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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겨울, 호주] 중3 겨울, 홈스테이 가족에게 인종주의를 배우다

옥포동 몽실언니 2020. 12. 9. 20:24
3주간의 호주생활을 함께 한 홈스테이 가족.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주머니와 그 댁 막내아들이다.  어린 나이의 나에게 “인종주의”를 알려준 것 또한 아주머니와 그 아들이었다. 
 
그 집의 큰 딸들은 나보다 한두살씩 어렸는데, 그 집의 막내아들은 열살쯤 되었던가. 집에 일곱 살 어린 남동생이 있던 나에게 그 집 막내는 내 동생 같이 편하고 부담이 없었다.  두 딸은 그 나이에 이미 팝 음악에 맞춰 춤 추기를 좋아했는데, 춤이라고는 개다리 춤조차 춰 본 적 없던 나에게 함께 춤 출 것을 권하던 두 딸은 내겐 다소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러나 막내 아들은 나의 짧은 영어로도 함께 놀이가 가능했던 터라 나도 그 아이가 편했고, 그 아이 또한 자기에게 친절하고 호의적인 내가 꽤 괜찮은 놀이 상대였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인종주의에 대한 사건은 뜻밖의 상황에서 발생했다.  자기의 원통 모양으로 생긴 저금통을 갖고 장난을 치던 아이는 갑자기 동그란 원기둥 모양의 저금통을 자기 얼굴 옆에 갖다 대며 “My face (내 얼굴)”, 라고 하더니, 옆에 있던 종이인지 책인지를 하나 들고 “Your face (네 얼굴)”라고 하며, “Your face is flat (네 얼굴은 편평해).”이라고 한 것이다.  
 
당시 인종주의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나는 그 아이의 갑작스런 외모 지적에 당황했던 것 같다.  내 얼굴이 flat, 즉 편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No, my face is not flat.”이라고 했던 것 같다.  아이는, “Your face is flat!”이라고 다시 응대했고, 나는 계속해서 내 얼굴은 flat 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다 그 아이는 짓궂게 웃으며 자기 엄마에게 달려가며 계속해서 “Her face is flat!”이라고 놀렸다.  
 
그 순간, 아주머니는 정색.  정확히 뭐라고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아이에게 굉장히 야단을 치셨다.  Her face is not flat 이라고 하며, 아이를 혼내셨던 것.  내 얼굴이 flat하니 flat하다고 말한 것일 뿐이라고 항변하던 아이는 결국 엄마의 계속된 야단에 눈물을 보였다.  자기 생각에는 혼날 일이 전혀 아닌데 혼이 났다고 생각하며 억울해했다.  갑작스런 아주머니의 개입에 아이가 울기까지 하니 나도 적잖게 당황했다.  나야말로 오히려 ‘그러게, 아이의 눈에는 자기 얼굴이 round 하고 내 얼굴은 flat해 보일 만도 한데, 아주머니께서 왜 저렇게 심하게 혼내시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이는 엄마가 시킨대로 내게 와서 사과하고, 아주머니도 내게 미안해하셨다.  그렇게 그 상황은 종료되었다. 
 
"Your face is flat." 그 말과 그 일은 두고두고 내 뇌리에 남아있었다.  내게 친절하고 배려심 많았던 아주머니께서 당시의 나와 그 아이의 입장에서는 “별 일도 아닌” 것으로 왜 그렇게 야단을 치시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 집에 머물던 3주간 누군가의 언성이 높아진 것 또한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유가 어떻든 나보다 어린 아이가 단기 객식구인 나 때문에(?) 울고 불고 한 것도 나로서는 미안한 일이기도 했다.  나 때문에  자기 방이 없어지고 엉망진창인 방에서 생활하던 아이였는데, 별 것 아닌 일에 엄마에게 심하게 혼나기까지 했으니.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나는 알게 되었다.  그게 인종주의적 발언이었다는 것을.  동양인의 얼굴이 편평하고 눈이 찢어졌다고 하는 것은 전형적인 인종주의적 발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아주머니께서 그렇게 정색을 하고 아들을 혼내셨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아이를 따끔하게 혼 내신 아주머니가 참으로 고마웠다.  그래서 그 가족이, 그 아주머니가 더더욱 강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사진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