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in 2023

아이들과 벌인 바퀴벌레 논쟁, 그리고 싸구려 커피

옥포동 몽실언니 2023. 4. 15. 07:04

요즘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예요.  

제 핸드폰에 저장된 음악 재생목록에서 음악이 나오다가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가 흘러나왔는데, 아이들은 그 멜로디와 노랫말이 재미있었나봐요.  

엄마 아빠가 맨날 커피를 마시는데, 노래에서도 xxx 커피를 마신다~~ 하고 가사가 나오니 말이죠. 

그 가사를 듣자마자, 

"우하하하하! 짜그리 커피!!!!"

하고 첫째와 둘째가 함께 아주 큰 웃음을 터뜨렸어요.  싸구려 커피라는 그 말의 어감 자체가 웃기고 재미가 있었나봐요.  한참을 웃다가 첫째 잭이 묻네요. 

"엄마, 짜그리 커피가 뭐야?"

하고 말이죠.  

그 말에 저랑 남편이 되려 웃음이 터졌어요.  

"짜그리 커피가 아니라, 싸구려 커피라고 한 거야.  싸구려.  그건 아주 값싸고 품질은 그저 그런 걸 말하는 거야.  그런 걸 싸구려라고 해."

이 노래의 가사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포인트는 바로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하는 초반 도입부에 이어, 또 하나가 더 있었으니, 그건 바로 바퀴벌레!!!!

"바퀴벌레 한 마리 쯤 쓱 지나가도~"

하고 가사가 나오니, 아이들이 으하하 하고 둘이 함께 웃으며 좋아했어요. 

"으아 큭큭큭 바퀴벌레래!!!!!!"

하고 말이죠. 

"바퀴벌레가 뭐가 좋대~ 너희 바퀴벌레가 그렇게 좋아?  뭐가 그렇게 재밌어?"

하고 묻자, 둘째가 묻네요.

"바퀴벌레는 바퀴처럼 동글해?"
"응...?? 아니, 바퀴벌레는...(어떻게 생겼다고 말해줘야 하나 생각하는 중에..)"
"바퀴는 바퀴를 먹어서 바퀴벌레야?" 

하고 첫째도 끼어들며 묻네요.  그 말에 저랑 남편은 또 웃음이 터졌습니다.  아이들은 "무당벌레"와 친숙하다 보니 바퀴벌레도 무당벌레, 바퀴벌레, 뭐 그런 식으로 생각이 들었나봐요.  그런데 이름에 "바퀴"가 달린 벌레라니!  그래서 그렇게 웃음이 터졌나봐요.  이번 일을 통해 저와 남편은 우린 단 한번도 바퀴벌레의 이름을 wheel(바퀴)와 연관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 영국에서 아직 너희들이 바퀴벌레를 못 봤구나.  바퀴벌레는 바퀴를 먹는 벌레는 아니고, 아주 지저분한 벌레가 있어.  엄마 아빠가 한국에 살 때는 종종 집에 나타나기도 했던 벌레야.  아주아주 지저분한 벌레야."

하고 제가 말하자, 자동차를 아주 좋아하는 자동차매니아인 둘째가 그러네요. 

"바퀴벌레는 자동차 바퀴처럼 지저분해서 바퀴벌레야."
"아.. 그래서 바퀴벌레라고 하는 건 아닌데..."

그러자 둘째가 바로 반박합니다.

"맞아! 자동차 바퀴처럼 지저분해서 바퀴벌레야!!!!!"
"응???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우린 바퀴벌레는 바퀴처럼 지저분해서 바퀴벌레인 것으로 잠정적으로 합의를 봐버렸습니다. 

아이들을 영국에서 키우다 보니 바퀴벌레 같은 것도 옛날(?) 노랫말에서나 듣고 배우는 단어가 됐네요. 

바퀴벌레가 아이들에게 새로운 것이라는 걸 깨닫고 다음에는 아이들에게 한국의 모기에 대해 이야기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겪지 못한 한국의 곤충과 벌레.  한국에는 더운 여름에 사람을 콕콕 무는 모기가 있다고 말이죠.  영국은 겨울이 길고 해가 없어서 사람을 참 우울하게 하는 날씨가 있는대신,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여름에 사람 살을 무는 모기가 거의 없어요.  그러니, 아이들이 한국에 가서 여름 모기를 보면 많이 신기해할 거 같습니다. 

이후, 아이들은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를 자주 틀어달라고 했고, 그 노래를 여러번 들으며 좋아하던 아이들은 이제 제법 가사를 따라부르는 수준이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은 저희 첫째 잭이 저에게 그러네요.

"엄마, 선우 나중에 어른되서 돈 많이 벌면 엄마한테 싸구려 커피 사줄거야!"

하고 말이죠.  

"하하하. 정말?  그래, 고마워~~"

돈 많이 벌어서 자기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것을 엄마에게 사주겠다는 그 마음이 귀하고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