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다이어리/나의 해외유랑기 7

내가 받은 영어 '조기교육', 그리고 그 영향

나는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영어를 잘 하는 편에 속했다. 사실, 가장 잘 하는 아이 중 한 명쯤은 되었을 것이다. 내가 다니는 중학교는 학군이 좋은 곳에 있던 학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지역 내에서 가장 안 좋은 학군 중 하나였으리라. 학교 주위는 동네 시장. 시장 골목길을 통과해야 학교가 나타나는 그런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해외에 살다 온 아이들이나, 영어 원어민 과외를 받는 아이들은 아주 희귀한 아이들이었다. 한 학급이 58-60명씩 총 14개 학급이나 있었기에 전교생을 내가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아이들 중에서는 해외에 살다 온 아이가 없었고, 원어민 과외를 받는 아이도 없었다. 중 3때 우리 반이었던 효민이가 중 3을 마치고 호주인지 뉴질랜드인지로 조기유학을 갔는데, 그 친..

[중3겨울, 호주] 호주에서 만난 다양한 인생들

호주에서의 3주간의 시간은 여러모로 내게 다양한 문화경험을 선사했다. 그곳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홈스테이 가족 외에는 모두 한국인이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내게는 새로웠다. 모두 다 한국인이었지만 이렇게 다양한 인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배운 시기였다. 두명의 초등학생 먼저, 나와 함께 호주로 떠났던 두 초등학생. 이 아이들은 지금 생각해봐도 꽤 되바라진 아이들이었다. 둘 다 인천 출신. 아빠와 함께 홍콩으로, 어디로, 해외로 다녀본 경험이 많은 아이들이었다. 돈도 잘 쓰는 아이들이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나는 내가 써 본 돈이라고는 친구들과 분식집을 가거나 간식을 사먹는 정도밖에 해 보지 않았던 터라, 호주에서도 가족들의 선물을 사는 것 외에는 돈을 쓸 줄 몰랐다. 아는 동생을 따라 가서 ..

[중3겨울, 호주] 나 때문에 일본인 언니가 울었다.

호주로 간 어학연수. 겨우 3주의 기간이었지만 내가 호주로 떠난 것은 단기 어학연수였다. 당시 어학 수업 중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나 때문에 일본인 언니가 울었던 일이다. 내가 다녔던 어학학원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시드니 시내 어딘가에 있던 어학학원이었다. 건물 안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인근에는 펍도 있었고, 큰 길 건너에는 맥도날드도 있었다. 학원을 가는 길에 시청 건물 같아 보이는 큰 건물에 시계탑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역에 내려서 학원까지 걸어가는데, 그 역이 꽤 규모가 있는 역이었던 기억이 난다. 성인반에서 수업을 받다학원에서는 통상 그러하듯 레벨테스트를 받았다. 그 결과, 나는 나와 함께 단기연수를 떠났던 두 명의 초등학생 아이들과 ..

[중3겨울, 호주] 중3 겨울, 홈스테이 가족에게 인종주의를 배우다

3주간의 호주생활을 함께 한 홈스테이 가족.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주머니와 그 댁 막내아들이다. 어린 나이의 나에게 “인종주의”를 알려준 것 또한 아주머니와 그 아들이었다. 그 집의 큰 딸들은 나보다 한두살씩 어렸는데, 그 집의 막내아들은 열살쯤 되었던가. 집에 일곱 살 어린 남동생이 있던 나에게 그 집 막내는 내 동생 같이 편하고 부담이 없었다. 두 딸은 그 나이에 이미 팝 음악에 맞춰 춤 추기를 좋아했는데, 춤이라고는 개다리 춤조차 춰 본 적 없던 나에게 함께 춤 출 것을 권하던 두 딸은 내겐 다소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러나 막내 아들은 나의 짧은 영어로도 함께 놀이가 가능했던 터라 나도 그 아이가 편했고, 그 아이 또한 자기에게 친절하고 호의적인 내가 꽤 괜찮은 놀이 상대였을 것이다..

[중3겨울, 호주] 중3 겨울방학, 호주에서 홈스테이를 시작하다

중학교 3학년을 마친 겨울방학. 나이 만 15.5세. 나 홀로 호주행. 아무리 계획에 없던 즉흥여행을 잘 떠나던 우리 가족이었지만, 그 어린 나이의 딸을 지방 공항에서 바이바이 손 흔들어 보내신 우리 부모님은 다시 생각해봐도 대단하다. 호주에 도착해서 3주간 함께 지낼 가족을 만났던 날. 안면인식장애라고 의심될 정도로 다른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이건만, 호스트 가족 아주머니의 얼굴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고,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주머니의 느낌, 분위기는 기억에 분명하게 남아있다. 나의 호스트 가족은 평범한 분들이었다. 그 얼마나 다행인지. 해외생활이든, 타지생활이든 하다 보면 그 속에서 평범한 이들을 만나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이고 감사한 일인지 알게 ..

[중3겨울, 호주] 중3에 나 홀로 호주에 갔던 이유는..

훗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중3의 나이에 혼자서 호주를 가서 3주나 있다가 왔다는 사실에 다들 놀라곤 했다. 그러다 보니 별 생각 없던 나의 호주 방문기는 지나고 보니 내 나름의 영웅담이 되곤 했다. 다들 그 시절에 호주를 갔다는 사실보다는, “그 나이”에 “혼자서” 호주를 갔다는 것에 놀랐기 때문이다. 그런 반응을 여러번 접하고서야 나도 내가 그 나이에 혼자서 해외를 다녀왔다는 것이 뒤늦게 놀라웠고, 나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며 스스로도 약간은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간직하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그 어린 나이의 아이를 혼자서 해외로 보내셨을까. 그것도 부모님이 가본 적도 없고, 가족이나 지인 하나 없는 곳에 만 15세의 여자아이를 덩그러니 보내다니. 추측건대, 당시 유행하던 조기유..

[중3 겨울, 호주] 중3을 마치고 혼자서 호주 시드니로 떠나다

어쩌다 외국생활이 이렇게 길어졌는지,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것. 해외생활에 대한 동경 어린 시절 티비에서 나오던 AFN 방송을 보면서 엄마에게 우리도 미국가서 살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당시에는 이 방송이 주한미군을 위한 방송인지도 몰랐다. 베벌리힐즈의 아이들, 맥가이버, 케빈은 열두살 등 미국 드라마가 티비에서 자주 방영이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 시절에는 미국 드라마가 유행이었나보다. 그렇게 외화방송을 보며 나는 외국생활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도 미국가서 살면 안 되냐고 엄마에게 조르곤 했다. 그러던 내가 해외에 첫 발을 디딘 것은 중학교 3학년을 마치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이었다. 당시는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를 외치며 영어교육을 강조하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조기유학이 한창 붐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