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영국에서의 셀프산후조리 한달 식단

옥포동 몽실언니 2018. 2. 27. 15:23

우리는 지난해 3월 셀프웨딩에 이어 산후조리도 셀프다.  

이렇게 셀프산후조리를 준비하게 된 것은 한국에서 와서 도와줄 가족이 마땅찮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렇다고 한국에 가서 출산을 할 경우 남편과 오랫동안 떨어져지내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되든 안 되는 여기서 우리끼리 해보자는 것에 의견을 맞췄고, 남편은 회사에서 월급이 나오는 육아휴직 1주일에, 무급육아휴직 1주, 그리고 일반 무급휴직 2주, 1년간 남겨둔 휴가 5일, 그리고 크리스마스 휴일에 신년 공휴일까지 모두 끌어모으니 12월 11일부터 1월 10일까지 딱 한달의 시간이 만들어졌다.  

한달을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 둘이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지고 준비하게 된 셀프산후조리.  그 첫번째 후기는 우리의 식단.

임신 말기 동안 내가 준비한 산후조리 중에 먹을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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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고 병원에서 돌아온 날부터 남편은 열심히 밥을 차리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그냥 미역국에 밥만 말아먹어도 그만인데 자꾸만 거창하게 이것저것 차려주며 먹으라고 한다.  출산하고 돌아와서 한 3,4일은 입맛이 정말 없었던 것 같다.  밥도 겨우 몇술 뜨고 미역국만큼은 모유수유를 위해서 남기지 않고 한대접을 다 먹었다.  그러기를 며칠하고 나서부터는 아기의 황달과 나의 회음부 염증으로 인해 우리는 거의 매일 병원을 다녀야했고, 거기에 낮밤 할 것 없이 이어지는 모유수유를 위한 사투로, 그 때즈음부터 하여 우리는 살기 위해 먹는 부부가 되었다. 

나의 산후조리에 대해 틴틴이 한 다짐이 있다면, 한달 내내 아기를 돌보며 집에만 있어야 할 터이니 먹는 거라도 잘 챙겨먹자, 라는 것이었단다.  그 다짐에 걸맞게.. 틴틴은 열심히 밥을 차려냈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내가 임신 중에 열심히 끓여서 냉동해둔 미역국에, Waitrose에서 오븐에 넣기만 하면 되도록 다 손질되어 있는 생선 (도미) 요리를 곁들여줬다. 그리고 전자레인지에 익히기만 하면 되는 야채모듬.

간식도 이쁘게 차려냈다.  몸에 좋은 아이슬란드식 요거트 (저 작은 요거트 한통에 단백질이 20그램이나 들어있단다)에,

내가 좋아하는 과일들도~ 딸기, 방울토마토, 블루베리.  아.. 먹음직스럽다.

사진은.. 사실 우리를 걱정할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찍어둔 것이었다.  이렇게 남편이 잘 해주고 있으니 걱정들 말라고.. 

아기를 데리고 매일 같이 병원을 오가다 보니.. 나의 회음부 봉합실은 다 튿어지고, 그 자리에는 염증이 들어서며 나는 항생제 복용 신세가 되었다.  그러자 한국에 있는 언니도, 또 이곳의 지인들도, 아이 낳고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상처가 덧난 거라고.. 지금부터라도 꼼짝말고 누워만 있으란다.  그런 충고들이 연이어 계속되자 틴틴, 그날부터 1층 부엌에서부터 밥을 차려 3층 다락방의 침실로 밥배달을 시작했다.  나같으면 그냥 큰 대접에 미역국에 밥 한그릇 말아올 것 같은데, 틴틴은 여전히 그럴싸한 밥을 차려왔다.  나를 잘 먹이고 싶다는.. 그 일념 하나로..

다행히 옥스포드에 사는 성당언니와 선배언니가 음식을 해다준 덕분에 우리의 밥상은 더 풍성해졌다.  내가 끓여뒀던 미역국에 J언니가 해다준 두부조림과 동그랑땡.. 아.. 언니의 동그랑땡은 일품! 오이양배추 피클은 내가 임신 중에 해 둔 것이다. 

산후조리시에는 기름진 고기보다 생선이 좋다 하니 우리는 생선도 열심히 구워먹었다.  아래도 웨이트로즈에 파는 도미 요리. 생선을 구운 뒤 함께 들어있는 허브버터를 녹여내서 생선에 끼얹으면 끝.  그리고 야채를 오븐에 구워내 생선에 곁들여줬다.  그리고 J언니가 해준 된장국.  요거트에는 과일과 치아시드를 듬뿍 뿌려냈다.

틴틴은 미역국도 열심히 다락방으로 배달했다.  한상 챙겨올 때마다 농번기에 일을 하다가 새참을 받아먹는 듯한 기분.  단 잘 차려진 산후조리 새참이다.  아래 사진의 장조림도 내가 임신 중에 열심히 해서 얼려둔 장조림.  미역오이무침은 S언니가 해다준 반찬이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너무 고마운 언니들.. ㅠㅠ 감사해요..!

미역국만 먹기 지겨울 때는 오트밀에 간단히 먹는 날도 있었다.  나는 오트밀을 우유에 만들 때도 좋아하지만 가끔 물에 해서 누룽지처럼 구수하게 먹는 것도 좋아한다.  아래는 물에 끓여낸 오트밀에 각종 과일, 치즈 견과류, 현미과자, 바나나, 그리고 아몬드우유 한잔씩.  센스있는 틴틴은 우리의 커플 머그를 내어왔다.  차도 한잔씩 하자고.

아이를 낳고 집에 돌아와서 아직 기저귀도 잘 못 채워서 허둥대고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정신이 없는 나와 틴틴에게 한국의 M은 그렇게 말했다.  "언니, 지금이 제일 시간도 많고 잠 많이 잘 수 있을 때예요.  지금 잠 많이 자둬요!" 

뭐라고?  지금 이렇게 정신없는 때가 제일 시간이 많은 때라고?  나랑 틴틴은.. 이후의 삶은 도대체 어떨 것이길래 M은 그렇게 말하느냐..고 어이가 없어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 때의 우리는 가장 여유로웠다.  아니, 적어도 우리의 식사 만큼은 가장 여유로웠다.  적어도 늘 그럴싸한 밥상을 차려먹을만한 여유는 있었다.  아래와 같이 말이다. 

대단하게 시간이 걸리는 밥상도 아닌데, 지금은 저런 밥상은 생각하지도 못한다.  임신 중에 해둔 미역국에, 저수분 돼지고기 수육에, 임신 중에 해뒀던 각종 장아찌 반찬들.

이 무 피클, 마늘쫑 장아찌, 양배추/양파 장아찌.. 오이피클.. 이 녀석들이 우리의 한달을 살렸다.  그것들마저 없었으면 밥상이 정말 밋밋했을 것이다.  거기에 후루룩 만들어낸 견과류멸치볶음까지. 

수육을 하고 나면 고기를 몇등분 해서 서너번에 걸쳐서 먹을 수 있어서 좋다.  그렇게 수육은 우리의 최애 메뉴 중 하나였다.  냉동실에 가득 해둔 장조림도 정말 유용했고, 

S언니가 해다준 물김치도.. 음.. 정말 맛있었다!

늘 이렇게 거창하게 차려먹지는 않았다.  가끔은 그냥 마트에서 산 수프에 토스트만 곁들여 먹기도 했다.  병원에서 출산하자마자 자꾸 빵을 줘서 그때는 싫었지만, 영국의 식빵은.. 왠만하면 맛있다.  거기다가.. 양질의 버터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신선한 빵에 좋은 버터를 발라먹으면 나름대로 환상의 궁합!  설탕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St Dalfour 잼에 에쉬르 버터, 그리고 영국의 체다치즈와 함께 한 통밀빵.  우리가 평소에도 가끔 즐기던 간단한 주말 아침식사를 출산 후라고 안 가질 순 없다!

그렇게.. 남편과 함께 있던 한달이 조금 넘는 그 시간.. 우리는 적어도.. 밥은 잘 먹었다.  그리고 남편은.. 잠도 잘 잤다.  밤새 수유로 인해 깨어있는 시간 반, 자는 시간 반이었던 나와는 달리.. 남편은.. 토막잠이기는 했지만 이래저래 합하면 하루에 심할 때는 11시간을 자내는 일도 있었다.  아기가 잘 때 남편도 꼬박꼬박 함께 잔 셈이다.  낮잠을 자면 밤잠을 못잔다고 하던 틴틴은 낮잠을 자도 밤잠도 잘 자고, 밤에 자다가 깨어서도 또 이내 잠이 잘 드는.. 자신이 몰랐던 자신의 특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렇게 긴 잠을 자는 틴틴을 나는 늘 놀렸다.  뭐야, 신생아 돌보는 아빠가 잠을 뭘 그렇게 많이 자~~ ㅋ

그래도 그 덕에 틴틴은 나를 열심히 보살펴줬고, 적어도 아기 기저귀만큼은 늘 자신이 담당하고 갈아주었으며, 쓰레기 버리기와 청소 등 다른 집안일도 열심히 보살폈다.  그렇게 우리의 한달은.. 고달펐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시간들로 채워졌다.  뭘 너무 몰라서 허둥대기도 하고, 아기는 매일 병원 신세라 병원을 오가느라 정신이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웃음도 있고 (물론 울음도 많았다.  아기 뿐만 아니라 나의 울음도), 맛있는 밥도 있었고 (아니, 많았고 ㅠ), 여유(?!  특히, 지금과 비교하면!!)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산후조리 식단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한국 가족들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의 거창한 식사 사진을 찍어서 한국 가족들에게 보이니, 이빨 다칠 위험이 있으니 멸치반찬도, 아몬드 등 견과류도 먹지말라고 하고, 매운 것도 먹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별 상관없이 다 먹었다..  그리고.. 결국 한달 뒤.. 어금니가 부러졌다..!!!!  물론 지금은 그 어금니로 인해 치과를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사실 그 치아는 치료를 미루고 있던 치아였다. 즉, 터질 일이 터진 것일 뿐!)

그렇게.. 틴틴과 함께 한 한달, 그 중 열흘을 나는 항생제를 복용하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잘 회복한 한달이었다.  틴틴이 휴직을 끝내고 회사로 복귀하기 3-4일전쯤.. 첫 산책을 시도했고, 약 45분에 걸쳐 빠른 걸음으로 웨이트로즈 마트에 가서 먹고 싶던 음식을 사오는 데에 성공했다.  빠른 걸음으로, 게다가 장을 본 짐까지 짊어지고 왔지만 몸에는 큰 부담이 없었고 오히려 기분이 너무 상쾌하고 좋았던 것..!   그러나.. 아기가 몸집이 두배 이상 불어난 지금은.. 오히려 그 때보다 몸이 더 안 좋은 상태.. 흐흐.. 이래서 애를 낳는 것보다, 신생아를 돌보는 것보다.. 아기가 좀 크고 나면 더 힘들고 몸도 더 상한다고 육아선배들이 그리도 경고했나보다. 

어쨌거나.. 그렇게 우리의 한달은 지나갔고, 다시 돌이켜봐도.. 그 시간은.. 꿈만 같다.  우리가 보낸 시간이지만 실제 같지 않은 시간들.. 그리고 지금보다 서툴렀지만 여유로웠던 시간들.  처음으로 틴틴과 그리 긴 시간을 함께 했던 시간들이었다. 

다음에는 셀프산후조리 중에 몸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적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