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눈방울' 꽃이 알리는 영국의 봄 소식 (1)

옥포동 몽실언니 2017. 2. 24. 05:30

안녕하세요!  영국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옥포동 몽실언니입니다.  오늘은 오랫만에 다시 소식을 전하네요.  겨울이 가고 이제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환절기에 접어들다 보니 몸이 약한 (?!) 이 몽실언니는 감기몸살에 시름시름 앓다 이제야 좀 기운을 차렸습니다.  오늘은 봄 소식을 알리는 예쁜 들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영국에서는 봄이 찾아오는 것을 한결 길어진 해의 길이와 한층 따뜻해진 기후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 보다 더 시각적으로 봄을 알리는 것은 수수하면서도 화려하기 그지 없는 알록달록한 봄의 야생화들입니다.  그 중 단연 손꼽히는 것이 바로 'snowdrop' 즉,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눈방울'이라 부를 만한 하얀 수선화과의 야생화와 오색찬란한 spring crocus로, 붓꽃과의 야생화입니다.  


어느 계절만 되면 들판에 누가 뿌려놓기라도 한 듯이 활짝 피었다가 어느새 지고 사라져있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이게 누가 씨를 뿌려서 키운 것인지 길에 피는 민들레처럼 그저 어디서 날아온 홀씨에 자연스레 피어난 것인지, 저 오색찬란한 꽃들이 이름은 있는지, 있다면 그 이름은 도대체 무엇일지 궁금하던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우연찮게 한 후배의 남편이 원예학을 전공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때다 싶어 핸드폰에 찍어둔 사진을 보여주며 이 꽃의 이름은 뭐냐, 저 꽃은 뭐냐, 이건 뭐 하는 거냐, 저건 뭐 하는 거냐, 마치 어린아이처럼 질문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여러 흥미로운 사실들과 아름다운 꽃들의 사진을 오늘 이 자리를 빌어 공유할까 합니다. 


사진들의 용량이 너무 큰데 사진의 화질은 줄이고 싶지 않다 보니 포스팅 하나당 올릴 수 있는 사진이 몇개 되지 않네요.  그래서 여러 시리즈로 봄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은데, 이 포스팅은 그 중 첫번째 이야기입니다 (아래 사진들은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울프슨 칼리지 (Wolfson College)의 가족기숙사 앞 가든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2017년 2월 9일 어느 늦겨울에 가족 기숙사 앞 가든을 나가보니 들판에 예쁜 야생화들이 하나 둘씩 피기 시작합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고개를 떨구고 있는 하얀 꽃망울이 마치 깊은 겨울 하늘에서 내린 커다란 눈망울을 연상케합니다.  후배의 남편에게 맨 처음 보여준 꽃 사진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사진을 보여주며 꽃 이름을 묻자, "Snowdrop"이라고 대답합니다.  어쩜 그 모양과 이름이 꼭 맞을까!  그 깜찍한 이름에 저는 손뼉을 치며 좋아하였습니다.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대로의 이름을 가진 예쁜 흰 꽃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 방울을 닮은 꽃.  스노우드랍. 

이 들판에 눈방울꽃만 있었냐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위 사진에 흰 눈방울 꽃 우측에 대파처럼 생긴 저 줄기들은 사실 나르시스과의 황수선화입니다.  나팔수선화라고도 불리고 영어로는 Daffodil이라 불리죠.  지금은 대파같이 생겼지만 좀만 더 지나면 노란색 나팔꽃을 활짝 피운답니다.  

그리고!  아래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보라색 야생화도 그 곁에서 조만간 자신의 빛깔을 뽐내고자 꽃잎을 바짝 쪼아린채 움을 트고 있었습니다.  

이런 꽃들은 봄야생화들로서, 영국에서 늦겨울부터 피어나기 시작하면서 봄을 알리는 꽃들입니다.  이렇게 꽃들이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무렵에는 아래 사진에서와 같이 아무것도 자라지 못할 황무지같은 낙엽 속에서 한무더기의 눈방울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까이 가서 찍어보면 다음 사진과 같이 이렇게 희고 고울 수가 없습니다.  누런 낙엽들 속에서 습기를 품고 그 추운 겨울 내내 움을 틔우고 있다가 봄이 다가오자 드디어 낙엽들 틈을 비집고 자신의 자태를 드러낸 고운 눈방울꽃. 마치 땅 속에 숨겨져있던 보물이 제 모습을 드러낸 것 같습니다.  숨어있던 자연의 생명력!  봄의 힘!

2월 초만 해도 이렇게 듬성 듬성 자태만 드러내던 것들이 시간이 좀 더 흐르면 경쟁이라도 하듯이 야생화들이 무더기로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위의 사진을 찍은 날로부터 약 10일 후, 2017년 2월 20일 동일한 들판에서 아래와 같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연노란색, 샛노란색, 연보라색, 짙은 보라색.. 온갖 색들의 야생화들!  몇년을 이리 살면서도 이 꽃들이 이렇게 만개한 것을 보는 일이 그리 잦지 않았습니다.  늘 실내생활을 했던 터라, 게다가 늦겨울에서 봄이 오는 환절기에는 대체로 감기에 걸려 방에서 자체감금 생활을 하기가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이 화려한 온갖 색의 꽃들은 봉우리가 위로 활짝 피었는데, 이 꽃들의 이름은 Crocus, 크로커스라고 후배의 남편이 알려줬습니다.  붓꽃과의 야생화라고 하는데, 늦겨울부터 초봄에 피는 이런 야생화들을 spring crocus, 그리고 가을에 피는 야생화들을 autumn crocus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너무 예쁘지 않나요?

학교 가드너에게 이 여러 색색들의 꽃이 모두 다 크로커스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해요.  가을 크로커스는 사실 봄 크러커스와 종이 다른데, 그 중에 노란 크로커스는 샤프론을 추출해내는 것과 같은 종으로 그것들을 가을 크로커스라고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 가을 크로커스 중의 딱 한 종만 샤프론을 추출하는 꽃이라서 들판에서 보는 가을 크로커스가 샤프론을 추출하는 크로커스인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봄의 소식을 알리는 꽃이 눈방울꽃과 크로커스만은 아닙니다.  나팔수선화과의 노란 꽃이 또 하나의 대표적인 봄 꽃입니다.  아래에서 보시면, 2월 초만 해도 대파처럼 푸른 줄기만 쑥쑥 자라있던 곳에서 예쁜 샛노란 꽃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수국처럼 생긴 하얀 들국화같아 보이는 꽃도 피어있네요.  자연의 생명력이란.. 참 신비하고도 놀랍습니다. 

부분 부분에 대한 사진만 보여드렸는데, 전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시죠?  대조적으로 보여드리기 위해 사진을 찾다 보니 제가 올해 1월 9일에 촬영한 이곳 사진이 있네요.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다람쥐가 뛰어 가고 있는 사진인데요.  아침에 산책을 하다가 다람쥐를 발견하고는 업그레이드한 핸드폰의 성능을 테스트해볼 겸 움직이는 다람쥐를 찍어보았는데, 그 역동적인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서 저를 아주 기쁘게 해 준 사진이랍니다.  다람쥐들이 워낙 재빨라서 핸드폰 카메라로 그 움직임을 담아내기가 꽤 까다로웠거든요.  영국은 겨울에 눈이 잘 오지 않고 날이 한국처럼 춥지는 않다 보니 해가 좋은 날이면 이렇게 계절을 가늠하기 힘들정도로 자연의 푸르름이 눈이 부시죠.  그나마 느티나무의 누렇게 색바랜 가지와 잎들, 그리고 저 너머에 있는 앙상한 나무들이 아직 이 곳이 겨울임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말갛게 푸르기만 하던 나무그늘이 2월 중순이 되자 아래 사진과 같이 변했습니다~ 짜잔! 마치 누가 각종 색종이 쓰레기를 흩뿌려 둔 것처럼 보이는데요, 사실 이것들이 모두 보라색, 노란색, 연노란색의 크로커스 꽃들에, 풀무더기 같이 자라 있는 것들이 바로 나팔수선화를 맺히게 할 수선화 줄기들입니다.  수선화는 이 크로커스보다는 좀 더 늦게 피는지 아직 꽃을 활짝 열지는 않았네요. 

더 가까이에서 찍어보면 아래 사진과 같습니다!  뒤에 보이는 나무는 동일한 느티나무예요.  의도하고 찍은 사진들은 아닌데, 같은 방향에서 다각도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용케 건져냈습니다.  하얀 눈방울 꽃과 그 주변에 가득한 연보랏빛 크로커스.  그리고 꽃잎 안에 노란 꽃수술들이 꽃의 색깔을 더 화려하게 하네요.  눈부신 햇살 덕에 아름다움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해가 좀 더 들어서인가, 한쪽에서는 노란 나팔수선화가 좀 더 피어있는 것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만개하면 훨씬 더 이쁘답니다.  

이 때 궁금한 것이 한가지.  이 꽃들을 칼리지에서 씨를 뿌려서 키운 것인지, 저절로 자라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너무 자연스럽게 자라 있기는 한데, 또 꽃들이 있는 곳에만 모여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때 마침 길을 지나던 가드너 (gardener)를 붙잡고 물어봤어요.  저건 칼리지에서 키우는 거냐고 아니면 저절로 자라는 거냐고.   그랬더니 원래는 씨를 뿌려서 키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자연번식을 하면서 더 퍼지면서 자라고 있다고.  그것을 가드너는 'naturalisation', 즉 자연화 하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런 가드너의 설명에 맞게, 기숙사로 들어가는 길목 옆에 덩그라니 눈방울 꽃이 한무더기 피어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것이 바로 naturalisation, 즉 자연화, 자연번식의 결과로 일어난 일이겠죠?  

이렇게 봄을 알리는 이쁜 꽃들이 피면 영국에서는 이제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오는구나.. 알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개나리꽃이 피면서 봄이 다가옴을 알게 되었던 것 같은데, 나라에 따라 이렇게 봄 소식을 전하는 꽃들이 서로 다르네요.  어느 나라에서든 봄 소식을 알리는 꽃을 유독 반기는 것은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을 트이고자 하는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욕구가 반영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발길에 스치는 작은 꽃 하나에도 가득한 생명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들어있는 생명에 대해 감사하고, 주변의 다양한 생명의 힘에 감동하고 감사하게 되는 계절이 봄인 것 같습니다.  이런 봄을 또 한번 맞을 수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