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영국 이웃으로부터 선물받은 할로윈 호박케잌

옥포동 몽실언니 2017. 10. 26. 21:01

지난 주말, 누군가가 현관을 '똑똑'하고 노크를 해서 나가보니 앞집의 에밀이 어색하게 서있다.  "Hello!" 하니, 갑자기 손에 들고 있는 케잌을 내민다.  '이게 뭐야?!' 했더니, 나에게 혹시 호박 좋아하느냐고, 1년 중 할로윈 시기인 요즘이 호박케잌을 먹는 때라고, 부인이 호박케잌을 구웠다며 선물로 가져온 게 아닌가! 

"와! 정말 이걸 직접 구웠다고?  나 호박 너무 좋아해!  케잌 너무 맛있어 보인다!  네 부인 미국인이야?" 

고맙기도 하고, 뭐라도 좀 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괜히 부인이 미국인이라서 이렇게 할로윈을 챙기는 것인지 물어봤다.

"응, 미국인이야." 

"아, 그랬구나~ 그래서 너희 집에서 할로윈을 많이 축하하는 모양이구나?"

"응, 벌써 2주째 할로윈 장식 해 놓고 계속 할로윈을 기념하고 있지!"

"나 호박 너무너무 좋아하는데, 케잌 너무 맛있어 보인다.  부인에게 너무 고맙다고 꼭 좀 전해줘!" 

라고 인사를 마치고, 부엌으로 케잌을 들고 들어왔다. 

완전 감동!  영국 살면서 이렇게 직접 구운 케잌을 선물로 받아보기는 또 처음! 

호박케잌은 살면서 처음 맛보는 정도가 아니라, 접하는 것 자체도 처음이었다.  이쁜 은박 케잌 받침에 비닐로 둥둥 싸고, 위에는 이쁜 리본까지!  

이 케잌이 더더욱 감동이었던 것은 아래 사진과 같이 Thank you 카드와 함께 왔기 때문!

이제껏 살면서 이렇게 handwriting이 이쁜 사람은 처음 봤다.  외국인인 나와 Tintin이 읽기에 전혀 문제가 없는 깔끔하면서도 이쁜 손글씨!  너무 감동하여 근접샷도 한장!

앞집 에밀은 남편과 현재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동료이다.  그의 부인 제니퍼도 같은 회사 내 다른 부서에서 일을 하는 사내 커플.  친한 동료는 아니고, 회사에서 몇번 보고 미팅도 함께 참석한 적이 있어서 서로 인사를 나누는 정도의 사이인데, 우리가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온 날 이삿짐을 정리하며 왔다 갔다 하는데 앞집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오길래, 뭔가~ 했더니 남편과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닌가! 

그 뒤로도 몇번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주고 받곤 했는데, 2주전 집 앞 마당에 무성하게 자란 나무를 좀 잘라주느라고 대문 앞에서 일을 하는데, 에밀이 다가와서 사다리도 빌려주고, 자기 집 잔디깎이 기계도 빌려주며 친절을 베풀어줬다.  

그에 너무 고마웠던 나는 지난주 집들이 음식을 준비하면서 돼지고기 수육 샐러드감자샐러드 만든 것을 작은 통에 각각 담아서 앞집 에밀네와 옆집 엔드류 (이 집은 우리 소포를 받아 준 적이 있어서 고마운 마음에) 집에 파티 음식 준비하느라 음식을 많이 했으니 맛 한번 보라고 조금씩 갖다줬었다.

남편은.. 외국에서 이렇게 이웃끼리 음식을 주고 받는 건 별로 본 적이 없다며, 혹시 vegetarian들이면 어쩌냐고.. 음식을 이렇게 줘도 되냐고..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는데 이웃들이 음식을 받겠냐고.. 주저주저 했다.  나는.. 뭐 어떠냐고.. 우리는 어차피 외국인이고.. 그냥 이 참에 이렇게 인사 나누는 거지.. 하며, 은박 도시락 통에 내 원피스 위에 허리라인에 두르려고 사뒀던 리본을 묶어 앞집과 옆집에 나눠줬더랬다. 

아니나다를까!  앞집 에밀네는 "일종의 베지테리안" 이라고 하는데, 헉.. 이거 돼지고기인데 어쩌지... 혹시 너희 아이들이라도 먹을 수 있으려나.. 하면서 음식을 주고 돌아왔는데, 나는 그 다음날도, 그 다음다음날도.. 베지테리안이라는 사람들에게 껍찔 째 찐 돼지고기를 주고 왔으니.. 이를 어쩌냐고.. 남편을 붙들고 몇번을 후회를 했다.  음식을 건네기 전에는 주저하던 남편이 이제는 "kind of vegetarian"이라고 했지, 완전 베지테리안이라고는 안 했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먹을 만 했으면 먹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알아서 처리했겠지.. 신경쓰지말라고 나를 다독여줬다. 

그리고 나서 일요일 오후, 이렇게 앞집 에밀이 부인이 만든 케잌을 들고 나타났으니!  우리는 더더욱 감동한 것!!!

호박을 넣어 만든 빵 sheet에 크림치즈를 넣어 돌돌 말아 만든 호박롤케잌!

에밀의 부인 Jen이 쓴 카드에는, 음식 준 것 고맙고, 생각해줘서 고맙다며, 새로 이사온 집에 잘 정착하고 있기를 바라며, 호박케잌 시즌이라 구운 것인데 좋아하길 바란다는 메세지가 적혀있었다. 

평소 단 음식을 자제해오던 우리는 이날 만큼은 과감히 당장 티타임을 가졌다. 

남편은 로얄블랜드티에, 나는 디카프 홍차에.. 부드럽게 우유를 타서 케잌과 함께 냠냠!

Tintin은 자기가 10년 넘게 영국 살면서 이렇게 이웃과 이야기도 나누고 친교를 해보기는 또 처음이라며, 이 모든 게 내 덕분이라고 고맙다고 한다.  

나도 사실 남편이 없었으면 용기를 내지 못했을텐데, 남편 덕에 남편 직장 동료 가족이니 부담없이 말도 걸고, 이렇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을.. 내게 고맙다고 해주니 그렇게 생각해주는 남편이 오히려 고맙다. 

그리고.. 저 큰 케잌은 3일만에 우리집에서 동이 났다.

이제껏 그럭저럭 식이조절에 힘써오던 나는..  저 케잌을 시작으로 아이스크림이며, 팝콘이며.. 군것질에 대한 자제력을 잃고 임신 34주에 급격한 체중증가를 겪고 있다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