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육아일기 2017-20

출산 8개월, 하프마라톤 도전을 결심하다!

옥포동 몽실언니 2018. 8. 7. 10:23

결국 사고를 쳤다.  2018년 10월 7일 옥스퍼드 하프 마라톤을 등록한 것!

이런 사고를 치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지난 주 내내 잭도 아프고 나도 아픈데 때마침 양 옆집 두집의 부엌 공사로 인해 각종 소음 여파로 아이를 때때마다 업어서 재우느라 하루 3시간 이상씩 아이를 업고 지내기를 매일같이 하다보니 결국 나도 너무 힘들어 나자빠지고 말았다.  

일요일 내내 물에 적신 솜방망이처럼 몸이 쳐지고, 기분도 쳐졌다.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몇시간을 방에 혼자 누워 있었다.  그렇게 누워있어도 나아지기는 커녕 더 어지럽기만 하고, 육아현실이 있는 거실 (틴틴과 잭이 놀고 있는 곳)로 돌아오는 게 더 싫기만 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기분이 나아지질 않았다.  저녁에 결국 틴틴에게 내 솔직한 기분을 이야기했다. 

"나 너무 우울해.  힘들어.  기운이 하나도 안 나.  번아웃 (burn-out) 된 것 같아."

"그래?  어떡해?  그 기분 너무 이해해.  나도 그래."

"뭐?  틴틴도?"

"응, 나도 가끔 그래."

"흥.. 틴틴은 가끔 그러지.. 그래도 틴틴은 아이랑 떨어져있는 시간이라도 있잖아.  나는 정말.. 하루 종일 얘하고만 있어.."

"그래, 몽실, 이해해.  몽실도 자유시간이 진짜 필요해.  매주 토요일마다 밖에 나가.  옥스퍼드 데려다 줄테니 가서 쇼핑도 하고 차도 마시고 그래."

"난 쇼핑을 좋아하지도 않는걸, 뭐.. 그리고 맨날 거기 가서 뭐 해.  거기 가서 즐거운 것도 한번 두번이지."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모르겠어. 생각 좀 해볼게.  일단.. 내일 달리기를 해야겠어.  그럼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

달리기는 나와 틴틴의 관계를 강하게 맺어준 중요한 매개체였다.  틴틴 덕분에 달리기를 시작한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건강이 많이 좋아졌고, 틴틴과 함께 거의 매 주말 함께 달리기를 하며 우리는 많은 대화를 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더 많이 이해하고, 뭔가를 공유할 수 있었다.  틴틴은 나의 달리기 스승이자, 달리기 코치이자, 달리기 동지이기도 했다. 

사진: https://www.pexels.com/  (저 아니에요~~ ^^;;)

우리는 연애기간 동안 근 2년간 꾸준히 달리기를 했고, 그 정점은 함께 옥스퍼드 하프마라톤을 뛰는 것이었다.  약 4개월간 하프마라톤 준비를 꾸준히 했는데, 나는 경기날이 되어서는 갑작스런 사정으로 경기에 참여할 수가 없게 되었고, 나를 위해 경기에 등록했던 틴틴만 혼자서 뛰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리고 몇달 후 우린 결혼했고 결혼과 동시에 임신까지 하면서 결국 나의 장대한 꿈이었던 하프마라톤 참여는 그저 꿈으로 남게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틴틴은 내가 내 생애 첫 하프마라톤을 그렇게 날려버리게 된 것이 항상 아쉬웠는지, 하프마라톤을 언제 다시 뛰고 싶은지, 뛸 수 있을지 종종 물어왔다.  어젯밤에도.

"몽실, 아무래도 몽실 2년전에 하프마라톤 준비하고서는 못 뛴 거 너무 아쉬워.  언제 다시 하프마라톤을 뛸 수 있을까?"

"글쎄.. 내년?"

"내년에 혹시라도 둘째 임신하게 되면?"

"우린 매번 이렇게 내년에 둘째 임신을 기정사실화 하는 경향이 있어. 큭큭..  임신 노력도 안 하고 있으면서.  게다가 애 하나로도 지금 이렇게 둘 다 힘들어하면서."

"어쨌든, 내년에 혹시라도 임신 하게 되면 하프 달리기는 힘들어질텐데.."

"그럼 후내년, 아니면 후후내년에 뛰면 되지~ 한 5년 뒤?"

"그 때 뛸 수 있을까?"

"왜 못 뛰어?  틴틴이 맨날 그랬잖아.  달리기 실력은 나이 50세인가..60세인가까지는 계속 상승할 수 있다고."

"그렇긴 해도.. 5년 뒤에 정말 뛸 수 있겠어?"

"왜 못 뛰어~ 준비 잘 해서 뛰면 되지~ 그럼 나 내일부터 달리기 시작하는 김에 이번에 하프마라톤 뛰어볼까?  올 해는 10월 7일에 옥스퍼드 하프마라톤이 있다고 하던데~"

"10월 7일?  얼마 안 남았네?  할 수 있겠어?  빠듯하기는 하지만.. 잘 준비하면.. 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응, 해볼래!  한번 해보자!  틴틴은 괜찮겠어?  내가 주말 롱런 (장거리 달리기) 훈련을 하는 동안 혼자서 잭 돌보고.. 그럴 수 있겠어?  그리고 내가 주말에 그렇게 롱런 매번 하면.. 주말 내내 피곤해할텐데.."

"반대일 수도 있지.  피곤이야 하겠지만 더 기운이 생길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정말 괜찮겠어?  그건 그렇고, 나 혼자서 롱런 훈련을 다 완수할 수 있을까?  나 혼자서 어떻게 2시간씩이나 뛰어.."

"할 수 있어.  그리고 그런 장거리 훈련은 마지막에 한두번 뿐이니까 괜찮아.  다른 건 몰라도 부상 없이 잘 훈련 마치는 게 중요하지."

"흠.. 그럼 일단 이번주에 달리기 좀 해보고 등록할지 말지 결정할까?"

"응, 좋은 생각이야.  그럼 내일부터 달리기 살살 시작해봐.  오랫만에 뛰는 거니까 절대 무리하지 말고.  지금 준비 기간이 짧기 때문에 부상 위험이 높아.  절대 부상 없이 훈련 마치는 게 제일 중요해.  그러니 무리하지 말고, '가볍게' 뛰어!"

"응, 알았어.  한번 해보자.  그리고 경기를 뛸 지 말 지 결정하자."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막을 내렸고, 오늘 아침 나는 새벽수유를 마치고 수유와 함께 잠이 깨버린 잭을 데리고 놀아주다가 틴틴이 잠을 깨자 틴틴에게 아이를 맡기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아침 6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한 2분 걷다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 얼마만에 아이 없이 나 혼자만의 외출인가!  7월 둘째주 잭의 육아휴직 기간 중의 외출 이후 처음이다.  4월, 엄마가 계셨을 때 딱 한번 엄마와 둘이 외출한 적이 있었고, 7월 외출, 그리고 이번이 처음인 것.  아이가 너무 좋지만.. 아이와 떨어져 있는 이 시간도 너무나 귀하다. 

처음 1킬로는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가, 2킬로에 접어드니 틴틴이 너무 고맙다.  이렇게 나의 운동, 나 혼자만의 시간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다니.. 이런 배우자를 만난 것이 감사하고, 그의 마음에 혼자서 감동.  슬슬 다리가 아프다 생각하다 보니 3킬로가 되었고, 집 근처로 돌아오니 3.82킬로를 달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4킬로 채우자 싶어 집 인근을 조금 더 뛰어 4킬로를 채우고 귀가. 

평균 페이스는 7분 19초.  1킬로미터를 7분 19초 속도로 달린 페이스이다.  총 시간 29분 20초.  오랫만에 달린 것 치고 괜찮은 기록이다.  달리기를 할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집에 돌아오니 기분이 너무 좋다.  몸이 상기되어 땀도 흠뻑 나고, 샤워를 하고 난 후에도 볼이 발그스레하니 열이 올랐다. 

달려서 좋았고, 아이와 떨어져 나 혼자 내 멋대로 팔다리를 흔들 수 있어 좋았고, 길에서 만나는 모르는 사람들과 아침인사를 나눈 것도 좋았다.  '나'만의 시간이 너무 좋았다.  게다가 나에게 뭔가 이로운 일을 했다는 것도 좋고. 

그리고 낮에는 달리기 훈련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아 출력했다. 

내가 좋아하는 달리기 훈련 프로그램은 아식스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구글에서 asics running plan for half marathon 을 검색하면 Asics 의 My Run (https://my.asics.com/uk/en-gb/running_plans) 이라는 사이트로 연결해준다.   

여기에 나의 detail들을 입력하면 그에 맞는 훈련프로그램을 생성해준다.  나의 경우에는 'half marathon'을 뛸 거고, I'm training for an event 에 클릭, 이벤트의 날짜 입력, 목표 시간 입력 (나는 대충.. 2시간 30분을 목표로 한다고 적어봤다), 현재 내 달리기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현재 기록 입력 (이건.. 최근에 달린 적이 없어서.. 5킬로 레이스를 33분에 뛴다고 대충 입력), 성별과 생년월일까지 입력하면, 

다음과 같은 창이 뜬다.  현재 내 나이에, 5킬로 경주를 33분에 뛰는 사람이라면 자기들 예상에 2시간 37분 정도의 기록으로 하프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이 프로그램의 장점은 일주일에 몇번을 뛰고 싶은지, 그리고 훈련강도를 어떻게 하고 싶은지, 훈련 요일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모두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주 "4회", "부담없는 Mild"한 페이스의 훈련을 하고 싶다고 클릭했다.  시합이 일요일이다 보니 장거리 달리기 훈련을 일요일에 하도록 기본 프로그램이 생성되는데, 나는 일요일 보다는 토요일에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므로 Shift run days의 "좌측" 단추를 클릭하여 모든 훈련코스 요일을 하루씩 앞당겼다.  그렇게 할 경우 일요일에 있던 장거리 달리기 훈련이 토요일로 변경되면서 시합일에 맞게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훈련프로그램을 다시 정리해준다. 

장거리 달리기 훈련의 고비는 바로 주말 롱런.  당장 이번주 토요일부터 주말에 4.5마일.. 즉 7.2킬로를 달려야 하고, 다음주에는 13.6킬로를 달려야한다.  현실불가능한 플랜. 

시합 3주 전에는 10.5마일, 즉 16.8킬로를 달려야 하는데, 그것도 2주 연속.  과연 가능할까?

틴틴에게 이 스케줄을 보여주니.. 이렇게 엄격하게 따라서 하기 힘들거란다.  일단 부상이 없는 게 중요하므로 초반 1-2주는 슬슬 뛰도록 하고, 이후 롱런도 조금 조정해서 뛰어야 할 수도 있다고.  오랫동안 달리기를 쉬었던 데다가 훈련기간도 짧으니, 무리하지 말고 달리라고. 

일단 달리기 플랜을 출력해서 부엌에 한장 붙여두고, 사진으로도 찍어서 핸드폰에도 저장해뒀다. 

이 훈련프로그램의 내용을 완수하지는 못하겠지만.. 정말로 하프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까?  내친김에 경기등록까지 마쳐버렸는데, 2년전처럼 또 참가비만 날리는 게 아닐까?  그런다 하더라도 자선단체에서 운영하는 시합인 만큼.. 좋은 단체에 기부하는 셈 치고, 그걸 계기로 내 육체건강, 정신건강을 조금이라도 회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값어치는 하는 것이리라 생각하고 일단은 무리가지 않는 선에서 달리기를 해보기로 한다. 

내일 모레면 출산한지 8개월이다.  작년에 임신 중에 애 낳고 몸 좀 회복되면 하프마라톤 한번 뛰자고 이야기는 했지만 현실불가능할 꿈같이 여겨졌는데.. 정말로 시합을 등록했고, 오늘 이미 그 첫번째 훈련을 시작했다.  믿어지지 않지만 현실이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H에게도 Oxford Half Marathon을 권했고, 그 친구는 흔쾌히 좋다하며 시합 이틀전에 우리집에 와서 머물며 일요일에 함께 뛰기로 약속했다.  이 시합을 계기로 운동도 꾸준히 하고, 건강도 회복하고, 10월 말이면 한국으로 귀국할 친구와 좋은 추억도 쌓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내일 훈련도 화이팅!

*Asics 프로그램 대로라면 오늘은 3마일 (4.8킬로), 내일은 4.5마일 (7.2킬로)을 뛰어야 하지만, 오늘 4킬로도 무리였고, 내일은 정말 천천히 (성인 키큰 남자 걷는 속도 정도로) 2-3킬로만 달리는 것이 목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