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in 2023

깜깜한 건 안 먹어도 돼 + 육아동지 및 육아선배들께 드리는 인사

옥포동 몽실언니 2023. 4. 16. 09:11

오늘도 아이들을 재우느라 저의 밤쇼는 시작됐습니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 양치를 시키고 나면 잠자리를 준비합니다.  아이들은 침대에 누워 자기 전에 읽을 책을 고르고, 남편은  아이들이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침대를 다시 정돈해줍니다. 

아이들은 많이 안 피곤한 날은 책을 많이 고르고, 곧 잠이 들 것 같은 날은 책을 적게 골라요.  많이 고르는 날은 다섯권 정도(얇은 책), 적게 고르는 날은 한 권만 고를 때도 있어요. 

오늘은 둘이 함께 딱 세 권만 골랐네요.  다행이다 생각하며 책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읽을 수 있는 쉬운 이야기 책을 읽을 때면 최소한 한 두 문장이라도 아이가 읽게 해보려고 애를 씁니다.  엄마 눈이 갑자기 안 보이네, 어쩌네 하며 쇼를 하기도 하고, 아님 딱 이 문장, 아님 두 문장만 잭이 읽어주면 나머지는 엄마가 다 읽어줄거라고 딜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그렇게 책 세 권을 즐겁게 읽고, 저는 잠에 들었습니다!!!  

"엄마 너무 졸려. 엄마 잠든다~ 5, 4, 3, 2, 1!"

얼마전부터 새롭게 써먹고 있는 방법인데요.  엄마 너무 졸려, 바로 잠들어버릴 거 같아, 라고 말한 후 5부터 카운트다운을 하고 바로 잠에 들어버린 척을 하는 겁니다. 

오, 사, 삼, 이, 일

이라고 말한 후 바로 잠들어서 코를 고는 시늉을 해요.  쌔액 쌔액 거리며 잠 자는 척.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무섭게,

"안 돼, 엄마!!! 안 돼!!!! 엄마!!!!"

하며 첫째가 바로 제 가슴 위로 양 팔을 얹어 심폐소생술이라도 할 기세로 제 가슴을 압박했어요. 

웃음이 터져버릴 거 같지만 겨우 참고 잠든 척을 계속했습니다. 

"엄마, 일어나!! 아직 자면 안 돼!!  선우 안아줘!"

하고 떼를 쓰는 첫째. 

한 번은 일어난 척을 해줬어요.

"엄마, 안경도 안 벗었잖아.  엄마, 일어나.  안경 벗어야지."

저렇게 말하며 방에 불을 다시 켜기라도 할까봐 얼른 한손으로 안경을 벗어서 보이지도 않는 어디론가 휙 던져버렸어요.  그러자 둘째 뚱이가 그러네요.

"엄마, 여기 엄마 눈(안경) 찾았어. 으흐흐"
"응, 고마워. 엄마 졸려.... 쌔애액.. 쌔애액..."

저는 계속 자는 척..  중간에 말을 좀 하더라도 계속 자는 척을 해서 엄마는 더이상 너희랑 놀아줄 수 없고, 아이들 스스로 잠이 들기를 기다렸습니다.

저는 쌔애액 쌔애액 숨을 쉬며 자는 척을 하다가 아이들이 계속 저를 깨우려고 노력하자 아예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고는 시늉을 했습니다. 

"크어어어억... 크흐흐흐흐..."

그러자 잭과 뚱이는 제 양쪽에 붙어서 저의 코고는 소리를 흉내내기 시작하네요. 

"크억...(가래라도 뱉을 기세..ㅋㅋㅋ)"

하는 소리를 내는 바람에 터져나올듯한 웃음을 참으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못 참고 소리없이 표정으로만 웃었어요.  방이 깜깜해서 내가 웃어도 애들은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생각났거든요. 

아이 둘도 저의 '자는 척'을 흉내내며 잠든 척을 한참 하더니 첫째가 둘째를 나지막히 불렀습니다.

"선재?"
"응"

둘째가 곧바로 대답하자, 첫째가 그러네요.

"선재 자는 거 아니잖아."
"... (졸리기도 하고, 딱히 할말도 없어서 묵묵부답)"

그리곤 둘이서 다시 드르렁드르렁 흉내내기 시작.  

"선재?"

첫째가 또 둘째를 부르네요.

"응"

착하게 대답하는 둘째.

"선재 자는 거 아니잖아~"

그러자 이번에는 둘째가 대답합니다.

"그런데, 눈은 감고 있잖아~"

푸하하.  방이 깜깜해서 니가 눈을 감고 있는지 아닌지 네 형은 알 도리가 없는데.  그런데 너희 둘이 지금 뭐하는 거냐. ㅋㅋㅋ 이렇게 둘이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사람처럼' 대화할 때 정말 귀엽습니다. 

"그래도 말은 하니까 그건 자는 거는 아니잖아."

하고 첫째가 말을 하네요.  첫째는 동생 뚱이가 엄마처럼 코고는 소리를 흉내내니까 동생이 잠든건지 아닌건지 궁금하고 확인해보고 싶었나봐요.  동생이 잠든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는 계속해서 이상한 소리를 이어갑니다.

"(잘 때) 깜깜한 건 좋은거야... 깜깜한 건 안 먹어도 괜찮아.  dark dark chocolate.. dark chocolate..."

 

dark dark chocolate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첫째는 꿈나라로 날아가버렸습니다. 

둘째도 쌔근쌔근.  

저는 첫째가 남긴 저 "깜깜한 건 안 먹어도 돼"를 꼭 블로그에 쓰리라 다짐하며 저 말을 까먹지 않으려고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깜깜한 건 안 먹어도 돼'를 되네이며 아이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자마자 이부자리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블로그에 쓰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만세!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정말 웃길 때가 많아요.  우린 당연하게 생각한 게,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가 많거든요.  우리아이들은 바퀴벌레라 하면 바퀴처럼 생기거나 바퀴를 먹는 벌레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고 다크 쵸콜렛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깜깜한 쵸코렛이었다는 것...  

우리 아이들에게는 엄마 아빠가 먹던 다크 쵸콜릿이 깜깜한 쵸콜렛이었구나, 그래서 그 이름이 이해하기 힘들었구나 하는 걸 오늘에야 깨달았어요. 잭이 예전에 저에게 물은 것 같거든요.  다크 쵸콜릿은 왜 다크 쵸콜릿이냐고 말이죠.  질문의 의도를 몰랐던 저는 코코아가 많이 들어간 걸 다크 쵸콜릿이라고 부른다고밖에 말을 못해줬는데, 다음에 제대로 다시 설명해줘야겠어요.  

아이들 덕에 당연한 것도 새롭게 보고,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생각해보고, 소소하게 재미도 얻습니다.  이런 것들이 육아의 묘미가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제가 블로그에 육아의 고충을 토로하던 게 엊그게 같은데, 이제 애들이 좀 컸다고 (만 3세, 5세) 육아의 묘미와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시절이 다 왔네요. 

제가 첫째를 갓 낳았을 때부터 블로그로 육아고충을 함께 나누던 육아동지들과, 제 육아일기를 보며 옛날 생각이 난다며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좋은 말씀해주신 많은 육아선배님들 덕분에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온라인으로, 또 오프라인으로 제 육아 여정을 격려해주고 위로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