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내 멋대로 만드는 베트남 쌀국수

옥포동 몽실언니 2017. 10. 24. 22:00

영국에서.. 아니 옥스포드와 아빙던에 살면서.. 나에게 한국에서 먹던 음식 중 가장 그리운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두번 생각할 것도 없이 베트남 쌀국수와 월남쌈이라 답을 할 것이다.  그래서 한국 가면 꼭 먹고 오려고 애 쓰는 음식 중 하나가 이 두 음식이기도 하다.  옥스포드에는 베트남 음식점이 없는데다가 (드디어 내일 하나가 개점하기는 한다!) 이제는 옥스포드도 아닌, 옥스포드의 5분의 1밖에 안 되는 규모의 작은 도시 아빙던에 살다 보니.. 여기는 베트남 음식점이 있을리 더더욱 만무하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했던가!  식욕은 요리의 어머니리라!  요즘 베트남 쌀국수가 너무너무 먹고 싶던 나머지.. 나는 마치 임신 초기에 생애 첫 손칼국수와 만두를 빚어먹던 열정으로 오늘은 쌀국수를 끓여내고야 말았다.  먹고싶은데 팔지 않는다면.. 결국 해먹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사실 베트남 쌀국수는 육수를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도전해볼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몇주전 만났던 요리의 대가인 J군의 어머니 Y님께서 베트남 쌀국수는 소고기 양지에 향신 야채를 듬뿍 넣고 푹 고아서 만든 육수에 끓여내면 맛있게 해서 먹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장조림용으로 양지를 듬뿍 사서, 간장소스에 담그기 전에 이 고기들을 이용해서 소고기 육수를 만들어냈다.  육수의 3분의 1은 장조림을 위한 베이스로 쓰고, 3분의 1은 오늘 저녁 쌀국수 국물이 되었고, 나머지 3분의 1은 뭔가 다른 국물 요리를 해볼까 해서 남겨두었다.  그 육수를 활용한 나만의 베트남 쌀국수~ 

나만의 베트남식 쌀국수 비법은?!  내 멋대로 했기 때문에 딱히 뭐라 레서피를 쓸 수가 없다. ㅠㅠ 인터넷을 검색하니 각종 레서피가 있었지만 요즘은 한국에서 베트남 쌀국수용 스톡이나 소스를 따로 파는지 그런 소스들을 활용한 레서피가 많아서 크게 도움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몇가지 찾은 레서피를 보고 내린 중요 포인트는:

  • 소고기 육수를 내기 전에 소고기의 핏물을 반드시 뺄 것, 

  • 국물을 끓일 때는 월계수 잎과 고추, 고수 씨앗 등을 넣을 것,

  • 간을 할 때는 피쉬소스, 호이신 소스 등을 활용하고, 

  • 마지막으로 고수 잎을 넣고, 완성된 쌀국수에는 숙주 듬뿍과 레몬 한조각을 함께 내어놓기.

그러나 나는 아시안 마켓조차 없는 아빙던에서 당장 구할 수 있는 재료만 대충 구해서 만들어야 했기에 레서피는 위의 기본 포인트를 기반으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내 멋대로 만들어보았다. 

먼저, 국물은 다행히 밤새 핏물을 쫙 뺀 소고기 양지를 파와 양파, 통호추, 월계수 잎을 넣고 3시간을 푹 끓여주었다.  그리고 임신 34주, 조산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집 앞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최대한 구해보았다.  그것은 바로 아래와 같이 호이신 소스 (그 유명한 이금기 ㅋㅋ 호이신소스), 갈아둔 고수 씨앗 (Ground coriander)인데, 사실 고수씨 (coriander seed) 도 있었지만 이미 국물을 우려낼대로 우려낸터라 갈아진 고수씨앗가루를 넣고 얼른 끓여낼 생각으로 고수씨앗 간 것을 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린 고수잎.  신선한 고수잎은 이런.. 영국 마트에는.. 없다 ㅠ 동양슈퍼나 farmers market 정도 되는 큰 마켓에나 가야 살 수 있기 때문에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일단 말린 고수잎이라도 사왔다. 

아래는 국물낼 때 썼던 월계수잎 (bay leaves)과 지난주 집들이 냉파스타 소스용으로 구입했던 레몬즙으로 레몬 슬라이스 대체.

이 재료들을 활용하여

  • 양파, 파, 통후추, 월계수잎을 넣고 푹 끓여낸 양지 국물에 
  • 고수씨앗 가루를 넣고 5분 가량 끓여주었다 (얼른 먹고 싶은 관계로.. )
  • 피쉬소스 대신 멸치액젓을 한스푼 넣고, 
  • 말린 고수잎을 적당량 넣고 레몬즙도 두스푼 넣고,
  • 호이신 소스는 2티스푼을 넣어봤다.  
  • 그리고 작은 태국고추도 2개 썰어서 넣고, 파 송송, 집에 있던 버섯 송송
  • 그리고 집에 있던 불린 당면과 소면 투하!

이 레서피가 나만의 베트남 쌀국수인 이유는.. ㅋ 사실 집에 쌀국수도 없고, 장을 보러 갔을 때도 쌀국수를 찾을 수가 없어서 냉장고에 있던 불린 당면과 일반 소면을 넣어 끓였기 때문!  이건..뭐.. 쌀국수 빠진 쌀국수라고 해야 하나.. ㅋ 게다가 숙주도.. 사오려다 말았는데 (오늘 당장 이렇게 끓여먹을지 모르고ㅋ) 숙주도 없고 쌀국수도 없는 쌀국수였지만 맛과 향만큼은 쌀국수집 쌀국수 저리가라 하는 맛이었다.  아니.. 사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집에서 직접 이런 맛을 낼 수 있다니! 하는 정도?

나의 게으른 성격 상, 쌀국수를 먹기 위해 일부러 고기를 사서 핏물을 미리 빼고 고기육수를 몇시간 우려내고 하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지만, 오늘처럼 대량 장조림을 하게 될 때 어차피 소고기 육수를 내게 되는 날이 있다면 오늘보다는 좀 더 재료를 갖춰서 제대로 된 베트남 쌀국수를 해 보리라 다짐! 

그나저나.. 오늘 쌀국수 하느라 급 구입한 호이신 소스와 코리엔더 가루들은 앞으로 어디다 쓰나... 그것도 궁리를 해봐야겠다. 

어쨌든 없는 재료로 최대한 맛을 내어본 나만의 베트남 쌀국수, 그럭저럭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