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부터 4월 29일까지.. 엄마가 오셔서 함께 지낸 3주. 가장 힘들뻔 했던 시간을 엄마 덕에 즐겁고 뜻깊게 보낼 수 있었다. 육아에 있어서만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나의 엄마를 알게 되고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엄마가 계셔서 가장 좋았던 것들을 나열하자면,
첫째, 식사!
특히 매 끼니 밥을 식탁에 '앉아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은 늘 영양만점에 푸짐하기까지 했다. 엄마는 자꾸만 "넌 수유하는 산모니까 더 먹어야 해~" 하며 뭐든 더 더 먹어야한다고 하시는데.. 애 낳은지 4개월이 넘게 지나고, 이제는 아이가 예전처럼 젖을 많이 먹지도 않는데 엄마가 자꾸 나를 수유부라 많이 먹어야 한다고 하시니.. 민망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주는대로 늘 배불리 잘 먹었다. 귀한 발걸음 해 주신 엄마에게 이러쿵 저러쿵 먹니, 안 먹니, 밥이 많니, 적니.. 대수롭잖은 것들로 엄마와 실갱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우리집에 와서 한국에서보다 더 잘 드신다고 뱃살이 오히려 늘고 있다며 불평 아닌 불평을 하셨다. 우리 이렇게 잘 먹고 지내는 거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며 사진을 찍으라 성화를 하신 덕에 그래도 우리가 먹은 밥상 사진이 몇장 남았다.
J가 가져다준 낙지도 먹고, 엄마가 해준 감자볶음에, 황태조림에.. 언니가 보내준 한살림 카레에.. 엄마가 삶아내신 소면까지.. 여러 끼니에 나눠먹을 메뉴들이 한 상에 올라오는 호사를 누렸다.
밥을 먹고 나면 틴틴과 엄마는 와인을 한 잔 하기도 하고, 맥주를 한잔 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날의 회포를 함께 풀었다.
냉동실에 있던 소고기도 구워먹고, 미역국도 푸짐히 끓여주셨다.
한국 코스트코에서 사오신 왕꼬막 소면무침은 전날 남은 소면을 이용해서 내가 쓱쓱~ 만들었다. 처음 해 본 것이었는데, 맛있었다!!!
엄마 가시기 전날은 밥 하지 마시라고 내가 간단히 빵과 오트밀을 준비했다. 별 것 없는 상에, 잼만 종류별로 내어 왔을 뿐인데도 엄마는 여러 종류의 잼이 있는 것이 귀엽고 멋스럽다고 좋아하셨다.
둘째, 수유!
밥만 잘 먹었느냐. 수유할 때도 너무 편했다. 잭이 배고파하면 엄마는 어느새 수유를 위한 세팅을 하고 계셨다. 수유를 시작하면 내가 춥지 않도록 나에게도 담요를 덮어주셨다. 샤워도 내가 원할 때 할 수 있고, 화장실도 필요할 때마다 바로바로 갈 수 있었다. 피곤할 때는 자리에 앉거나 누워서 잠시 쉴 수도 있었다. 이게 뭔 대수냐 하겠지만.. 매일 혼자서 애를 보다 보면 이 너무 기본적인 것들이 충족되지 못해서 힘들 때가 많다. 용변도 참아야 하고, 샤워도 미루게 되고.. 아이가 젖을 물고 있으면 아무리 추워도 "꼼짝마" 자세로 버티게 되는.. 그게 '엄마'로서의 생활이었다.
셋째, 아침 꿀잠!
새벽에 아이가 깨서 울면 엄마가 자꾸만 아이를 봐준다고 성화를 하셨지만, 처음엔 몇번 거절을 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엄마방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틴틴은 그 시간부터 침실에서 좀 더 잠을 잘 수 있었지만 노모에게 새벽부터 아이를 넘긴 나는 차마 침실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나의 엄마' 옆에 있고 싶기도 했고, 수유를 해야 하기도 했고, 틴틴이라도 잠을 푹 자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엄마가 와 계신데도 여전히 잠이 부족했고 늘 피곤한 느낌이라 나중에는 속상함마저 들었다. 틴틴만 잘 자는 것 같아서 괜히 질투도 났다. 그래서 엄마 가시기 전 마지막 2-3일은 나도 염치불구하고 엄마가 방에 들어가서 좀 더 자라고 하면 나도 방으로 들어가 한시간, 한시간 반 정도 더 잔 거 같다. 그 잠이 얼마나 꿀잠이던지!!
이렇게 좋았지만 힘들었던 점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힘든 점들은 엄마와 함께여서 좋았던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꼽자면,
첫째, 끊임없이 생기는 일거리들!
엄마와 함께 한 3주간.. 힘들었던 점을 꼽자면.. 어른 셋이 육아를 하는데도 나는 계속 피곤하더라는 거다. 물론 엄마 안 계시던 때보다는 덜 피곤했다. 아이를 덜 들고, 덜 돌보기 때문에. 그러나 엄마가 머무는 3주간, 뭐라도 더 해주고 가고 싶은 엄마는 끊임없이 일을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 나는 그 일을 함께 하고, 혹은 뒤치닥거리를 하느라 나도 덩달아 바빠졌다. 엄마는 우리가 처박아두었던 온갖 식재료를 다 찾아내서 뭐라도 만들어주고 가려고 하셨고, 그런 엄마의 수고를 덜기 위해 설거지는 당연히 내 몫이 되었다. 물론 엄마가 하실 수도 있지만.. 엄마에게 설거지까지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설거지를 싫어하시기도 하고. ㅋ
둘째, 혼자만의 시간이 없다!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의 즐거움은 컸지만, 그래도 나 혼자 조용히 생각하고 휴식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조금 힘들었다. 오랫만에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니 엄마와 늘 함께 있고 싶기도 했고, 엄마랑 함께 있다 보면 이야기가 그치질 않았다. 나는 특히나 혼자 있는 시간이 많던 사람인데다가, 혼자 조용히 사는 삶을 너무 오래 살아왔던 터라 더 그랬다. 내 하루를 돌아보고 정리할 시간 없이 시간이 휙휙 가버리니 정신이 없더라. 그러다 보니 나의 즐거움의 원천, 블로그를 할 시간도 없었다. 혼자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없으니 무슨 글을 쓰고픈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리고..그 시간 보다는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했다.
* * *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을 먹으며.. 그리고 삼시 세끼에 간식까지 챙겨먹으며.. 나도 틴틴도 참 호강했다. 밥을 그렇게나 많이 먹고, 간식도 그리 자주 먹는데도, 틴틴은 오히려 살도 빠지고 건강해지는 느낌이라 했다. 아마 점심 시간에 운동을 자주 해서이기도 하고, 골고루 여러 음식을 먹으니 영양에 균형이 맞으며 더 그랬던 거 같다. 나는 살이 조금 찌긴 했지만 엄마가 와서 그렇게 많이 잘 먹은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살이 찌지는 않았다. (이미 살이 많이 쪄 있어서 더 그랬는지도.. ㅋ) 오히려 쓸데없는 군것질이 줄고 건강한 음식들을 먹으니 생활도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엄마가 우리 잭과 소통하는 방법, 나의 남편 틴틴에게 이야기하는 내용, 엄마가 해주는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 엄마의 육아이야기, 형제들 이야기.. 속상했던 것, 후회되는 것, 화 나는 것, 좋았던 것.. 여러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을 가느라 집을 떠나서 살다 보니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 기회가 없었다. 전보다 엄마를 더 잘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었다. 더 감사하게 되었고, 더 아려지게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이틀. 엄마는 잭을 많이 보고싶어 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혼자서 고생하고 있을 나를 더 걱정하시게 되었다. 좋은 모습만 사진으로 보시고, 힘든 이야기는 말로만 들으시다가 막상 와서 잭을 돌보며 잭이 의외로 '까다로운 아이'라는 것을 몸소 겪으시고, 내가 어떻게 이 생활을 지내고 있는지 직접 보셔서 더 그러신 것 같다.
"이게 다 '한때'란다. 이 단계만 지나면 또 한층 달라질거야."
엄마가 여러번 말씀하셨다. 그래. 엄마 말씀이 맞을 거라 생각한다. 엄마에게 SOS를 쳤던 시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으니까. 그럭저럭 할 만 했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계신 3주간 우리 잭은 또 성큼 자랐다. 이번 주말이면 5개월을 꽉 채우고 다음주면 6개월에 접어든다. 또 다른 단계가 시작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여전히 힘들면 어쩌나 걱정은 되지만.. 그래도 또 이 아이가 어떻게 성장할까 궁금하고 기대된다.
가을에 또 오겠다는 말씀을 남기고 가신 엄마. 그 때는 아버지께서도 꼭 함께 오실 수 있었으면 한다. 엄마 감사해요, 아버지두요!
p.s. 이 글을 쓰는 현재, 잭은 내 등에 업혀 쌔근쌔근 자고 있다. 잭 잘 때 꼭 같이 자라고 엄마가 당부에 당부를 하셨으나.. 내리면 애가 깰 것 같아서 아이를 내리지는 못하고.. 서 있는 김에 블로그를 끄적끄적.. ㅎㅎㅎ허나.. 무릎이 아프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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