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육아일기 2017-20

전업육아맘의 소중한 주말 자유시간

옥포동 몽실언니 2018. 9. 9. 22:38

몇 주전부터 최대한 남편이 나에게 주말 자유시간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당연히 이전부터도 늘 이야기해던 제도 (?!) 이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는데, 이제는 본인도 주말마다 롱런 (적어도 한시간이 소요되는 10킬로 이상 거리의 장거리 달리기)을 하고 있으니 내게 자유시간을 내어주지 않으면 본인 마음도 불편하리라. ㅋ

주말에 단 하루, 겨우 몇시간이기는 하지만 남편에게만 아이를 두고 밖으로 나오는 것이 나도 맘이 그저 편하지만은 않다.  남편도 고단하니 주말에 쉬고 싶을 것인데다가, 주말이 아이에게는 온전히 엄마 아빠 모두와 함께 하는 즐거운 시간일텐데, 그 시간을 더 주지 못하는 것도 마음이 쓰인다.  그러나 아빠와 아이의 단둘만의 시간이 만들어 주는 둘 간의 돈독함도 있고,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한주간의 전업육아를 위한 정신에너지 장전!) 이 시간을 포기할 수도 없다. 

이런 주말 자유시간을 가지는 것은 오늘로 딱 두번째이다.  틴틴은 시간 걸리는 것 생각하지 말고 옥스퍼드로 다녀오라고 하지만, 나는 굳이 길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걸어서 20분이면 닿는 우리 동네 아빙던 시내로 왔다.  두번 모두. 

지난주에는 남편과 늘 자주가던 카페 R&R에서 디카프 커피를 한잔 하며 독서도 하고, 멍 때리며 사람 구경도 했다.  일을 할까 싶었지만, 그 소중한 시간에 도저히 일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블로그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인터넷이 너무 느려서 뭘 할 수가 없었다.  그 덕에 그날은 아이 낳고 처음으로 한글로 된 책을 3장 이상 한번에 읽을 수 있었던 첫 날이었다.  그 감격이란!

아이가 낮잠 자기 시작했다는 남편의 문자를 받고, 고마움에 대한 답례로 읽던 책 한꼭지를 찍어 틴틴에게 보내줬다.  함께 나누고 싶은 구절.. (제현주 지음, "내리막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어크로스 출판.  강추!)

아빙던 주말 자유시간 두번째인 오늘은 Throwing Buns 라는 작은 카페에 왔다.  R&R 도 그렇고 이곳 카페도 프랜차이즈가 아닌 이 지역 자체의 카페이다.  오래된 건물에 자리잡은 작고 아늑한 카페.  만삭일 때 틴틴과 한번 온 적이 있는 이곳은 인터넷이 조금 더 빨랐던 것 같아서 랩탑으로 뭐라도 해보려면 여기가 낫겠다 싶었다.  막상 와보니 인터넷은 빠르지만 카페가 워낙 작아서 커피 만드는 소음이 꽤나 시끄럽고, 주인장과 직원들이 단골손님들과 대부분 아는 사이라 서로 이름을 불러가며 대화를 많이 나누는 통에 원치않게 자꾸만 타인들의 대화를 듣게되고 그 이야기에 신경이 쓰인다는 단점.  그러나, 이는 곧 이들이 지역주민과 친밀하고, 직원들이 모두 기본적으로도 친절한 뜻이므로 그건 좋다. 

오늘은 희안하게 책이 읽히지 않았다.  아마 주변 대화소리가 시끄럽고, 커피 기계의 소음도 신경이 쓰여서 더 그런 것 같다.  게다가 지나치게 카운터에 가까운 자리에 앉는 바람에 (작은 카페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끊임없이 뭔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카운터에 자꾸만 시선이 이끌리니 책에 더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럼 뭐할까.. 생각했다.  

'일을 할까?'

아니, 그건 또 싫었다.  이 소중한 자유시간에 일이라니!

'인터넷으로 뭐라도 해볼까?'

생각하며, 내가 해야할 일들이 뭐가 있었나 고민해봤다.  

'올 10월 전기/가스요금을 변경해야 하니 (변경하지 않으면 요금이 급상승한다) 그걸 알아볼까?'

그러나 이 시간에까지 집안일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탈락. 

'그럼 뭘할까?  애 옷을 살까?'

가을 옷이 없어서 아이 옷을 사야하는데, 뭘 사야 할지, 어디서 사야할지 별로 아이디어도 없고, 고민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내 옷 쇼핑조차 귀찮아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아이 옷 구입에도 너무 게으르다. ㅠㅠ

결국.. 나는.. 내가 촬영한 우리 잭 동영상을 편집하고, 유투브에 올리고, 블로그를 썼다.  결국 "육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자유시간이다.  

그래도 내 일상 (=육아)에 대해 돌이켜보고, 글을 쓰고, 블로그에 올리는 것은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니 "육아"와 "내 즐거움"의 교집합이다. 

틴틴에게 메세지를 했다. 

"잭 자요?"

"자기 10분전? ㅋㅋㅜㅜ 분유는 약 110정도"

"오 수고했어요.  그리고 또 수고~"

"ㅋㅋㅋ그리고 왕똥"

"오! 굳!!!"

"ㅠㅠ"

"ㅋㅋ 아 위에 분유에 굳"

"ㅇㅋ ㅋㅋㅋㅋ"

"왕똥 쏘뤼!!"

"(졸려서 울고 있음에 틀림없는) 잭 좀 달래볼게"

"ㅇㅇ"

이렇게 우리의 톡은 종료.  그로부터 정확히 13분 후, 잭이 잠든 사진을 틴틴이 보내왔다.  능력자!!  나는 못하는 (분유 많이 먹이기와 젖물리기 없이 잠 재우기!!) 것을 틴틴은 해낸다!

이제 슬슬 일어나서 이번주 틴틴 회사 간식 (바나나)과 잭 이유식 재료 (뭘 먹일까..ㅠㅠ 나는 식단을 세우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막 해서 먹이고 있다 ㅠ)나 좀 사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오늘 혼자만의 시간은 한시간으로 족하고, 돌아가는 길에 있는 마트만 살짝 들러 집에 가서 틴틴에게 간만에 맛난 주말 저녁을 해줘야겠다. 

이렇게 나의 소중한 주말 자유시간은 1 주일 중 1 시간으로 끝~ (틴틴은 내가 마트에 들르는 시간, 집에서 시내까지 도보왕복 40분도 자유시간에 포함하겠지만 ㅋㅋ 서로 계산법이 이렇게 다르다~) 

얼른 집에 가서 잭이 깨기 전에 틴틴과의 오붓한 시간을 가져야겠다!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아이가 깰까 두렵기도 하지만..ㅠ (이게 바로 지난주에 일어났던 일! ㅠㅠ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아이가 깨버린.. 덩치와 달리 소리에 매우 예민한 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