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ADHD와 함께 살아가기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이어서 아이 진단명이 확정되었습니다.

옥포동 몽실언니 2024. 11. 28. 20:50

첫째 잭의 담임 선생님을 면담하러 가던 날, 요동치는 제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몇 달간 쉬었던 글을 드디어 재개하며 굳센 다짐들을 적어두었습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아이의 현재 학교 생활과 선생님이 관찰하시는 모습들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그리고 난 다음날.. 바로 어제였죠.  드디어 12개월간 대기자명단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아과 전문의와 전화 면담이 이루어졌습니다.

전화면담 약속은 90분짜리 약속이었어요.  약속 시간만 들어도 부담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의사 선생님과 90분에 걸친, 그러니까 1시간 하고도 30분에 걸친 시간 동안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일은 흔치가 않잖아요.  한국의 의료시스템에서는 더더욱 드문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에서도 이런 일은 영국에서 18년째 살고 있는 저도 처음 겪는 일입니다. 

이 약속이 잡히기 전에 저희는

 

  1. GP 와 만나서 전문의 진료 의뢰를 요청하며, 그 배경을 상세히 설명했었고,
  2. 아이의 발화언어평가서를 제출했고, 
  3. 시력 검사, 청력 검사 모두 정상이라는 결과도 제출했고,
  4. 학교에서 선생님이 작성한 Conner's 4 교사용 (ADHD 진단도구) 질문서와 '학교생활 보고서(School Report Form)'을 제출했고,
  5. 제가 기입한 Conner's 4 부모용 (ADHD 진단도구) 와 Social Communication Form (자폐진단도구)을 제출했었어요.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ASD(자폐스펙트럼장애)를 진단하는 데에 동원되는 의료 인력이 경로에 따라, 아이의 연령에 따라 조금씩 다른지 저희 지역에서는 이를 담당하는 소아전문팀에서 진행해서 소아과전문의 선생님과 면담이 이루어졌어요. 

예정대로라면 9시 30분에 전화가 오기로 되어있었는데, 약속 전날에는 무슨 일인지 9시 정각이 약속시간이라고 문자가 왔어요. 밤새 잠을 좀 설치며 긴장하고 잔 것 같은데, 8시 25분쯤 남편 틴틴 편에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부터 마음이 잡히지 않아 집안을 오가며 어지럽혀져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습니다. 그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핸드폰 시계는 몇 번을 확인했나모릅니다.

이제까지 담임 선생님들과 만나기 위해 준비했던 저 나름의 미팅 노트들, 선생님들이 매 학기마다 작성해주셨던 아이에 대한 개입 계획 (Individual Study Plan 또는 Individual Needs Plan)을 챙기고, 이번 전문의 면담을 앞두고 현재 2학년 담임 선생님이 작성해주신 7페이지짜리 학교 생활에 대한 리포트까지 한부 출력해서 부엌 식탁에 가서 자리잡고 앉았습니다. 

흔들리는 마음 속에서 한국에 있는 큰 언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언니도 일에, 아이들 육아에 바쁘다보니 통화가 쉽지 않은데, 어쩐 일인지 언니가 전화를 받아서 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드디어 "NO CALLER ID"라는 이름으로 전화가 옵니다.  전화 걸려오는 번호가 감춰져서 오는 전화.  바로 병원에서 오는 전화입니다!

전화를 받으니 여자 의사 선생님이십니다.  인도쪽 악센트가 있으시고 말이 빠르신 선생님이셨어요.  서로가 잠시 인사를 나누고, 서로가 서로가 맞는지 확인한 후 선생님이 준비한 여러 질문에 하나씩 답을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어제의 전화 약속에 오기까지 본인에게 수령된 모든 질문지에 대한 정보가 무엇이었는지 간단히 브리핑 해주시며, 오늘 약속 시간 동안 뭘 할 것인지 간략하게 소개해주신 후 질문을 시작하셨습니다.  먼저, 현재의 가족사항을 질문하신 후 아이에 대한 본격적인 질문으로 넘어갔습니다. 그 첫번째 질문은 아마 제 임신 기간 중에 대한 기록으로 거슬러올라갔습니다.

임신이 정상임신이었는지, 분만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임신 기간 중에 별다른 이슈가 없었는지, 출산 이후 아이의 건강 상태, 아기 때의 경험, 1-2세 유아때의 경험, 3-4세 시기의 경험, 5세, 6세, 그리고 현재까지 과거부터 거슬러올라가며 아이에 대한 모든 지난 기록들을 물으셨고, 저는 선생님의 질문에 제 모든 기억을 동원해서 대답했습니다.

아이가 기존에 다닌 기관들의 명칭과 위치도 모두 물으시고, 각 기관을 다닐 때 아이의 생활이 어땠는지도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영역별 질문으로 넘어간 것 같아요.  먹는 부분은 어떤지, 잠은 어떤지, 대근육 기능이 어땠는지, 소근육 기능은 어떤지, 여러 영역에 있어서의 아이 기능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질문하셨어요. 

사회생활적인 측면, 다른 아이들과의 놀이나 관계에 대해서도 하나씩 물으시고, 

언어발달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질문하셨습니다.  어릴 때 어떤 것을 가르키며 (pointing) 말하는 것을 했는지, 뭔가 한 대상에 대해 부모와 함께 이야기를 공유했는지.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잘 이야기했는지 (re-tell).. 

아이가 이상한 소리를 반복적으로 내거나(steaming), 말이 안 되는 이상한 단어를 만들어서 계속적으로 사용하는지 (ideosyncratic use of language) 많은 질문을 하셨어요. 

아이가 옷에 라벨이 있는 상태로 입을 수 있는지, 라벨을 모두 빼야 하는지, 같은 질문을 수없이 반복하는 일이 있는지 등등..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묻지 않았지만 더 얘기하고 싶거나 질문이 있는지 물으셔서 저는 아이의 감각적 예민함에 대해 몇 가지 더 추가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종합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셨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도 말씀해주셨어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오늘 이야기 나눈 대부분의 특징들이 ADHD로 설명이 됩니다.  그러나 전부는 아닙니다. 대부분(most of them)입니다. 그래서, 이 아이의 ADHD 진단은 이로써 확정되었습니다. 추가로, 아이에게 자폐적 성향(autistic traits)이 있는데, 이 부분은 몇 달 후 아이에게 interactive assessment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진료의뢰서를 발송하겠습니다.

 

ADHD에 대해서 접근하는 단계가 있는데, 그 첫번째는 행동적 개입, 두번째가 교육환경 개선, 그것들이 모두 안 되었을 때 그 때 비로서 약물적 접근을 한다고 하셨어요. 

지금 우리가 논의하는 단계가 바로 학교에서의 학습환경을 아이에게 맞도록 맞춰보는 단계로, 이미 학교에서 아이에게 잘 맞는 여러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에 추가적으로 더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작업치료사 (occupational therapist)에게 연락해서 문의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희 아이는 학교 수업 시간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해서 생기는 어려움 (본인의 어려움 외에도 교사나 타 학생들에게 발생되는 어려움), 그리고 여러 감각적 욕구로 인해 발생하는 어려움. 이 두가지 어려움이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어려움들이에요.  그래서 작업치료사 선생님께 연락해서 아이가 좀 더 잘 앉아있을 수 있는데 도움이 될 만한 도구나 방법들, 감각적 욕구를 교육환경을 방해하지 않고 아이도 편안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나 도구들이 있을지 조언을 구해볼 예정입니다.

이렇게 4개월에서 6개월 노력을 해보고, 그 때 그 경과를 검토한 그게 효과가 없었다면 약물 복용을 고려할 예정이라 하시네요.  약물은 어떤 아이들에게는 엄청나게 효과가 좋은데, 약물에 따라 부작용도 뚜렷하다며, 일단은 first line medication으로 시작하는데 약물과 관련된 자세한 정보는 진단결과에 대한 서신을 보내실 때 함께 첨부해서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약물 복용 없이 최대한 노력을 해보고 싶다는 바램을 전했는데, 의사 선생님은 노련한 의료진답게 객관적인 말씀을 덧붙이셨어요.

학교 환경을 개선해보고, 집에서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최대한 활용해 본 후 4-6개월 후에 경과를 바탕으로 어떻게 할지 그 때 결정. 

이미 말씀하신 원칙을 다시 반복해주신 거죠. 

4-6개월 후에는 이번에 학교에서 작성해준 School Report Form을 다시 받아서 이번 진료 직전에 작성된 보고서와 비교해서 아이의 행동과 상황들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평가할 거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SNAP 4라는 도구를 활용해서 아이의 상태를 다시 체크하시겠다고 하셨어요. 

Conner's 4는 진단 자체를 위한 도구인데, SNAP 4는 20개 정도 되는 항목에 대해 간단하게 아이 행동 이슈에 대해 체크할 수 있게 해주는 툴이라고 간단히 설명을 덧붙이셨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마치고  나니 진이 빠졌어요.  전화를 끊고 전화기를 확인해보니 통화시간이 1시간 37분이라고 기록되어 있네요. 

이미 예상한 결과였고, 알고 있던 일이었는데도 막상 전문가의 입에서 "당신 자녀의 ADHD는 이로써 확정입니다" 라는 말을 들으니 다시 한번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멍하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지요. 

통화 전과 후에 달라진 상황이 하나도 없는데, 특히 학교에 가 있는 우리 아이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똑같은 그 아이인데.  왜 이렇게 뭔가 큰 일이 생긴 느낌일까요.

마음이 잡히지 않는 오후.  이 상태로 오늘 뭔가를 하기는 글렀다는 생각.  마침 남편 회사에서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어서 남편이 회사에 갔어야 하는데, 기차 노선에 문제가 생겨서 오전 내내 기차가 취소되는 바람에 출근하지 못하고 있던 남편을 노선 문제가 없는 인근 다른 기차역으로 태워주기로 했습니다.  차로 가면 11분 걸리는 거리인데, 택시를 불러서 보내려고 하니 택시비가 자그마치 20파운드 (36,000원) 나 나온다는 거 아니겠어요.  

맘 같았으면 오전에 바로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소아과 선생님과의 약속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가, 면담이 끝나자 마자 남편에게 바로 출발하자고 해서 남편을 태워다줬습니다. 

그리고 돌아와도 정신이 멍하네요.  머리에 구멍이라도 생긴 것처럼...

남편이 회사에 가는 날이라 우리 잭에게 늘 친절한 반 친구 여자아이 남매를 저희 집에서 같이 놀자고 초대를 해둔 터여서 방과 후 있을 손님맞이에 대비해서 이 방, 저 방 옮겨다니며 청소하며 부산을 떨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심란한 날, 손님들 때문에 이 일을 생각할 시간도 없을터라 다행이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