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달리기를 처음 시작한 것은 틴틴 덕분이었다. 그 전에도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기는 하였으나 근력운동 위주였고, 유산소 운동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오랜 불면증을 낫게 하는데에 달리기가 최고라는 틴틴의 유혹에 넘어가 달리기를 시작했고, 우리의 연애 기간 중 상당 시간의 데이트가 달리기 하는데 쓰였고, 그 덕에 나는 나름 '러너 (runner)' - 취미로 달리기를 하는 사람 - 이 되었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누구나 마음에 큰 장벽을 갖고 있다. 나의 경우에는 '100미터도 뛰는 게 힘든 것 같은데 몇 킬로미터씩을 어떻게 달리지?' 하는 달리기 자체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뭘 입고 뛰지?', '뭐 신고 뛰지?' 하는 것이었다.
일단.. 달리기는 인터넷을 찾아보면 무료 달리기 훈련 프로그램이 상당히 잘 되어있다. 이런 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또 한번 이야기해 볼 기회가 있기를.. 오늘은 일단 복장에 대해서..
나는 그 전에도 꾸준히 운동을 하는 편이었으나, 여전히 복장은 심플하다. 별 게 없고, 많이도 없다.
가장 기본은 옷. 스포츠 브라, 긴바지, 짧은 바지, 반팔, 긴팔 정도면 1년 내내 운동에 지장이 없다.
나는 위의 무릎아래까지 오는 바지가 같은 걸로 두벌있고, 여름용 반바지는 딱 한벌 뿐이다. 어차피 매일 운동하는 게 아니니 한벌만 있어도 지장은 없다. 스포츠 브라 세벌쯤 되는 것 같고, 반팔티는 서너벌, 긴팔 두벌, 바람막이 가벼운 잠바가 하나 있는데, 그건 1년중 입는 날이 거의 없다. 즉, 그것까지 입어야 할 날씨에는 운동을 안 하는 편인 것 같다.
저 옷들만으로도 영국에서는 1년 내내 운동이 가능하다. 한국처럼 영하의 날씨까지는 내려가지 않다 보니 겨울에도 하의는 저 레깅스 바지에, 상의는 반팔 한벌 입고, 그 위에 긴팔 껴 입고, 장갑끼면 그걸로 충분. 뛰다보면 열이 폴폴나고 더워져서 그거면 충분하다. 봄가을에는 기온에 따라 긴팔만 한벌 입거나, 뛰다보면 좀 덥겠다 싶은 날씨에는 반팔만 입는다. 반팔 입기에는 추울 것 같고, 긴팔을 더울 것 같을 때에는 반팔에 장갑을 끼고 나갔다가 달리면서 몸에 열이 좀 나면 장갑을 벗기도 하고.
거기에 운동화도 단 한벌.
비싼 운동화가 필요치 않다. 위의 신발은 아디다스에서 45파운드 (6만원쯤? 비싼가?)로 세일하던 것을 샀다. 틴틴과 나는 운동화 밑창이 두툼하지 않고 얇고 가벼운 것을 좋아한다.
이전에는 아식스에서 가장 비싼 러닝화를 한해 지나서 반값 세일할 때 사서 신곤 했는데, 아랫밑창이 두꺼워서 잠시 걸을 때는 구름을 걷는 것처럼 포근하고 편하지만 달리기를 하다보면 그 쿠션 때문에 땅의 충격이 내 발목으로 와서 그런가 발목이 아프기 일쑤였다. 그래서 틴틴의 설득으로 나도 밑창을 빼고 신다가, 급기야 나도 밑창 자체가 얇고 가벼운 신발로 옮겨갔다. 가격도 더 저렴하니 좋다.
이렇게 밑창 얇은 신발로 바꾸고 나서는 달리기를 할 때 생기던 발목 통증이 사라졌다. 틴틴은 주로 20-40파운드 (4만원에서 6만원) 사이의 신발을 사서 신는 편이다. 달리기는 나보다 훨씬 잘 하지만 신발은 항상 "싼 것"으로 찾는 편.
우리가 돈을 쓰는 부분은 의외로 양말. 아래의 발가락 양말인데, 일반 양말과 큰 차이는 없지만 신발 안에서 발가락의 움직임이 자유롭다 보니 달릴 때 좀 편한 느낌이 있다.
이 양말은 한 켤레에 10파운드쯤 하는.. 내 양말 중에는 최고가요, 내 운동복들 중에 가장 비싼 아이템 중 하나. 작은 사치라고나 할까. 아주 흡사한 중국산 저렴이 유사품이 있는데, 그건 신발 안에서 살짝씩 미끄러지는 느낌이 있어서 아래의 비싼 양말을 선호하는 편. 비싸다 보니 이것 또한 두세켤레가 전부다. 신으면 아래와 같이 웃긴 모습이 된다. ㅋ
기타,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도움되는 것들로, 양말, 장갑, GPS 시계 정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플레이어도 나의 경우에는 지루함도 달래고, 음악도 즐길 수 있어서 혼자 운동할 때는 내게는 꼭 필요한 도구이다.
위의 물건들 중 우선순위를 꼽으라면, 장갑과 모자. 내 경우에는 손이 찬 편이라 장갑은 아주 유용하다. 특히 러닝용 장갑을 사서 쓰면 가볍고 보온도 잘 되고, 뛰다가 더워서 벗게 될 경우에도 가볍다 보니 바지춤에 끼고 달리면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아서 또 좋다. 나름 방한기능이 뛰어나서 상당히 유용하다.
모자는 해를 가리는 목적도 있지만, 머리에서 나는 땀을 흡수해줘서 얼굴로 땀이 덜 내려오게 해줘서 좋다. 땀이 얼굴을 타고 내려오면 안경에 튀고, 시야가 방해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거슬린다. 거기에, 러닝용 모자는 가볍고 잘 마르기 때문에 일반 모자보다 기왕이면 러닝용 모자를 착용하는 게 좋다.
거기에 굳이 추가하자면 GPS 시계가 있으면 좋다. 내가 얼마의 거리를 어떤 속도로, 어느 코스로 달리는지 모두 모니터링 해주고, 핸드폰 앱과 연동이 되어 핸드폰으로도 볼 수 있게 해주니 좋은 동기 (motivation)이 된다.
나처럼 출산 후 달리기를 하고자 하는 분들, 그러나 달릴 자신이 없고, 달리기 도구가 없어서 망설이는 분들.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굳이 뭔가를 사지 말고 일단 달리기를 시작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다 달리기가 재미가 있고, 꾸준히 달리기를 하게 될 것 같다 싶을 때 하나씩 하나씩 구입해도 늦지 않다. 나도 모두 그렇게 몇년에 걸쳐 하나씩, 하나씩 구입하게 된 것이다.
달리기를 몇주간 해보고, 계속 하게 될 것 같다 싶을 때, 그 때는 집에 있는 운동화에, 바지 한벌, 티 한벌, 스포츠브라 한벌, 정도만 구입하여 시작하고, 그러다 정말 본격적으로 러너가 될 것 같다 싶을 때 운동화도 좀 더 발 편한 운동화를 찾아 러닝화를 구입하고, 날이 더 쌀쌀해지면 장갑도 한켤레 구입하고.. 여윳돈이 생기면 그 때 시계구입도 고려해보고.. 이렇게 하나씩 마련해도 되니, 지금 당장은 얼마든지 집에 있는 운동화에 가벼운 옷차림으로도 얼마든지 달리기를 시작하면 된다.
또한 길게 달릴 것도 없다. 처음에는 딱 1킬로만. 1킬로도 힘들다면 1분 걷고 1분 뛰기를 딱 10분만. 그것만으로도 첫걸음으로는 훌륭하다. 나도 그렇게 달리기에 입문하였으니~
이번주로 하프마라톤 훈련 3주차에 접어든다. 그리고 경기는 한달 반 후. 과연 내가 훈련을 잘 마치고 경기에 실제로 참여할 수 있을까 미지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나도 궁금한 이야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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