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Waitrose에서 2만원 장보기

옥포동 몽실언니 2017. 3. 30. 01:50

오늘은 결혼하고 처음으로 동네 마트에서 처음으로 장을 본 날입니다.  새로 이사를 온 신혼집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마트가 Waitrose 인지라 저 혼자 장을 볼 때는 이 곳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좀 더 저렴하게 Tesco를 가려면 30분도 넘게 걸어가거나 그 얼마되지 않는 거리를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내리고 또 타고 내리고를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영국에서 가장 비싼 슈퍼마켓 체인인 웨이트로즈를 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장을 보러 간 진짜 이유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재활용 쓰레기 전용 쓰레기봉투를 살 수 있을까 하여 간 것인데, 정작 사고자 한 쓰레기 봉투는 판매하지 않아서 사지도 못하고 결국 다른 찬거리용 식재료만 사들고 돌아왔습니다.


현재 세들어 사는 곳에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는 냉장고가 아주 작은 냉장고라서 장을 자주 볼 수 밖에 없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보통 냉장고의 허리를 딱 잘라낸 절반 크기의 냉장고인데, 왜인지 실제로 음식이 들어가는 저장공간은 냉장고 절반의 크기보다 훨씬 작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삼일에 한번은 장을 봐야 그나마 둘이서 식생활이 가능해지는 것 같습니다.  언니는 제대로 된 냉장고를 하나 들이라고 하였지만 집이 너무 좁은터라 쓸만한 냉장고가 들어갈 공간이 없기에 우리는 일단 현재의 냉장고에 맞춰 이 집 계약기간 동안은 버텨보자고 다짐한 상황입니다. 


결국 원래 사려던 쓰레기봉투는 사지도 못하고 오늘 사게 된 음식들은 감자 2킬로, 애호박 500그램, 유기농당근 1킬로, 옥수수캔 큰 것 하나, 건포도 한봉지, 양파 2개, 냉동대구살 (475그램), 그리고 둥근 통밀빵롤 입니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메뉴는 마트로 가는 길에 급조한 것이기는 하지만, 맑은 대구탕, 감자샐러드, 호박전, 감자당근볶음 입니다.  이 정도 장보기면 이삼일은 이 정도 음식들로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결제를 해보니 약 14파운드. 요즘 환율 (1파운드 1400원)로 딱 2만원입니다!

사실 감자는 영국에서 유일하게 자급자족이 되는 음식으로 잘 알려져있는데, 실제로 그 맛 또한 뛰어난 편입니다.  감자가 맛이래봐야 감자 맛이지 않겠냐 하겠지만, 희안하게 감자가 포실포실하게 늘 고소하고 맛이 좋습니다.  


사실 웨이트로즈는 고급슈퍼 라인이라 다양한 유기농 식재료들이 유명한데, 저희가 산 제품들은 당근만 유기농입니다.  왠만하면 유기농이 먹고 싶은 게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겠지만 결국 비용 때문에 유기농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런데 당근은 1킬로에 유기농인데도 불구하고 1.5파운드, 즉 약 2천원 정도밖에 하지 않길래 이정도면 유기농도 괜찮겠다 싶어 당근만큼은 유기농으로 집어왔습니다. 


냉동대구는 어제 이미 냉동대구 한봉지를 사다가 대구탕을 끓여먹었는데 Tintin (땡땡)께서 오랫만의 대구탕에 흠뻑 빠져 국을 두 그릇을 먹고, 저도 오늘 아침부터 또 한그릇을 먹고 했더니 이제 남은 생선살이 거의 없어서 아직 많이 남은 국물에 생선살이라도 좀 더 넣어 끓여볼까 싶어 한봉지를 더 집어왔습니다.  생물을 사려면 대구살 한두덩이가 5-6파운드를 훌쩍 넘을텐데, 냉동대구는 생선의 질도 좋은데 다섯덩이가 넘게 들어있어서 어차피 끓여먹을 것이라 냉동대구면 아주 호화로운 대구탕이 완성됩니다.  아래는 바로 제가 오늘 구입한 음식들의 영수증!

장을 보고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빨래 정리.  그리고 나서 바로 음식을 준비합니다.  첫 메뉴는 일단 시간이 많이 걸릴 감자샐러드.  셀프웨딩 리셉션 메뉴 중 하나로 감자샐러드를 만들었는데, 너무 오랫만에 먹은 감자샐러드라 그런지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식날 하루종일 정신이 팔려있던 Tintin 은 감자샐러드를 구경조차 못 했다는 것을 알고 오늘 바로 그 날 그 음식을 재연해보고자 감자샐러드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감자샐러드 레서피는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이번에 결혼준비를 하면서 프라우윤에게 전수받은 레서피입니다.  이름하여 노마요 (마요네즈 없이 하는) 감자샐러드.  감자를 삶고, 각종 야채 (다진 양파, 다진 당근과 사과)를 넣고, 버터와 크림치즈를 넣고 슥슥 비벼주면 그것으로 끝.  감자를 삶는 물에 살짝 소금간을 해주고, 당도 높은 당근과 사과를 넣어주면 양파에서도 단맛이 묻어나와서 설탕을 넣을 필요도 없이 달콤고소한 감자샐러드 완성.  여기서 킥은 바로 감자가 뜨거울 때 다진양파를 넣어서 양파의 매운맛이 가시고 단맛은 올라오게끔 하는 것입니다.  단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저와 Tintin에게는 그정도 단맛만 해도 충분하지만 좀 더 단맛을 원할 경우, 그리고 식감과 색깔을 좀 더 맛나게 해보려면 약간의 건포도를 함께 넣어주면 금상첨화!  마요네즈가 들어가지 않으므로 느끼한 맛이 적고 물이 생기지 않는데, 마요네스 대신 약간의 버터와 크림치즈 한 큰술을 떠서 넣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모든 재료를 넣고 슥슥 비비고 나니... 결국 양조절에 실패했음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이건 바로 셀프웨딩의 부작용?!  웨딩용 음식마련 중에 대량으로 음식을 만들다 보니 이젠 집에서 둘이 먹을 음식을 하는데도 저도 모르게 결혼식 리셉션용 음식을 만들 때처럼 통이 커져버렸나봅니다.  아래 믹싱볼은 실제로 정말 큰 통입니다. 

2킬로짜리 감자를 샀는데, 남은 감자가 1/3정도 되는 것 같으니.. 거의 1.3킬로는 족히 될 감자를 삶아버린 것 같네요.  거기에 단맛이 덜하여 사과를 처음에는 세개를 넣었다가, 하나 더, 하나 더, 하나 더 넣고 나니 결국 사과도 6개나 들어갔습니다.  집에 있던 사과 모두 투하되어버린.. ㅠ

감자샐러드를 통에 담고 나니 그래도 또 한통 가득 담길 만큼의 샐러드가 남네요.  또 한통 가득 담고, 그리고 우리가 먹을 그릇에도 한가득 담아내었습니다.  신혼 느낌나게 건포도로 괜시리 하트도 한번 만들어보고.. ㅋ 상당히 오글거리지만, 그래도 우리는 신혼이니까~ 그리고 나는 아직 초보주부니까~ 좀 미숙해도 용서되지 않을까 하며 제멋대로의 음식데코 시도.  

오늘 사온 둥근롤 빵은 내일 아침에 재빨리 일어나 빵을 가로로 가른 다음 오늘 만든 감자샐러드를 속 (filling)으로 하여 샌드위치 점심을 만들어서 Tintin 의 출근길에 싸서 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과연 내가 Tintin 출근 길에 점심이나 간식을 챙겨준 적이 딱 한번 유일한데, 처음으로 성공한 당근케잌 덩어리를 먹기 좋게 썰어낼 겨를도 없이 한덩이 전체를 급하게 랩에 싸서 출근길에 들어보낸 것이 전부입니다.  내일은 부디.. 감자샐러드를 빵에 잘 넣어서 맛난 점심 샌드위치를 싸보겠노라.. 다짐을 해봅니다. 


식탁에 오늘 저녁에 먹을 감자샐러드를 내어놓다가, 문득 결혼선물로 받은 너무 이쁜 접시가 있다는 게 생각나서 이쁜 그릇에 고이 옮겨담은 후 다시 인증샷 한장.  접시에 들어간 샐러드의 양이 무식하게 너무 많은데, 통에 다 들어가지 않는 음식 전체를 그릇에 담으려다 보니... ㅋ 결국 저는 미 (beauty)보다는 실용성 위주로 음식을 내어놓게 되네요. 

이제 남편의 퇴근시간이 다가오니.. 밥도 하고 호박전도 해보렵니다.  내 생애 첫 호박전 도전.. 부디 성공하기를! (내가 생각하는 호박전은 백종원 호박전으로 알려진 전분가루만 넣고 물 없이 만드는 호박전인데..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