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오븐에서 참숯을 꺼낸 날

옥포동 몽실언니 2017. 4. 14. 08:30

누가 레서피대로만 하면 맛난 요리가 나온다고 하였는가!  레서피대로만 해도 절대 원하는대로의 맛이 곧이곧대로 나지 않는 것이 요리이다.  침대가 과학이라고?  요리야말로 과학이다!!  난 과학엔 어릴 때부터 그리 흥미가 없더니 요리에도 참.. 취약하다.  레서피라는 것을 볼 때면 여러 재료가 나열된 리스트만 봐도 마음에 거부감이 일어나고 복잡한 과정 설명은 더더욱 복잡해서 내 본능이 그 과정을 읽기를 거부할 때가 많다.  그런 나도 요리에 도전해보기로 하였으니!!  그것은 단지 내가 결혼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요, 나도 좀 사람답게 여러가지 맛난 음식 해 먹는 재미도 누려보며 그렇게 살아보자는 마음에 시작된 일이다. 

결혼을 해서 가장 좋은 일이 있다면 독립된 부엌을 쓸 수 있다는 것.. 너무너무너무.. 셀 수 없을 만큼 긴 세월동안 남들과 부엌을 공유하며 살았던 탓에, 자기만의 부엌만 있다면 그 부엌이 좁다 해도 그 부엌에서 살 수도 있을 만큼 행복하겠노라고 생각해왔던 나였다.  우리가 얻은 집은.. 정말.. 내가 그렇게 말을 해서 그런가.. 부엌이 좁다.  아주 아주 좁다.  영국 왠만한 집이라면 다 달려있을 식기세척기가 설치될 공간도 없을만큼 좁으며, 일반 가정용 냉장고를 세울만한 공간도 없어서 싱크대 근처 선반 아래에 호텔 냉장고 크기의 냉장고만 들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엌을 남과 공동으로 쓰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내 우유를 누가 훔쳐썼을까봐, 그래서 무겁게 우유를 또 사러 나가야 할까봐 노심초사 하지 않아도 되는게 어딘가!!  오랜 학생 생활은 나를 아주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기뻐할 줄 알게 만들어주었다. 

결혼을 앞두고 자칭 니더작센의 장금이이자, 가히 과학요리의 대가라 할 수 있는 T가 우리집을 방문하였다.  그로부터 요리를 배운다는 명목하에 우리는 매일, 그것도 매 끼니 새로운 요리를 해 먹으며 결혼 직전 남들이 다이어트를 할 때 나는 하루를 멀다하고 크림소스 요리나 케잌을 먹으며 몸을 되려 키워가고 있었다.  그렇게 배운 한두가지의 요리를 결혼 후 나는 하나씩 실습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첫번째 실습대상은 다름아닌 "당근케잌!"

영국인들은 당근케잌을 아주 좋아한다.  뭔가 건강한 느낌도 주면서, 영국에서 당근은 아주 흔하고 맛있는 야채이기도 하면서, 만드는 방법도 아주 쉽기 때문이다.  선물용으로도 좋고, 만들어서 집에 두고 먹기에도 너무 좋다.  원래도 당근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또 단거라면 손을 내젓는 Titin을 생각해도 당근케잌이라면 우리가 합의할 만한 선에 있는 달콤한 디저트이다.  그래서 내 첫 도전은 나 혼자 당근케잌 굽기. 

레서피는 니더작센의 장금이가 활용한 어느 블로거의 레서피.  나는 그와 함께 했던 요리 과정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하나씩 과정을 밟아가기 시작했다.  정말.. 아는 이들은 알겠지만 당근케잌은 케잌이란 케잌 중에 제일 쉬운 정말 난이도 '하' 중에 '하'에 속할 케잌이다.  그 결과는?  처참한 대실패!!!  케잌 대신 무슨 숯덩이가 오븐에서 나왔다.  

이런 식이었다. 

가까이서 보면 더 참담하다. 

나의 요리 스승, 니더작센의 과학요리의 대가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그러자 그녀에게 답이 왔다. "언니, 완전 숯이네요!  군고구마처럼 껍질을 까서 먹어요!" ㅋㅋ 

뭔가 건강에 더 좋게 해보려고, 그리고 바삭한 겉면의 맛을 노려서 슬라이스된 아몬드도 듬뿍 뿌리고, 반죽 안에 고소한 호두도 잔뜩 넣었는데.. 버리기엔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말대로 껍질을 깠다.  그랬더니.. 작은 로프 4개를 구웠는데, 아래와 같은 결과물만 남았다.  맥북에어 13인치 옆에 저만큼의 케잌만 남았으니.. 얼만큼이 떨어져 나갔는지는.. 상상에 맡긴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이 오래된 집에 설치된 지나치게 클래식한 오븐 때문이라고 하고 싶다.  도대체 어떻게 작동을 하는건지 알아내는데만 삽십분은 족히 걸렸다.  

이런 오븐에는 아래처럼.. 한국인들 눈에는 아주 낯설 '링' 모양의 전기열선이 깔려있다.  아주..구식이다.  영국에서도 아주아주 구식이다.  오래된 학교 기숙사에서나 볼 법한 녀석을 나의 첫 private accommodation에서 만날 줄이야!!

과학요리를 하는 장금이는 나에게 용기를 줬다.  언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잖아요! 괜찮아요!! 다음에 잘 할 거예요.  

그녀의 말이 맞았다.  다음에는 성공!!  실패의 요인은 Turbo Oven을 과소평가한 탓이었다.  오래된 기계에서 터보오븐이라 해봤자 얼마나 터보일까 했는데.. 터보였다.  그것도 대단한.. 그래서 같은 온도였지만 케잌이 다 타버렸던 것.  그래서 이번엔 Top oven, 일반 오븐을 이용했더니 멀쩡한 케잌이 구워졌다. 

가까이에서 봐도 먹음직!! 나는 일반 레서피보다 기름과 설탕을 심하게 줄여서.. 당근케잌의 비주얼이.. 좀 무미건조하다.  그래도 맛은 좋다! 

당근케잌굽기에 맛들린 몽실.  또 도전!  그리고 또 한번의 성공!! 야호!!! 또 성공!!!

자,  이번에는 아예 제대로 된 파운드 케잌 틀을 구입했다.  커다란 한덩이의 케잌을 구워내겠노라 하는 의지로!  그리고 이번에는 조심스레 호두도 넣어봤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뒤로 하고 호두도 넣고, 또 하나의 로프에는 너무 단맛이 약한 케잌이라 건포도도 살짜쿵 넣어봤다.  결과는?  둘 다 대성공!!!! 왼쪽은 오빠 누이네에, 오른쪽은 우리 결혼에 부케와 코사지를 만들어주고 삼각대도 빌려준 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선물! 

보너스, 건강한 당근케잌 레서피!

설탕과 기름을 확 줄인 당근케잌 레서피.  별 거 없다.  그냥 인터넷에 나와 있는 일반적 레서피에 우리는 설탕은 1/4로 줄이고, 기름은 절반으로 줄였다.  그리고 당근은 더 늘렸다.  한번 해봤는데 케잌같은 모양새로 나오고, 우리 입에는 충분히 달고 기름져서 우리는 만족.  케잌치고 너무하다 싶을 때는 두나 건포도를 넣어줘도 좋다.  

주의:  남들에게 선물하거나 맛보일 경우 "당근빵"이라는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함.

이후에도 장금이에게 전수받은 감자샐러드 실습에 도전했는데, 그 또한 실패였다.  크림파스타도 한번은 실패했다.  다시 재도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