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영국살이 신혼부부의 술상 장보기

옥포동 몽실언니 2017. 4. 19. 09:00

미리하는 한줄평:  이 집에서도 이런 장보기가 일어나는 일이 있다니.. 그것도 건강한 식생활을 상당히 중시하는 남녀가 함께 살고 있는 바로 이 집에서도..

소소한 저녁 산책의 재미:  산책을 핑계로 한 장보기 vs 장보기를 핑계로 한 산책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한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그냥 늘어지고 싶지 굳이 다시 옷을 챙겨입고 나가서 산책을 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왠만해선 발걸음이 잘 안 떨어진다.  이런 우리를 산책으로 이끄는 핑계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마트놀이.  급하지도 않은 무언가를 사기 위해 산책을 가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산책을 나가는 김에 뭐라도 사오자..  뭐라도 이유가 없는 산책은 뭔가 불안하고 지겹고 낭비같이 느껴지는 것인지.. 밖에 나간 김에 뭐라도 해와야 뭔가 뿌듯한 기분이다. 

작은 도시에 살다 보면.. 산책할 만한 코스도 너무 한정적이고, 동네가 너무 거기서 거기라 금방 지겨워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굳이 산책을 하려고 하면 장바구니 하나 들고 나가서 마트에 가서 뭐 하나라도 사 와야 산책이 덜 지겹다.  오늘은 Tintin이 무릎이 안 좋은 관계로 짧은 산책을 하기로 했고, 그나마 짧게 구상해볼 수 있는 코스는 [집->마트->집]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이게 가능하려면 집 근처 마트가 문을 여는 시간이어야 하고, 시간이 더 늦으면 더 시내 중심가에 있는 마트로 가거나 아니면 아예 차를 타고 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대형마트를 가야한다.  오늘은 가장 짧은 산책코스로 그냥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 Waitrose 를 다녀오기로 했다.  

이렇게 산책겸 마트로 장보기를 가면 문제가 있다.  뭘 사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아무거나 막 사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장보기가 딱 그랬다.  저녁식사 후에 둘 다 배는 안 고픈데 괜히 심심한 입을 달래줄 이것 저것 자기가 좋아하는 간식을 고른 것.  우리가 고른 모든 것이 술안주로 딱!!!  술안주를 샀으니 술도 사야지!! 술은 한국에서 J가 너무 그리워하고 있는 Malbec으로 골랐다.  Tintin과 나 모두 술을 잘 알지 못하므로.. 그냥 우리가 좋아하는 J를 생각하며 마실 수 있는 술로 골랐다.  우리의 부끄러울 정도로 약한 주량을 생각해서 와인은 작은 병에 든 미니 와인으로! 

막상 집에 와서 짐을 풀고나니.. 작은 와인 한병에 술안주만 가득이다.  게다가 집에 팝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기어코 또 팝콘을 하나 더 사고야 말았다.  집에 있는 팝콘은 그냥 한번 먹고 말 거라고, 그리고 팝콘이 다 거기서 거기지 싶어 세일 중인 아무 팝콘이나 집어왔었는데.. 막상 먹어보니.. 그 전에 내가 먹은 Proper Corn 의 팝콘과 너무 다르지 않은가!!! 저 하늘색 이쁜 포장에 들어있는 Proper Corn은 그야말로 그 이름 아래 자기들이 써 놓은 것처럼 "Popcorn Done Properly"가 딱 맞다!!  정말 맛있는 팝콘, 진짜 제대로 만든 팝콘!!  시중에 파는 팝콘을 많이 먹어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먹어본 것 중에는 최고의 팝콘!!! 정말 맛있다!

Jacob's 크래커칩은..아직 안 먹어봤는데 너무 먹음직해서 구입.  노란 허니메론은 요즘 내가 메론에 꽂혀서..구입.. 워커스 감자칩은 6개들이 미니 포장으로 Tintin의 저녁 간식이다.  그는 늘 저녁식사 후에 따뜻한 차 한잔과 저 워커스 감자칩을 먹는 것을 유일한 본인 식생활의 일탈로 여기는데, 오늘은 회사에서 점심을 거른 탓인지..다른 무언가로 인해 기분이 다운 된 것인지.. 기운 빠져 하다가..저 감자칩을 보는 순간 본인이 요즘 뭔가가 자꾸 땡기는게 저 감자칩을 안 먹어서 그런 것 같다고 얼른 한봉지를 집어들었다.  집에 쓸 클리넥스도 두통세트짜리로 하나 사서 오니.. 장 본 비용은 14.13파운드.  딱 2만원 돈이다. 

오늘의 장은 생각보다 푸짐해졌다.  급한 물건은 단 하나도 없고 죄다 기호식품에 여분이라니!  우리 부부에게도 이런 장보기 하는 날이 있구나!  게다가 또 이런 온갖 군것질 거리들이 난무하는 장보기가!!!  너무 좋은 것!!  일탈은 필요하다!

나는 오늘 낮동안 이미 군것질을 많이 해서 오늘 저녁 군것질은 패스하기로 하고, Tintin은 와인을 따더니 감자칩 한봉지를 마치 저녁도 안 먹고 술을 마시는 사람처럼 홀짝홀짝 술을 들이키며 감자칩 한봉지를 클리어!  그렇게 해서 Tintin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진다면 나도 그 술과 안주는 찬성일세!!

함께 살면 늘 둘 다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서로 기분이 안 좋을 때 서로의 눈치도 봐주고 달래주고.. 맞춰주며.. 살아야한다.  Tintin, 힘을 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