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산후우울증 No, 육아우울증 Yes!

옥포동 몽실언니 2018. 10. 5. 09:08

아이를 낳고 우울했던 적이 여러번 있었다.  출산 후 초반 3개월에 일어났던 희안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분명 호르몬의 영향이 컸던 것 같은데, 그 이후의 우울감은 산후 초기에 겪은 우울감과는 꽤 다른 형태다.  좀 더 만성적이고, 답답하고, 해결되지 않으며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듯한 느낌.  지나가는가 싶으면 다시 찾아오고, 잘 견뎠다 싶으면 또 다시 휘몰아쳐오는..달갑지 않지만 내쳐지지 않는 그런 손님 같은 느낌이다. 

'나도 산후우울증을 겪는 것일까?' 하고 생각에 생각을 해봤지만 나의 증상은 '우울증'이라 하기에는 좀 약한 정도이니 '우울감' 정도라 하는 게 맞을 것 같고, 그 우울감은 산후의 어떤 증상이라기 보다는 내 경우에는 '육아' 자체의 고충에서 오는 우울감인 듯 하니, 이건 산후우울증이 아닌 '육아우울증', 또는 '육아우울감'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내 육아우울감의 가장 큰 원인은 "일신의 자유"가 없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아이가 아침 6시반에 일어나서 오전 낮잠을 1시간 정도 자고, 오후에도 1시간 15분 가량 잠을 잤다.  오전에는 내 품에 안겨서 15분, 바닥에 누워서30분쯤, 그리고 누워서 젖 물며 15분쯤 잔 것 같고, 오후에는 1시간이 넘는 시간 내내 소파에 앉은 내 위에 누워서 (?!) 잤다. 

하루가 이렇다 보니 나는 낮 동안 아이로부터 몸이 자유로운 시간이 거의 없다.  

어젯밤에는 아이가 일곱여덟번은 깬 것 같다.  어디가 그리 아프고 불편한지 소리소리를 지르며 울어댔다.  안아서 달래도 소용없어서 안아서 달래보고, 안고 방안을 걸어도 보다가 결국 소용이 없어서 만병찌찌약인 엄마 젖을 갖다바쳤다.  작은 방에서 따로 자던 남편은 새벽 5시반에 침실로 올라와보니 아이에게 젖을 물리다 잠든 나는 목이 꺾어진 채, 옷도 헤집어진채로 누워자고 있더랜다.  

아이가 내내 내 몸에 붙어있다 보니 아이를 돌보며 이유식을 만들어야 하고 (요즘은 애가 잘 안 먹어서 이유식을 열심히 만들지도 않지만), 우리 밥도 만들어야 하고, 아이 간식도 챙겨야 하고 (이유식을 안 먹어도 과일이라도 좀 먹여보려고 시도는 한다), 빨래도 해야 하고, 내 밥도 챙겨 먹어야 하고.. 아이 이유식은 대단하게 먹는 것도 없는데, 간식이든 뭐든 좀 먹였다 하면 자잘한 설거지는 뭐가 그리 많은지..  그러면서 아이 기저귀도 갈아야 하고, 대변이라도 봤다 하면 욕실까지 안고 올라가 엉덩이를 씻겨야 하기도 하고.. 그러다 남편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밥도 하고.. 부엌 정리도 하고.. 그러면서 아이와는 끊임없이 놀아줘야 하고, 혼자서 좀 놀기라도 하면 안전하게 있는지 "감시"라도 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정신이 없다. 

그나마 요즘 들어 아이를 재우고 나서 한두시간 우리만의 자유시간, 어른 시간이 생기는 게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한데, 이 시간이.. 어쩜 이리도 짧은지.. ㅠ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처럼 "나는 아직 자유가 고프다!!"

육아의 고충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충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그렇게 생각하면 육아의 고충은 어떤 삶의 단계에서 누구나 겪는 고충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육아 이전의 나'는 적어도 "신체의 자유"가 있었다.  적어도 "내 팔다리는 제 멋대로 흔들고", "밥 한끼라도 맘 편히 먹고", "화장실 가고 싶을 때 편하게 갈 수 있는" 생활을 하다가,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내 팔다리도 내 맘대로 못 흔들고, 밥 한끼도 맘 편히 먹을 수 있을 때가 드물고, 화장실을 제때 못가는 일은 너무 빈번하다 보니 임신 중에도 걸리지 않던 변비로 매일 고생하다 보니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가 오지 않을래야 오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그렇다고 아이가 밉지는 않다.  아이가 원망스러울 때도 없다 (아주 가끔.. 너무 안 자고, 너무 나에게만 매달리고, 너무 칭얼거리면.. 좀 얄미울 때가 있긴 하다).  '이 아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것도 아닌데', 라고 생각하면 아이 탓할 일은 없다.  그저 육아 "전"과 육아 "후"로 바뀐 나의 라이프스타일, 나의 삶에 적응이 안 될 뿐이다.  새로운 현실에서의 고충에 익숙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아직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다. 

"육아"는 그저 아이를 키우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육아를 담당하는 어른의 삶이 완전히 바뀌는 일이다. 독립적인 생활을 하던 '나'라는 한 신체를 관장하던 입장에서, 제 스스로 똥오줌도 가리지 못하고, 저 혼자서는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못하는 한 어린 생명에 내 신체가 매이고, 그 어린 생명과 함께 하는 일이다.  자유롭던 '나'에서 '엄마'가 된 일이다.  새로운 역할, 새로운 삶, 새로운 책임에 적응해야 하는데, 그 적응이 만만치 않고, 적응에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그게 어떤 삶일지 우리는 학교 다니면서 잘 배운 적도 없고, '육아가 힘들다'고 듣긴 많이 들었으나 뭐가 어떤 식으로 힘들고, 그 힘듬을 어떻게 잘 헤쳐나갈 수 있는지 제대로 배운 적도 없다.  그러다 보니 적응이 더 힘들고, 나만의 방식대로 적응해가느라 힘도 든다.  그 중압감과 스트레스는 우울감으로 연결되기 일쑤이고, 자칫 이를 아이 탓, 남편 탓을 하기도 너무 쉽다.  그러나.. 이건 새 식구를 맞이하고, 새로운 삶의 단계에 돌입하며 겪어야 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일테니.. 늦은 아이이긴 하지만 "부모"가 되느라 나 또한 성장통을 겪는다 생각하고 잘 견뎌나가야 한다. 

힘든 과정이지만 아이가 있어 행복하고, 이 힘든 과정을 함께 해 나가는 지지적인 남편이 있음에 감사하다.  그는 내 변비를 누구보다 걱정해주고 안타까워해주며, 나의 육신과 정신의 건강을 신경써주는 이다.  살면서 그런 이를 만났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고, 그가 내 남편이라는 것은 더더욱 감사한 일이다.  이 육아우울증은 그렇게 이겨나가게 될 것이다.  남편의 도움으로, 그리고 나를 아껴주고 생각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아이가 자라면 언제 이런 시기가 있었나 참 아득하게 생각되는 때가 오겠지.. 그 때를 그리며 오늘의 어려움은 오늘의 어려움으로 담아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