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많은 사람들이 결혼반지와 웨딩드레스에 많은 비용을 들이는 것일까? 고민을 해봤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대답은.. 아마 평소에 쓰지 못하거나 쓰지 않을 규모의 돈이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그 반지와 드레스는 상당히 특별해지기 때문이 아니려나..싶었다. 그 정도의 돈이 들어간다 함은, 보석의 디자인과 크기, 드레스의 정교함 등에서 비싼 값 만큼이나 그 자체의 특별함이 있을 것이므로, 많은 돈을 쓴 만큼 더욱 특별하고 희소한 반지와 드레스를 가짐으로써 단 하나 뿐인 신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더욱 빛나게 하고, 그 모습 속에서 서로간의 사랑의 다짐을 함으로써 결혼 자체를 특별하게 하고 공고하게 하려는 행위가 아닐까.. 하는..
나같이 돈이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답은 너무 쉬웠다.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 우리 결혼을 특별하게 만들자! 그것이 내가 이른 대답이고, 이에 Tintin 또한 동의했다.
오늘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거나, 혹은 결혼 그 자체에 많은 돈을 지출하고 싶지 않은 경우.. 도움이 될 만한 우리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것은 바로 결혼반지와 약혼예물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특별하게 함으로써 돈이 아닌 추억이 중심이 되는 예물 구입기이다.
특별한 추억이 있는 곳에서 특별한 결혼반지 구입하기
근 3년 반의 연애를 한 나와 Tintin은 지난 겨울 처음으로 4박5일이라는 장기여행을 계획했다. 그간 건강이 안 좋아서 제대로 된 휴가를 가져본 적 없는 나였기에, 오랫동안 연애를 하면서도 한번도 제대로 된 여행을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이 늘 Tintin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휴가를 떠날 만큼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이젠 둘의 연애기간이 길어지기도 하였고, Tintin은 이번만큼은 정말 함께 여행을 가보자 부추기기도 하였고, 나도 이번만큼은 비용을 감안하고서라도 한번 특별한 휴가를 가지고 싶었다. 게다가 갑자기 표를 사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알메리아까지 비행기는 135파운드에, 숙박료는 둘이 1박에 36파운드밖에 하지 않으니.. 이건 정말.. 비행기표까지 생각해도 영국에서 2-3일 여행을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비용이니 이번만큼은 큰 맘 먹고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
스페인으로 여행을 간다고 하니 스페인에서 결혼한 친구를 둔 J왈, 스페인 금값이 싸니 반지를 사려면 영국 보다는 스페인이 나을 거라며 스페인에 갈 거면 간 김에 결혼반지도 사오는 게 어떠냐고 우리를 부추겼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린 여전히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결혼하고 싶은가,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결혼에 대한 확신이 서 있기 전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스페인에 갔을 때에는 파운드 대비 유로가 너무 비싸져서 스페인에서 반지를 사는 것이 그리 큰 이득이 될 것은 없었는데, 쇼핑을 힘들어하는 우리에게는 4박5일이라는 얼마 안 되는 주어진 시간, 스페인이라는 특별한 장소, 첫 해외여행이라는 특별함, 게다가 여기서 결혼반지를 산다면 이 여행은 약혼여행으로 생각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며, 반지의 가격이 얼마든지간에 그 반지는 정말 특별한 결혼반지가 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주저하다가 결국 스페인에 온지 3일째 되던 날에야 호텔 근처 보석가게를 조심스레 들어가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우리가 그래서 이 스페인 여행에서 결혼반지를 구입하게 될지는.. 정말 몰랐다. 스페인 알메리아의 독특한 가로수들에 대해 썼던 내 블로그 글 (스페인 알메리아의 독특한 가로수들 http://oxchat.tistory.com/36) 에 삽입된 사진 중 하나가 실은 우리가 반지를 산 보석가게의 사진이다. 우리 반지를 구입한 곳이니 사진으로라도 남겨놓아야겠다는 생각에 반지를 찾아서 돌아오던 날 횡단보도를 건너며 황급히 한장 찍어둔 사진이다. 그래서 구도가 엉망. Joyeria Regente. 스페인어로 Joyeria 가 Jewellery 라는 것을 이번에 반지를 사러 다니며 알게 되었으니, 반지도 사고 스페인어도 배우고! 일석 이조다!
이곳은 사실 우리가 머문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보석집 중 하나였고, 그 외에 여러 곳을 찾아보았지만 그나마 이곳이 큰 매장 중 하나였다. 우리가 여행간 곳이 그리 크지 않은 도시였던 데다가 생각보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곳이어서 정보를 찾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사실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우연히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더 럭셔리한 보석들을 많이 파는 고급 보석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는데, 이미 때는 늦으리오. 우리는 반지 두 개중에서 고민을 하다가 다음날 그 중 하나로 결정을 한 뒤 이미 그 반지에 우리 이름마져 새겨둔 터였다. 그냥 우리가 산 반지가 우리의 운명의 반지라고 생각하고 그 어떤 미련도 접었다. 적당한 값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반지를 구입하였으니.. 그걸로 족한다.
사실 우리가 구입한 반지는 우리의 예산을 조금 초과하는 것이었다. 늘상 일이라는 것이 그렇다. 예산을 늘 넘는다. 그래서 예산을 여유롭게 잘 짜는 것도 좋지만, 늘 이렇게 초과할 것을 생각하여 타이트하게 짜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그래야 예산을 초과하더라도 한계예산을 초과하지는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반지에 이름을 무료로 새겨준다고 하니, 우리에게 반지를 판매한 미쉘 아저씨가 묻는다. '이름 사이에 뭐 더 쓸래?' 라고. 'Tintin, 뭐라고 쓰고 싶어?' 내가 묻자, 그가 다시 미쉘에게 묻는다. "사랑이 스페인어로 뭐예요? 그걸 써 주세요!" 라고. 오글오글. 그러나 결혼이 원래 오글거리는건데, 그 정도 오글거림은 얼마든지 애교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반지가 탄생했다. 몽실 AMOR Tintin (물론 실제로는 우리 실명의 이니셜을 사용했다.)
결혼반지를 구입함으로써 우리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해졌다. 물론 안 할 수도 있겠지만 반지를 구입했다는 것은 둘 다 결혼하기로 다짐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 그렇다면 약혼을 해야지!
특별한 약혼 (프로포즈) 예물 구입하기
한국에서 결혼을 앞두고 프로포즈를 하는 것처럼, 이곳에서도 약혼반지를 사서 약혼을 함으로써 결혼을 약속한다. 보통 약혼반지, 즉, 한국식으로 하자면 소위 프로포즈 반지라고 할 만한 반지를 커다란 보석이 박힌 화려한 반지를 하는 편이다. 결혼반지보다 대체로 2-3배가 넘는 돈들을 약혼반지에 쓴다. 대개 남자들의 3개월치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의 약혼반지를 구입하는 것이 보통이라 하니.. 다들 굉장한 돈들을 쓰는 것이다.
나라고 왜 화려한 약혼반지가 갖고 싶지 않겠냐만은.. 내 형편에 그 반지 갖고 있어서 뭐 하나..싶었다. 반지를 하고 외출할 곳도 없고, 결국 집에 고이 모셔질 반지를 굳이 무리해서 사는 것이라면.. 그런 반지는 나중에 결혼해서 몇년씩 살고 나서 우리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을 때 선물 하고 받고 해도 모자라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호텔 인근에 눈 여겨 봐둔 악세서리점으로 Tintin 을 데려가서 알메리아에서만 살 수 있는 예쁜 악세서리를 사달라고 했다.. 이것을 내게 약혼선물로 주라고 할 생각이었다.
스페인에서 머무는 마지막날, 호텔 인근에 있던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께서 하시는 악세서리점을 구경하러 들어갔다. 별 것 없어 보이는 가게가 늘 손님이 한 둘은 있고, 그들은 꼭 뭔가를 사고 있는 게 신기했다. 이곳이 바로 내가 봐둔 악세서리점. 여기서라면 알메리아에 대한 추억도 되고, 그 추억이 곧 우리 약혼선물이 되어도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어가지 종류의 목걸이 귀걸이 세트를 몸에 걸쳐본 후,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다. 다른 때에는 먹는 것 말고 Tintin에게 당당히 무언가를 사달라고 할 때가 잘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약혼용으로 구입하는 것인 만큼 이것을 사달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리고 물건을 받자마자 일단 갖고 있어달라고 Tintin에게 주었다. 흑색이면서 짙은 회색같아 보이기도 하는 그냥 플라스틱 큐빅의 목걸이 귀걸이 세트인데, 커팅이 이쁘게 되어있어서 그런가 반짝반짝 하는 것이 신비로운 맛도 나며 너무 이뻤다. 이렇게 이쁜데 가격도 45유로. 가격마저 너무 마음에 든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영국으로 돌아왔고.. 그날은 마침 12월 31일이었다. 기숙사로 돌아오니 밤 11시가 다 되었다. 피곤에 지쳐있는 Tintin을 왠만하면 얼른 집으로 돌아가라 하겠지만 오늘은 그럴 수가 없다. 우리의 약혼식이 거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12월 31일.. 새해 이브에서 새해가 될 때 약혼을 하면 이 또한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알메리아에서 악세서리를 사면서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12월 31일 우리는 이 악세서리를 주고 받으며 약혼식을 거행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신년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불꽃놀이마저 있을 터이니, 그 또한 우리 약혼에 굉장한 선물이 아닐까!
오늘 힘들더라도 새해를 함께 맞이하고 가면 어떠냐는 말로 Tintin을 꾄 다음, 일단 따뜻한 차를 한잔 나누며 서로 지난 한해를 돌이키며 담소를 나눴다. 그러다 11시 57분, 58분.. 아 시간이 없다. 불꽃놀이가 시작되기 전에 목걸이를 걸어야 하고, 목걸이를 걸고 나서 불꽃놀이가 바로 시작해야 하는데... 나는 얼른 Tintin에게 스페인에서 사온 악세서리를 내어놓으라 하며, "자, 얼른 그 목걸이를 내게 걸어주며 우리의 약혼식을 거행해! 폭죽이 터지기 전에!" 그에게 내 목에 목걸이를 걸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예상치 않게 갑자기 진행되는 우리의 약혼식(?!)에 당황하였지만 밝게 웃으며, '몽실, 나와 약혼해줄래? 그리고 결혼해줘.' 라고 하며 내 목에 목걸이를 둘러주고, 우리는 찐한 허그를 하며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5, 4, 3, 2, 1 그리고 폭죽!!! 파파팡!!!! 팡!
그렇게 우리는 약혼까지 하게 되었고, 결혼반지도 이미 구입을 했으니.. 이제 정말 결혼준비를 해야 한다. 반지 다음 과업은 바로 드레스 구입. 반지는 예산을 훌쩍 초과했지만 드레스는 초절정 저가 드레스. 10만원도 안 되는 값으로 웨딩드레스와 슈즈를 모두 구입했다면 믿을까.. 나의 드레스와 웨딩슈즈 구입기는 다음편에..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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