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영국의 미숙한 공공서비스 현실

옥포동 몽실언니 2017. 12. 5. 23:03

2017년 9월, 나는 처음으로 기숙사가 아닌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이사를 해보면서 10년이 다 되어가는 영국살이 생활 중에 처음으로 영국의 모든 공공서비스 및 민간 서비스를 경험하였다.  그 과정에 한국에 살면서도 겪어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고, 이런 불편함들은 영국살이를 이어가면서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고충으로 자리잡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비스업이 발달한 후기산업사회의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는 영국이라는 국가에서 내가 겪는 가장 큰 불편이 서비스업으로 인한 것이라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이 소비자 중심으로 재빠르게 편성되어 돌아가는 한국 사회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더더욱 황당하고 불편할 때가 많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 설치.  요즘같은 세상에도 인터넷을 설치하려면 영국에서는 최소한 일주일은 대기해야 한다.  심한 경우에는 3주가 걸려서야 설치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British Telecom (BT)은 악명이 매우 높다. 

지난번 전기/가스 요금과 관련해서도 한 집에 대한 고지서가 한달도 안 되는 사이 7회에 걸쳐 각기 다른 고지서를 받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블로그에 쓴 적이 있다 (보러가기: http://oxchat.tistory.com/188).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 영국이라니.  겪어보기 전에는 믿기도 힘든 이야기이다.  

주민세 납부와 관련해서도 유사한 일을 겪었다.  이번에는 내가 바가지를 쓴 게 아니라, 직원의 실수로 주민세가 할인된 경우이다.  주민세 고지서에 내 이름이 잘못 기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나는 시에 전화를 걸어서 남편과 내 주민세 계정에 등록된 내 이름의 철자가 틀렸다고, 정정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직원은 "문제없어~"라면서 내 이름을 정정해줬고, 그와 함께 주민세 납부 방식도 1년에 10회 납부하는 방법에서 1년에 매월, 12개월에 걸쳐 균등납부하는 방법으로 바꿔주겠다고 했다.  

영국은 회계년도의 시작이 매년 4월 1일인데, 전산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부터 시작된 주민세 납부제도는 회계년도 이전에 모든 돈이 걷히게 하기 위하여 1년중 4월부터 1월까지, 10회에 걸쳐서 1년치를 납부하고 2월, 3월에는 납부를 하지 않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최근들어 이것이 일부 가정에는 가계에 부담을 줄 수도 있고, 전산 시스템도 상당히 선진화 되어 있으므로 이런 구식 제도를 현대화하였고, 이에 따라 12개월에 걸쳐 균등한 금액으로 자동납부 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렇게 이름을 수정하고 나서 얼마 뒤, 우리는 새로운 주민세 고지서를 받았다.  그런데 새 고지서에는 내년 3월까지 우리가 내야 하는 주민세가 46파운드 가량 줄어들어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뭔가 싶어 나는 다시 전화문의를 했다.  우리 주민세 금액이 왜 변동되었는지 아냐고.  

- 직원의 대답:  너희의 지난번 계정은 46파운드 가량의 돈이 미납이 된 채로 계정이 닫혔어.

- : 왜?  나 며칠전에 이름 바꿔달라고 요청했을 뿐인데 왜 우리 계정이 닫혀?  우리는 같은 집에 그대로 살고 있는데?

- 직원그건 모르겠지만 일단 그 계정은 닫혀 버려서 그 돈은 낼 수가 없어.  그러니 나머지 금액만 내면 돼. 

- :  아니, 그럼 그 돈은 어떻게 하고?

- 직원계정이 닫혀서 어쩔 수 없어.  그냥 무시하면 돼. 

아마 직원의 실수로 내 이름을 정정하고 새로운 이름을 입력하면서 기존 계정을 아예 닫아버리고 새 계정을 열었나보다.  어쨌든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우리는 엉뚱하게 주민세 할인 혜택을 보는 황당한 경험을 하였다. 

이게 끝이냐고?  그렇지 않다.  가장 최근의 황당한 경험은 수도세 관련.

영국의 수도세는 재미있게도 미터기에 따라 납부하는 방식, 미터없이 집의 형태에 따라 납부하는 방식, 두 가지로 나뉜다.  그 이유는, 예전에 지어진 집들의 경우 (이런 집들이 대부분임) 수도 미터기가 달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반에 전화를 걸어 문의해본 결과, 5명 미만이 거주하는 주택의 경우에는 미터기를 설치하여 (무료) 미터기에 따라 요금을 내는 것이 유리하고, 그 이상이 살 때는 미터기 없이 주택 특성에 따라 요금을 내는 것이 유리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미터기를 달지 않으면 한달에 약 50파운드를 내게 되고 (물세와 하수처리비용을 합산한 금액), 미터기를 달면 2명만 살 경우 보통 20-25파운드 가량만 나오게 될 거라는 거다.  그래서 미터기를 설치하겠다고 신청을 했다. 

그러나 며칠 뒤 주변 지인들과 이야기를 해 본 결과, 우리와 같이 부부만 살고 있던 동생 Y가 자기네는 물을 대단하게 쓰는 것이 없는데도 물세가 40-50파운드씩 나와서 화장실 물도 자기들끼리만 있을 때에는 소변의 경우 두번에 한번만 물을 내리는 등 별 수를 다 썼어야 했다고, 미터기 없이 그냥 물 편하게 쓰는 편이 나을 거라고.. 자칫하면 수도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게다가 지난 집에서의 수도세 납부 기록을 찾아보니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Tintin과 내가 둘이 살고 있었던 데다가 Tintin은 운동 후 gym에서 샤워를 하고 올 때가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최종적으로 납부한 수도세가 한달에 40파운드가 넘는 게 아닌가!  

희안하게도 Tintin은 결혼 전 Marat과 플랫에 살 때는 둘이 한달 물세가 20파운드 가량밖에 안 나왔다고 하는데, 나는 Marat처럼 부지런히 매일 샤워를 하는 사람이 아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우리 부부의 물세는 그 두배가 넘는 금액이 나온 것인지.. 이 정도의 물세가 나왔다는 것도 그 집을 이사나온 후에야 할 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집에 사는 동안은 2명이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수도 회사에서 우리 물세를 약 20-25파운드로 추정하여 징수를 하였는데, 이사를 나오면서 미터기에 따라 최종 정산을 한 결과 193파운드라는, 약 30만원에 가까운 물세를 더 내라는 고지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내 우리집 수도회사에 전화를 걸어 미터기 신청을 취소했다.  그냥 미터기 안 한 요금을 내겠노라고.  그랬더니 문제 없단다.  그리고 우리는 첫 고지서를 받았고, 51파운드를 한달 수도요금으로 납부했다. 

그리고 한달 뒤.. 그간 고지서가 더 날아오지 않아서.. 희안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수도회사에서 우리가 23.23파운드를 미납했다며, 돈을 내라고 한다.  그게 무슨 돈이냐 물으니, 너희 계정이 닫혔는데 미납 금액이 23.23파운드 발생했다는 것이 아닌가!

나:  우리 계정이 왜 닫혀?  

직원:  너희 다른 집으로 이사 간 거 아니야?

나:  무슨 소리야~ 우리 계속 이 집에 살고 있어.  우리 계정이 왜 닫혀?  그 돈은 뭐야?

직원:  너희 계정은 닫혔고, 그 계정에 미납요금이 있어.  일단 니 계정이 왜 닫혔나 한번 알아볼게.  전화 끊지 말고 기다려봐.

1분, 2분을 기다렸는데 갑자기 그쪽에서 전화 연결이 끊어졌다. 

이 무슨 황당한 일이 다 있는지!

한 두시간 후 나는 수도회사에 다시 전화를 했다. 

나:  우리 계정이 닫혔다고, 그리고 그 닫힌 계정에 미납요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무슨 일인지 확인 좀 해줄래?

직원:  응, 너희 계정은 닫혔어.  너희 이사 간 거 아니야?

나: 안 갔어.  우리 계정 왜 닫힌거야?

직원:  응.. 한번 볼게.. 왜 닫힌지는 모르겠는데 10월 28일에 닫혔네.  그 계정에 미납요금이 23.23파운드가 있고.  

나:  일단 그 돈 낼게.  그리고, 우리 계정 닫혔으면 어떻게 해야 해?

직원:  너희 계정을 새로 열어야 해.  네 남편이 주 계정 주인인데, 네 이름도 여기에 같이 올려줄까?

나:  응, 그럼 좋지. 

직원:  니 이름 뭐야?  생년월일은?  

나:  이름 몽실, 생년월일 몇월몇일이야.  (신규 계정 생성)

직원:  자, 다 됐어.  일단, 너희는 10월 28일 이후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수도세를 얼마를 내야 하게 되는데, 그 돈은 어떤 방법으로 내고 싶어?

나:  자동이체할게.  자동납부 설치해줄래?  (은행계좌 불러줌)

직원:  자, 이제 다 됐어.  1월 1일부터 3월1일까지, 3회에 걸쳐서 남은 금액 한달에 약 75파운드씩 내게 될거야.  이제 닫힌 계정에 대한 수도세를 처리하자.  그 돈은 어떻게 납부할래? 지금 낼래?

나:  응, 지금 당장 낼게.  내 카드번호는.. 뭐뭐뭐야.  (납부됨).

직원:  더 도와줄 거 있어?

나:  아니, 없어. 고마워! 

그렇게 우리는 통화가 끝났고, 나는 황당한 이야기를 Tintin에게 해줬다

그리고 그날 저녁 8시경, 수도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직원너희 계좌에 미납요금 23.23파운드가 있는데, 낼래?

뭐라고?? 오늘 낮에 냈거든카드로?

직원, 그래잠깐, 확인해볼게... (확인..) , 납부 됐네알았어안녕!

이건 또 뭔가.. 완전 또 황당!

그리고 다음날.. 나는 모든 것이 잘 처리되었나 수도회사 계정에 로그인을 하여 내 정보를 확인하였다.  새롭게 설치된 우리 계정을 추가하여 새로운 고지서를 살펴보았다.  아니, 이런 황당한 일이!!  그 고지서에는 미납되었던 23.23파운드가 다시 추가되어서 1월부터 우리가 납부할 금액이 83파운드로 늘어나있질 않나!!!!!!

그래서 나는 이미 닫힌 계정에 납부기록을 확인해봤다.  거기에는 분명히 23.23파운드가 이미 납부되었다고 "Confirmed"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왜 또 이 돈이 새 고지서에 반영되어 있는가?!!!! 

나의 황금같은 토요일 오후 시간은 또다시 그렇게 수도회사 직원과의 상담으로 이어졌다. 

직원:  뭘 도와줄까?

나:  우리 계정이 무슨 이유에서인가 닫혀서 새 계정을 열었는데, 기존 계정에 대한 돈을 다 납부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돈이 새 계정 새 고지서에 또 부과되어 나왔어.  뭐가 잘못되었나 한번 봐줄래?

직원:  그런데 너는 이 계정의 주인이 아니어서 확인할 수가 없어. 

나: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어제 직원한테 내 이름 추가해달라고 해서 추가했고, 온라인에는 내 이름이 같이 올라가 있는 게 확인되는데?

직원:  그래?  하지만 내 시스템에는 니 이름이 없어. 

나:  그게 무슨 소리야?!! 

직원:  네 이름도 올리고 싶어?

나:  물론이지.  어제 다 그렇게 했는데 ㅠㅠ 왜 안 되어 있는 거야?

직원:  알았어.  니 이름 올려줄테니까, 니 남편 이름 full name불러주고, 니 이름 철자, 니 생년월일 다 불러줘.  전화번호도. 

나:  정보 제공.

직원:  자, 이제 네가 얘기한 문제를 한번 살펴볼게.  응, 니 말대로 23.23파운드를 납부했는데, 그 돈이 새 고지서에 또 추가되어 있구나.  알았어, 앞으로 10일 이내에 그 돈이 제외된 금액으로 다시 고지서를 보내줄게.  너희가 납부할 금액은 1월 1일부터 3개월간 약 75파운드야.  

나:  응, 알았어.  해결해줘서 고마워.

휴우.. 내가 고지서를 확인해보지 않고, 자동납부되는대로 그냥 뒀더라면 우리는 23.23파운드를 이중으로 납부할 뻔 했다.  게다가 돈을 내라는 전화를 Tintin이 받기라도 했다면, 그리고 내가 그 돈을 이미 냈다는 것을 Tintin에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그 돈을 삼중으로 낼 뻔 한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일어나진 않겠지만.. 우리는 9월 8일에 이 집으로 이사 온 후.. 도대체 몇번째 겪고 있는 것인지..

이 황당한 이야기를 영국에 나보다 더 오래 산 후배에게 이야기했더니, 정말 황당하다면서, 얼마 전 어떤 아저씨가 수십년간 옆집 수도세까지 본인이 같이 내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건이 뉴스에 났다며, 어째서 영국에서 그런 황당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알 거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아니.. 이게 뭐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한번에 깔끔하게 제대로 처리되는 법이 없이 일을 이중, 삼중으로 해야 한다.  어디서 뭐가 잘못 되어 있어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이런 공공서비스 기관들의 일처리가 이렇게 미숙하다.  공공서비스 제공 기관들이 죄다 민영화가 되어서 일반 기업들이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quality control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일까.. 도대체 어디서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경험들은 영국 삶에 일상적 피로감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