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초등학교 생활/ADHD와 함께 살아가기

[ADHD] 아이의 약 처방 후 첫 팔로업 미팅을 앞두고...

옥포동 몽실언니 2026. 9. 19. 03:14

재작년, 그러니까 2024년 11월 우리 아이는 의사에게 제출된 모든 서류와 엄마인 나와의 1시간 반에 걸친 면담 자료를 기반으로 ADHD를 진단받았다. 그리고 그 후 2025년 5월 의사는 처음으로 아이를 직접 관찰했고, 그 자리에서 아이에게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된다고 하는 ADHD약 한 달 치를 처방해줬다. 

우리는 의사를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바로 그렇게 약을 처방받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런만큼 아이의 약물복용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정보도 충분치 않았고, 진지하게 우리의 현실로 생각해보지 않은 상태였다.

좀 더 알아보고, 고민해보고 약 복용을 시작하겠다고 했더니 의사는 우리의 그런 반응에 갸우뚱했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를 힘들게 내버려 두지 말고 바로 약을 먹이라고 하셨다. 지금 약을 먹지 않으면 나중에 이 시스템에서 discharge가 될 거고, 그럼 학년이 높아져서 GCSE시험을 준비할 때 약을 받고 싶어도 다시 이 긴 대기를 해야 할 거라는 말씀까지 덧붙이셨다. 현실적인 조언이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협박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났고, 아이는 infant school을 마치고 junior school에서 새 학년, 새학기를 시작했다. 담임선생님은 아이의 학교생활을 지켜봤을 때, 약물을 복용해야 할 정도로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고, 아이에게 필요한 조치를 요청하면 그때마다 도와줄 수 있는 만큼의 도움을 주셨다. 감동할 만큼 큰 도움은 없었지만, 문제나 어려운 상황에 도움을 요청하면 그에 맞는 조치는 취해주셨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아이는 즐겁게 학교 생활을 영위했고, 우리는 그걸로 만족했다. 

주니어 스쿨에서의 첫 학년을 마치고 이제 4학년으로 올라간 아이. 초등학교를 시작한 이래로 같은 반 아이들과 3학년까지 이어졌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반 아이들을 섞었다. 4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다수의 새로운 친구들과 한 반을 이루게 된 것이다.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3학년 담임선생님이 4학년 담임까지 맡게 되면서 아이도 불안감 없이 편안하게 4학년을 시작했다.

그렇게 4학년을 시작한 지 일주일.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를 누르고는 스팸이나 광고일 거라는 생각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상대방도 정적이었다. 3초쯤 지나 여보세요 한번, hello 한번. 그러자 상대방도 hello 하며 전화를 받는다.

상대는 병원 소아서비스부의 행정직원이었다. 지난번 의사를 만난 약속 이후 6개월 뒤에 팔로업이 되어야 하는데, 웨이팅이 길어서 이제야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우린 6개월 뒤 팔로업 미팅이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병원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반갑긴 했다.  우리도 지금 상태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책대로라면 6개월 후에 있었어야 했던 미팅이 자그마치 16개월 후에야 이루어진다니. 영국의 공공의료에 장점이 정말 정말 많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이런 답답한 일들은 개선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어쨌든 병원에서는 약 열흘 뒤에 전화면담으로 의사와의 약속을 잡아줬고, 이틀 후 집으로 편지까지 도착했다. 약속시간은 11시인데, 전화약속이므로 전후 1시간 정도 사이에 전화가 올 수 있으니 반드시 대기할 것.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와도 꼭 받을 것. 아이도 함께 있어야 하므로 아이와 함께 약속에 참석할 것. 어떤 이유로도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바로 discharge (사례종결) 될 것임을 언급하고 있었다. 겨우 한 장의 편지인데도 그 편지 안에서 공공기관의 권위적임이 느껴져서 다소 불편했다. 하지만 어쩌랴. 그게 이 나라의 공공의료가 작동하는 방식인 것을. 

의사와 면담을 하려면 내가 아이의 상황을 더 잘 알아야 한다. 학교에서 아이의 행동이나 태도가 어떤지 담임 선생님의 정보가 필요하다. 그래서 담임선생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가능한 날짜들 중에 서로 괜찮은 날로 약속을 정했다. 그리고, 그 후부터 나는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닌만큼 의사와의 면담 시간에 내가 궁금한 것을 다 물어보고, 내가 요청할 수 있는 도움은 다 요청해야 하는데, 뭘 물어보고, 어떤 도움을 구하면 좋을지 생각해보지 않고 있던 터라 마음만 급해졌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어야 생각이 좀 될 것 같은데, 아직 내 몸과 마음과 정신은 모두 헝클어진 상태다. 뒤죽박죽. 여전히 혼란 속에 있다. 내 머릿속에 키워드는 상실의 시대. 지난 2년에 걸쳐 양가 아버지들께서 차례로 돌아가셨고, 그 상실과 슬픔도 큰데 거기서 파생된 여러가지 일들 속에서 몸과 마음이 지쳤다. 

생각을 좀 해야 하는데, 생각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만 바쁘고 정작 내 머리는 생각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