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영국생활] 이웃이 건넨 선물과 이웃들과의 뜻밖의 대화

옥포동 몽실언니 2019. 12. 3. 22:54
어제는 월요일. 드디어 아이와 남편을 보내고 나혼자 밀린 일을 정신없이 하던 날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배달오기로 한 물건도 없는데 갑자기 현관 벨이 울렸다. 
계단을 후다닥 내려가니 앞집 여자아이 칼리아가 서 있다. 

사진: 아래 사진 속에 빨간 모자를 쓴 아이가 바로 나에게 선물을 건넨 여덟살, 칼리아. ^^


“학교에서 채러티 뽑기를 해서 받은 선물이에요.”

하며 나에게 종이가방 하나를 건넸다. 

“그래? 나 주는거야?  정말 고마워!”

하고 종이가방 안을 흘깃 보니 젖병과 기타 아기용품이 들어있었다. 


이게 왠 선물인가 깜짝 놀라 밖을 보니 칼리아의 엄마 제니퍼와 옆집 남자 스티브가 칼리아네 앞뜰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집에서 작업하던 차림에서 얼른 수면양말을 벗고 외투 하나만 간단히 걸쳐입고 칼리아네 집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들에 합류했다.

“제니퍼, 선물 너무 고마워!”

라고 칼리아 엄마인 제니퍼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랬더니 제니퍼 말이, 칼리아가 학교에서 채러티 뽑기에서 당첨된 선물이라며 자기에게 아기용품을 건네더란다.  

“오늘 칼리아가 학교에 다녀오더니 이거 선물로 당첨됐다며 나한테 주잖아~  나 오늘로 서른 여덟이야.  난 더 이상 아이 가질 생각이 없다고 애 한테 말했지~ 하하!" 

그리고 딸과 함께 그 선물을 나에게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어제가 제니퍼 생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뜻밖에 제니퍼의 나이까지 알게 되었다.

그랬더니 옆집 남자 스티브 왈,

“오, 축하해!  나도 이제 곧 서른일곱인데..”

하고 이 외국인 이웃들이 뜬금없이 자기들 나이를 밝히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나도 나이를 밝혀야 하나..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데.. 잠시 망설이던 나는, 나이를 밝히지는 않고 우물쩡댔다. 

“아, 그래? 내가 이 중에 나이가 제일 많네~ 하하하!”

나의 어색한 웃음. ㅋㅋㅋ 

둘 모두 “아 그래?” 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응, 그런 거 같아.”

그런 거 같다니!  이 얼마나 바보같은 대답인가!  차라리 그냥 나는 올해 서른아홉이다, 라고 밝혔으면 되는 것을!  영국 살면서 워낙 나이를 밝힐 일이 없는데다, 한국 나이 영국 나이 둘 사이에 헷갈리다 보니 나도 내 나이를 잊고 살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내가 서른아홉인지, 마흔인지, 마흔을 넘겼는지 나도 가물가물할 때가 많아서 ‘아마 그런 거 같다’는 대답은 나의 정말 솔직한 대답이었다.

갑자기 제니퍼는 자기 남편 에밀의 나이까지 공개했다.  나이 많은 나를 위로하려고 한 것일까, 아니면 자기 남편보다 나이가 많은지 어떤지 떠보려는 것이었을까, 남편은 이틀 뒤면 마흔이 된다고 했다. 

나는 둘이 생일 차이가 그렇게밖에 나지 않으면 생일을 어떤 식으로 축하하는지 물어보며 이야기 소재를 자연스럽게 넘겨버렸다.  그 와중에 내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이런, 내 남편이 나이가 제일 많잖아!’ 하는 것이었다. 

지금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우리의 또다른 옆집 남자 앤드류는 현재 회사에서 일한지가 20년이라 하였으니, 적어도 내 남편 틴틴과 동갑이지 않을까.. 아니면 한살이라도 많으려나..?  그도 그리 나이가 들어 보이지는 않는데..  아무튼.. 그렇게 어제 앞집 아이가 건넨 뜻밖의 선물과 뜻밖의 대화로 이웃들과의 나이를 모두 알게 되어 버렸다.  

이 나이 공개사건은.. 의외의 파장을 가져와서 나로 하여금 박사 유학을 진심으로 후회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