 후회가 되었나보다.
우리 아이가 많이 달라졌다. 기특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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