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다이어리/나의 해외유랑기

[중3겨울, 호주] 호주에서 만난 다양한 인생들

옥포동 몽실언니 2021. 4. 29. 23:41

호주에서의 3주간의 시간은 여러모로 내게 다양한 문화경험을 선사했다.  그곳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홈스테이 가족 외에는 모두 한국인이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내게는 새로웠다.  모두 다 한국인이었지만 이렇게 다양한 인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배운 시기였다.  

두명의 초등학생

먼저, 나와 함께 호주로 떠났던 두 초등학생.  이 아이들은 지금 생각해봐도 꽤 되바라진 아이들이었다.  둘 다 인천 출신.  아빠와 함께 홍콩으로, 어디로, 해외로 다녀본 경험이 많은 아이들이었다.  돈도 잘 쓰는 아이들이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나는 내가 써 본 돈이라고는 친구들과 분식집을 가거나 간식을 사먹는 정도밖에 해 보지 않았던 터라, 호주에서도 가족들의 선물을 사는 것 외에는 돈을 쓸 줄 몰랐다.  아는 동생을 따라 가서 옷을 한벌쯤 사 보았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늘 엄마가 사주는 옷을 입고 살았지, 큰 돈을 내가 지출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던 나였다. 

나와는 달리, 두 초등학생 친구들은 쇼핑몰에 가서 자기들이 사용할 게임기를 샀다.  호주에 있는 동안 게임을 하기 위해 새로 나온 게임기를 산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 많은 오후와 저녁 시간에 나는 게임도 안 하고, 뭘 하며 지냈나.  꽤 심심하고 지루했을텐데.  

그 두 아이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절벽 근처에 있는 꽤 부촌에 있는 한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저녁부터 밤까지 매일같이 시끄럽게 게임을 하는 통에 홈스테이 호스트 가족이 학원으로 몇 번이나 항의 전화를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여의치 않았다.  그럼 자기들은 밤에 뭘 하냐고, 게임도 못 하냐고 되려 화를 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어린 아이들이 해외에 나와서 오롯이 자기들의 '재미'를 위해 당시 내 기준으로는 꽤 큰 돈을 쓴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또, (내 기준에는) 그 큰 돈을 들여 외국까지 나와서 밤마다 비디오 게임을 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영어공부든 뭐든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노는 데도 시간을 쓸 수 있는 것이었다니!

생각해보면, 만 열두살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해외에 나와서 남에 집에서 자기들끼리 생활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힘든 상황을 스스로가 스스로의 힘으로 온전히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힘듬을 견디기 위해 게임도 하고, 방탕한(?) 생활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르게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던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나는 이 아이들의 자유분방함이 참 낯설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저렇게 지낼 수도 있구나, 꼭 모두가 아버지 말씀대로 모범생처럼 살아야 하는 건 아니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렇지만 늦게까지 게임하는 일상이 호스트 가족으로서는 많이 불편한 일이었을 듯.

빌리 오빠

내게 빌리 오빠가 이렇게 기억에 남아있다는 것은 호주 생활에 대한 기억을 꺼내면서 새삼스럽게 다시 알게 되었다.  빌리오빠, 내가 고맙다고 했던가?  많이 고마워요~ 오빠 덕에 수업에 적응하기가 좀 수월했어요~

빌리 오빠는 선생님에게 농담도 잘 건네고, 내게도 곧잘 농담을 건넸다.  그 오빠는 뭐가 그리 여유로울까.  저 나이에도 저렇게 한량같을 수 있다니. 바쁜 일이 있어도 뛰어 다닐 것 같지 않은 느긋함이 있는 오빠였다. 

수업 마치고 다같이 펍을 가자는 이야기도 자주 했던 것 같다.  너는 어려서 같이 못 가서 어쩌냐는 소리도 내게 자주 했던 것 같고.  지금 생각해보니, 나 빼고 언니 오빠들은 펍을 종종 갔을 것 같다.  '펍'이라는 단어는 그 때 그렇게 배워서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단어였다.

스물한둘?  많이 되어야 스물넷쯤 되었을까.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 같다.  혹은 전문대학을 다니다 나온 것 같기도 하다.  디테일에 대한 기억력은 그 때에나 지금에나 참 부족한 건 여전하다.  어쨌든, 다른 것을 다 떠나 같이 수업받는 언니 오빠들 중에서 나와 나이차이가 가장 적은 오빠였다. 

빌리 오빠는 아직 호주에서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할 지 계획이 분명치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호주에 와서 영어를 배우고 지낼 수 있다니.  음악이라는 관심사는 있었지만, 아직도 진로를 탐색 중이었던 오빠였다.  꼭 공부를 잘 하지 않아도, 나중에라도 자기만의 길을 찾기 위한 여정을 가지며 자기만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오빠였다. 

토미 오빠

이 오빠는 영어 이름이 정확히 토미였는지 어떤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 오빠도 음악을 하던 오빠였다.  내 주변에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이는 있었지만,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을 실제 만난 것은 토미 오빠가 처음이었다.  당시 윤상이었던가, 윤종신이었던가, 이승환이었던가, 공일오비였던가..  당시 꽤 유명한 가수들의 앨범 작업에 참여하고, 그들 앨범 쟈켓에 크레딧을 올린 이력이 있는 오빠였다.  음악 믹싱을 한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건 또 뭔지 내가 궁금해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 나의 이 몸쓸 기억력..  태어나서(?) 처음들어보는 종류의 일이었다.  어쨌거나, 그 오빠 또한 나로 하여금 세상에 이런 분야도 있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당시 만으로 열 다섯살이었던 내 인생에서 만나 본 사람 중에 가장 유명한(=유명인과 일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덩치가 좀 있었고, 차분하고 다소 내성적인 오빠였는데, 그 오빠는 영어를 배워서 호주에서 음악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는 자신이 원하던 것을 이뤘을까.  궁금하다.

지니 언니

이 언니의 영어 이름이 지니가 맞나 아닌가.  지니였던가, 제니였던가.  스물여섯인가, 스물아홉이었던가 빌리 오빠보다는 확실히 나이가 많은 언니였다.  

이 언니는 일본 간호사 출신 언니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간간히 결석을 하던 언니였다.  그래서 이름이 더 가물거리는 것 같다.  며칠 결석을 했다가 학원에 나오면 빌리 오빠가 그렇게나 반가워하면서 언니에게 왜 안 왔냐고, 이런 저런 안부를 건네고 물었던 것 같다.  주말이 지나면, 주말에 뭐하고 지냈냐고 언니에게 묻기도 했던 거 같다.  빌리 오빠가 이래저래 붙임성이 좋은 성격이었다. 

언니는 다른 분들과 달리 하우스 하나를 아예 렌트해서 지내고 있었다.  그게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 언니 집에는 수영장이 딸려 있었고, 그래서 다른 오빠, 아니 빌리 오빠는 언니에게 언제 언니 집에 놀러가도 되냐고, 초대해달라는 이야기도 했던 것 같고, 자기도 그 집에 살면 안 되냐는 농담도 던지곤 했던 것 같다. 

언니는 시크한 편이었다.  오빠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잘 받아줬지만, 그렇다고 수다스럽지 않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편이었다.  나에게도 특별히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냉담하지도 않았다. 

언니는 뭘 하다가 호주로 왔는지, 호주로는 뭘 하기 위해 왔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런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에 언니는 학원을 안 나왔나?  당시 내 기억에는 저렇게 어린(?) 나이에도 집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살 수 있다는 게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수영장이 딸린 큰 집에 혼자서 산다는 것도 신기했다.  혼자 지내면서 그런 돈을 쓸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혼자서 그렇게 지내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도 신기했던 것 같다.  당시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나 혼자 집에 있어본 적이 없는 아이였기 때문에.  

그 외, 간호사 언니와 사귀던 한국 오빠가 있었는데, 그 오빠도 간호사 언니 만큼은 아니어도 꽤 결석이나 지각을 했던 것 같다.  잘 생겼고, 서글서글한 편이었다.  어느 날, 맥도날드에서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할인해서 판매한다고, 다같이 사먹자고 나가서, 빌리오빠와 이 잘생긴 오빠가 내껀 그냥 하나 사줬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하니 되게 고맙네.  고마워요, 오빠들.

그렇게, 언니 오빠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어른이라고 해서 모두 공부 잘 하는 게 아니고, 모든 사람이 공부만으로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며, 스무살이 넘어서도 여전히 자신의 진로를 찾느라 탐색할 수도 있고, 형편에 따라 사람들이 돈을 아주 많이 쓰면서 살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세상에는 다양한 인생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