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그리고 지지난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나 모르겠다. 지난 2주간 몸이 좋지 않아서 낮시간 내내 병든 닭처럼 쳐져있다가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되어서야 일어나 저녁을 차리는 게 내 활동의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사실 저녁 차리기도 너무 귀찮고 싫었지만 하루종일 일 하고 돌아온 남편을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ㅠ). 임신 초기 몸이 너무 힘들었던 며칠을 빼고는 늘 남편이 출근할 때, 또 퇴근할 때는 문 앞에서 맞이를 했었는데, 지난 몇주간은 아예 침대에서 나오지 못한채 남편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네고, 남편이 퇴근했을 때도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남편을 맞이했다. 어제는 그러던 중 처음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활동을 한 날이었는데, 오늘은 다시 침대에서 남편에게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넸다.
2주간의 나빴던 컨디션. 좀 회복되긴 했지만 아직도 미열은 계속되고, 밤바다 식은땀도 많이 나고.. 기침이 날듯말듯한 아슬아슬한 커디션이라.. 이번주 주말에는 캠브릿지 친구네 아기 백일을 축하하러 가고, 다음주 월요일에는 학교 사람들이 하는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다음주 주말에는 왓포드에 사는 Y네 부부가 우리집에 놀러올 예정이었지만.. 일단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오늘 저녁에는 남편 회사 행사가, 내일 오전에는 병원에서 실시하는 3시간이 넘는 산전교실 참여가 예정되어 있고, 다음주에는 조산사도 만나야 하고, 초음파 찍으러 병원도 가야 하고, health visitor와도 만나야 하고, 그 주말에는 출산할 병원을 미리 가보기로 한터라 이 일정만으로도 내 체력에는 벅차다는 현실 인지. 원래도 몸이 약해서 아프면 며칠을 가는데 지금 이 상황에 괜히 무리해서 몸이 더 나빠지면.. 출산 준비도 제대로 못 한채 누워있기만 하다가 출산하게 될까봐 겁이 나서 아쉽지만 모든 약속을 취소했다.
어제 아침에는 기운을 좀 회복하는 듯하여 오전에 gym에 가서 나혼자 운동을 했다. 며칠을 아프다가 회복세에 접어들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운동. 내 삶의 우선순위,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아침에 가볍게 운동을 하니 하루가 활기차지는 것 같다. 돌아와서 점심을 가득 먹고 낮잠도 한숨 자니 좀 살 것 같았지만.. 밤이 되니 다시금 기침이 살랑살랑 올라온다.
어제, 오늘은 처음으로 허리 아랫쪽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후기가 되면 생리통같은 통증이 느껴진다고 하더니.. 나에게도 그 날이 왔나보다. 지난 며칠간은 잠을 자던 중에 꼬리뼈에 날카롭게 찌르는 듯한 통증으로 한밤중에 잠에서 깨기도 했다. 밤마다 속이 답답해서 자다 깨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게 되는데, 처음에는 저녁을 늦게 먹어서 그런가,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이제 보니 위가 압박을 받으며 위산으로 올라올 듯한 느낌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고 답답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자면서 물을 이렇게 마셔대니 어쩔 수 없이 화장실도 자주 가게 되고, 자면서 땀은 또 어찌나 그리 흘리는지.. 자다가 옷이 젖어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자는 게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즉, 제대로 된 통잠을 자는 게 거의 불가능한 생활. 캠브릿지의 J도, 찰그로브의 D언니도, 출산 직전까지 똑바른 자세로 누워 8시간 통잠을 잤다고 했는데,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그런 잠을 잘 수 있었는지.. 대단하고 부럽다.
몸이 좋지 않으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혼자도 이렇게 힘든데 과연 내가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하는 막막함. 그런 막막함이 들면.. 자연스레 위축되고 가라앉는다. 그래도.. 이건 지금 잠깐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것일 뿐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부정적 생각을 접고 몸을 회복하는데 집중하려고 한다.
임신 36주에 양수가 터져서 예정보다 일찍 출산을 한 친구가 주변에 둘이나 있다보니, 아직 출산예정일이 4주 반이 남았지만 나에게도 언제 무슨일이 어떻게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심적 불안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해야 할 일은 너무나도 많은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건.. 내가 강한 심적 중압감 속에 있을 때 늘 나타나는 증상! 매번 데드라인이 코앞에 올 때까지 일을 미루고 미루다가 막판이 되어서 몰아쳐 일을 하게 되는 벼락치기 기질은 바로 그런 심적 중압감을 잘 다루지 못해서 반복하게 되는 현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바로 그 기질이 출산을 앞두고도 똑같이 일어나다니! 이런!!!! 그래, 어디 사람이 쉽게 바뀌나..
구입한 출산준비물이라고는 Swindon에 가서 S를 만나 시내에서 몇가지 아기 의약품과 성인 기저귀, 신생아용 아기 기저귀 등 몇가지 물품밖에 되지 않는다. 주변에서 물려준 아기 옷들은 오늘 아침에야 처음으로 빨래를 하고 빨래걸이에 가지런히 걸어두었다. 플라스틱 박스에 차곡차곡 종류별로 정리해두긴 했으나 어떤 물건을 얼마나 얻었는지도 몰라서 뭘 얼마나 더 사야하고, 뭘 살 필요가 없는지 챙겨보지도 못했다. 즉..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거나 다름이 없다. 뭔가.. 두렵고.. 겁이 난다. 출산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아이를 키우는 일을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심적 두려움이 더 큰 것 같다. 유일하게 해 온 준비라고는 미역국을 두 솥 정도 끓여서 냉동시켜 둔 일과, 장조림을 해서 얼려둔 것, 등 몇가지 음식을 준비해둔 것. 요리는 늘상 하던 일이니, 하던대로 단순하게 재료를 손질하고 음식을 만들어서 봉투에 잘 담아 냉동실에 넣으면 그만. 일상적 활동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보니 그나마 가장 심적 부담 없이, 아니, 오히려 불안할 때마다 음식을 하는 것으로 그 불안을 회피해 온 것 같다. 다음주면 마지막 초음파 검사를 통해 태아상태를 확인하고 (36주의 마지막 초음파지만, 임신 기간 내내 중에 겨우 3번째 초음파이다), 처음으로 health visitor도 만나게 된다. health visitor를 만나면 이런 심적 불안감을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물어봐야겠다.
이제는 더이상 미루지 말고 병원에 갈 때 챙겨갈 물품 리스트도 찾아보고, 출산 직후 필요한 물품 목록도 차분히 하나씩 봐야하는데.. 마음이 불안하고 겁이 나서 이런 일이 '시작'해지지가 않는다. ㅠㅠㅠㅠㅠㅠ 무섭다....
오늘 처음으로 하게 된 아기빨래는.. 그나마 어제 저녁 남편이 아기 옷을 모두 갖고 내려와서 빨래통에 넣어줌으로써 가능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아기 빨래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아기 물품은 2층 아기방에 쌓여있는데, 배가 지금처럼 부르기 전에도 계단에서 한두번 미끄러진 터라 아기 물건을 갖고 세탁기가 있는 아랫층으로 내려오기가 겁이 나고 힘이 들어서.. 자꾸만 혼자 있을 때는 미루게 된다. 게다가.. 아직 집안일도 정리가 덜 됐다는 것도..핑계 아닌 핑계.. 영국집은 평면이 좁으면서 위로 위로 길쭉하게 올라가는 형태라서 매번 집안에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는 게 불편하고 힘들다.
다른 것보다 아기 손싸개, 양말들은 너무 작아서 널기가 힘들었다. 이것들을 널면서.. 결혼하고 처음으로.."나도 배울만큼 배웠는데 왜 나만 집에서 이렇게 힘든 일 하고 있어야 되지? 남편은 밖에서 인정받고 월급도 받는 직장생활 하는데 ㅠ"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에 깜짝 놀랐다. 이제 공부를 마친지 6개월이 넘어가니.. 이렇게 살림하는 생활에도 벌써 지겨워진 것인지..아기 빨래와 출산부담감은 이런 생각이 다 들도록 할만큼 힘든 일이었던 것인지.. 아기 빨래 앞에서 그런 생각이 다 들다니.. 앞으로 양육의 삶이 현실로 닥쳐오면 어떻게 살아내려고 빨래 앞에서 이토록 약해지는가!
오늘 오전에는 드디어 밀린 공과금 지불을 정리하였고 (공과금 회사들은.. 어찌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고객편의와 상관없이 일을 처리하는지 ㅠ), 이제는 냉장고 AS를 예약해야 하고 (어떻게 산지 두달도 안 된 냉장고를 지난 달에 한번, 이번달에 또 한번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지!!! 독일제품에 대 실망!!), 아직 식탁 AS도 예약이 되지 않았다 (유일한 우리집 럭셔리 가구 식탁은.. 산지 두달이 넘도록 계속해서 문제가 있어서 서비스만 이번이 세번째! ㅠㅠ 새 가구에 대한 신뢰가 확 떨어지는 경험!). 아기 낳기 전에 이런 일들을 최대한 다 정리해둬야 한다... 는 것이 출산 준비를 미루게 되는 핑계 아닌 핑계.
겁은 나지만.. 너무 겁만 먹지 말고.. 하나씩 하나씩 처리하자. 오늘 오전에는 가스/전기세를 잘 처리했으니.. 오후에는 냉장고 AS 신청. 그리고, 남은 집안일들 좀 하고, 남편과의 저녁 외출 준비하기. 잘 하자! 힘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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